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선거 참패 분석

안개는 기득권 세력이 만든 몇 가지 프레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만들고 종편을 비롯한 친여 성향 언론이 집중적으로 유포시킨 프레임입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나라를 망쳤다는친노 프레임’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세력이 야당 공천을 다 말아먹을 것이라는 ‘친노패권 프레임’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북이거나 종북숙주정당이라는 ‘종북 프레임’입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출신 인사들이 야당을 극단적 진보로 몰고 가고 있다는 ‘386 프레임’입니다. ‘운동권 프레임’입니다. ‘좌파 프레임’입니다.

안개의 천적은 바람입니다. 바람이 불면 안개가 걷히게 되어 있습니다. 4·13 선거에서 박근혜 정권 심판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새누리당 심판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심판의 바람도 불었습니다.

4·13 선거가 끝나자 이제 아무도 ‘친노’나 ‘운동권’에 대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프레임은 대부분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안개가 걷혔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선거 결과 이른바 친노 인사들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부산·경남의 김경수 최인호 전재수 박재호 당선자 등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했던 이른바 ‘골수 친노’들입니다. 아, 경기 고양을의 정재호 당선자, 충남 논산·계룡·금산의 김종민 당선자도 있네요.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사람들도 대거 당선됐습니다. 표창원 조응천 김병기 김병관 김정우 손혜원 박주민 당선자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의 사람들이니 ‘친노’가 아니라 ‘친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친노 프레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친노의 핵심이니 이들도 친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친노 프레임 자체가 워낙 말이 안되는 프레임이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국회에 진출해 있던 친노 인사들도 성적이 꽤 좋았습니다. 홍영표 전해철 박남춘 김경협 윤후덕 의원 등이 다시 당선됐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오세훈 후보를 꺾고 당선된 정세균 전 대표는 이른바 범친노의 좌장입니다. 문희상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친여 성향 언론에서 ‘친노의 좌장’이라고 집중 공격을 퍼붓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무소속으로 당선이 됐네요. ‘정무적’ 판단에 따라 이해찬 전 총리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던 김종인 대표의 결정을 세종시 유권자들이 거꾸로 심판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동안 ‘친노’를 손가락질하고, 저주를 퍼붓고, 경계하던 사람들은 이제 정말 큰일났다고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판입니다.

운동권 프레임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인영 우상호 박홍근 송영길 김현미 유은혜 박완주 등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다시 당선됐습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 기동민 당선자, 김대중 전 대통령 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당선자,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 이훈 당선자,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강병원 당선자, 비례대표 김현권 당선자 등 운동권 출신으로 새로 국회에 진입한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습니다. 서울 관악갑에서 국민의당으로 당선된 김성식 전 의원, 국민의당 비례대표 박선숙 전 의원도 운동권 출신입니다.

4·13총선 전에 “운동권 정당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에 반대로만 간다. 그런 운동권 정당이 승리하게 할 수는 없다”고 외치던 김무성 대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을 요구하며 “우리는 왜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운동권에 대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당 운영을 운동권식으로 하지 않겠다고 했던 김종인 대표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운동권 프레임에 대해서는 <기득권 ‘운동권 정당’ 공격 프레임, 친일파의 반민특위 무력화와 판박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정치막전막후에 따로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종북 프레임은 어떨까요? 사실 ‘친노’-‘운동권’-‘종북’은 한꺼번에 묶여 있는 하나의 프레임입니다. 종북 프레임이 통했다면 친노나 운동권 출신들이 이처럼 많이 국회의원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울산에서 당선된 무소속의 김종훈 윤종오 당선자는 통합진보당 출신입니다. 동아일보는 선거 직전인 4월12일치 사설에서 두 사람이 당선되면 후보 단일화를 이끈 문재인 전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친노’, ‘운동권’, ‘종북’ 프레임은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의 집권이나 확장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고성능 무기입니다. 반정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반정치주의는 일반 국민들이 가급적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해서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그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우리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 어느 정당이 이기는지, 어느 정당이 지는지 궁금해합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평가하고 논쟁을 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싫어합니다. 정치인을 혐오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를 절대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원 가입은 고사하고 후원금 내기도 싫어합니다. 친구에게 “너는 너무 정치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욕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헤어질 각오를 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반정치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유포한 정치혐오 바이러스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됐기 때문입니다. 정치혐오는 여야 정당에 대한 양비론으로 포장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밀하면서도 강력합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이번 4·13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 야당 심판론을 화가 잔뜩 난 유권자들이 거꾸로 심판했습니다. ‘19대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거짓 프레임도 힘을 잃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기득권 세력에 맞서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정치’요, ‘선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 4·13총선이 확인시켜 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 세력은 또다시 친노·운동권·종북 프레임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들은 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새삼 깨닫게 된 정치와 선거의 효능감을 오래 기억해야 합니다. 참여해야 합니다. 각성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출처: 한겨레 (2016.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