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유착

민관유착 배경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선언 이후 시장만능 논리를 공무원이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입김으로 오히려 더 강화됐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원장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구조적 원인의 하나로 ‘민관 유착’이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관료와 기업의 결탁이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정부 운영 원리에 시장 논리가 강력히 침투하면서 초래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민관 유착은 관료 통제를 시장 원리에 내맡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료들에게 시장 논리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의 1994년 시드니 세계화 선언이다. 이후 민간기업에서 사용하는 개혁조처들이 잇따랐다. 김대중 정부 때는 연봉제, 개방형 임용제 등이 도입되면서 정부 조직 내 시장주의 논리가 확산됐다. 노무현 정부 때도 ‘효율’ 등의 행정개혁 목표가 제시되면서 흐름이 이어졌다.

지난 20여년 동안 관료는 점점 시장 친화적인 마인드를 요구받았다. 이로 인한 결과는 공공성의 약화였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정부의 운영 기조가 최근 기업처럼 경쟁, 효율을 중시하는 쪽으로 갔다. 이 때문에 공직자나 정부가 양보하지 않아야 할 가치 같은 게 많이 희석됐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해온 이러한 것들이 관료의 공적 책임성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부는 관료개혁 명분으로 민간기업에 1~3년씩 관료를 위탁했다. 정책 현장에 내려가 기업경영 노하우를 배워 오라는 차원이었다. ‘민간근무 휴직제도’로 불리는 이 제도에 따라 2002~2007년 111명의 공무원이 주로 대기업에 가서 근무했다. 하지만 기업의 ‘로비스트’를 양성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시장을 짓누르던 ‘관치’에 대한 반작용은, 시장의 작동 원리를 더 위에 놓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여정부 때는 아예 민간연구소의 ‘컨설팅’을 받는 수준이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삼성이 지었다는 것을 빼곤 전부 사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경제연구소는 아예 정부 부처별 목표와 과제를 정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내건 이명박 정부 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할 정부 업무를 민영화하거나,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도 민간 자율로 전환시키도록 관료를 내몰았다. 또한 정부는 기업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활성화시켰다. 기업이 관료의 ‘사업 파트너’가 돼간 것이다. 김철 연구위원은 “시장친화적 ‘신공공관리’ 이론의 영향 아래, 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해와 정부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흐름이 한편으로는 규제완화,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 쪽의 이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신문(2014.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