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만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그의 생활양식에 의해 규정된다. 수렵과 유목을 주로, 또는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개는 특권적 동물이다. 그러나 농사꾼들에게 개는 특권을 부여할 이유가 없는 가축의 하나다. 개는 인간에게 사육된 최초의 동물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그 위상이 달랐다. 유럽인들은 개와 고양이를 하나로 묶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개와 돼지를 하나로 묶는다. 한국인들에게 개와 돼지는 최하급 가축이었다. 그래서 ‘민중은 개돼지’라고 하는 사람은 있으나, ‘민중은 마소’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은 역사는 아주 긴데, 일제강점기까지는 이를 ‘개장’ 또는 ‘개장국’이라고 했다. 개를 천하게 여긴 양반들은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써서 따로 ‘육개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개장에 ‘보신탕’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 것은 6·25전쟁 중이었고, 1954년에는 서울시 경찰국장이 최초의 ‘개장국 판매 금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보신탕도 사철탕이나 영양탕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개 식용 금지 여론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 현대 한국인들의 정체성이 ‘농경민족’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출처: 한겨레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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