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에 4만9천원짜리 커피

똥이 비싼 커피가 된다는 이유로 야생 사향 (麝香じゃこう)고양이는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 갇힌 채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사육되는 사향고양이가 수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탐욕, 자본의 탐욕은 어디까지일까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다가 광우병이 창궐했고, A4용지 면적보다 작은 닭장에서 알 낳는 기계로 암탉을 키우다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졌습니다. 평생 몸통 한번 돌리지 못하는 우리안에서 돼지를 사육하다 구제역이 번져 수백만마리를 산 채로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값비싼 고급커피 이면에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사향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서울 장충동의 신라호텔에 가면 한 잔에 4만9000원인 커피가 있다. 바로 원두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루왁커피(luwak coffee)다. 이 커피는 독특한 생산 과정으로 유명하다.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인도네시아어 luwak, 영어 civet)의 대변에서 채취한 원두가 바로 루왁커피의 원재료다. 커피 열매는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껍질과 과육만 제거된 채 원두가 온전한 상태로 변과 함께 배출된다. 특히 소화기관의 효소는 원두를 발효시키며 특유의 떫고 구수한 풍미를 만든다. 그렇게 똥에 섞여 나온 원두를 씻어서 살짝 구운 뒤 갈아서 뜨거운 물로 내리면 커피가 완성된다.

생산 과정이 독특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한정되고, 이로 인해 루왁커피 원두는 커피 품종들 가운데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국내에서 루왁커피는 100g에 10만~40만원을 호가하고, 대한항공 기내면세점에선 150g의 루왁커피 분말을 128달러에 판매한다. 국내외의 동물보호단체는 ‘최고급 커피’로 알려진 루왁커피의 이면에 동물학대라는 추악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루왁커피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2007년 한 영화에 소개되면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돼 2007년 전세계에 개봉된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루왁커피’를 꼽았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2009년 7월 신라호텔이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핸드드립 전문점들과 카페 가맹점 등이 루왁커피를 팔았다.

신라호텔 직원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잔씩은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문을 연 서울 강남의 칼릭스서울이라는 카페에서는 100% 루왁커피를 한 잔에 4만원에 팔고 있고, 원두커피의 소비가 급격히 느는 한국이 루왁커피의 새로운 소비처로 부상중이다. 문제는 주요 선진국들이 루왁커피를 소비하는 양을 맞추기 위해선 공장식 축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야생 사향고양이로부터 얻는 루왁커피로는 지금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농장마다 수백개의 비좁은 우리에 대규모로 사육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4.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