재한일본인 처

광복 뒤 남편 따라 조선 온 일본인 여성들

한국·일본 양국서 모두 잊힌 그들의 이야기

다시 8·15가 돌아왔다. 73번째 광복절을 맞이해 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그 의미를 새기고자 했다. 광복의 두 주인공은 대개 피해자 조선과 가해자 일본이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역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재한일본인 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조선 남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1945년 해방 직후 남편을 따라 조선에 온 일본 여성들이다.

한국전쟁과 가난, 가해 국가 출신이란 정체성은 그들의 한국살이를 고단한 시간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한·일 두 나라의 역사에서 모두 잊힌 존재가 됐다. 한국의 피해자 민족주의와 일본의 패배한 제국주의 역사관 모두 그들의 삶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주로 남성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기록해온 전쟁과 식민지배의 시대를 이들 ‘소수자 여성 집단’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재한일본인 처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과 결혼해 살다가 광복 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일본 여성들이다. 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조국 대신 사랑을 선택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조선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일 양국에서 외면 받았다.

현재 재한일본인 처의 수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파악이 어렵다. 논문 ‘재한일본인 처의 생활사’(1999년 김응렬)에 따르면 1977년 771명, 1991년 744명이 ‘부용회’(재한일본인 처 모임) 부산·영남지부에 가입해 있었다. 같은 논문에선 부용회 임원의 말을 인용해 전국 회원을 1983년 1500여명, 1996년 1천여명으로 추산했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 출신을 숨겼거나, 부용회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출처: 한겨레 (2018.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