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장수

살짝 탄 얇은 껍질을 벗기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노란 속살을 드러내는 간식이 있습니다. 바로 겨울철 별미, 군고구마죠. 예전엔 골목마다 자리잡고 겨울을 알리던 군고구마통이 언제부터인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 많던 군고구마 장수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직까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군고구마 노점상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군고구마를 굽는 드럼통이 하얀 연기를 뿜고 있었다. 지난 7일 저녁 8시, 지하철 경복궁역 인근에는 군고구마통을 실은 수레가 있었고 그 옆엔 콩나물, 배추, 고사리, 오이 등의 채소들이 누워 있었다. 낡고 검은 잠바를 입은 최근수(84)씨는 수레에 설치된 선반 위에서 땔감으로 가져온 나무를 작은 톱으로 잘랐다.

최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많이 추우시죠?” 그가 고개를 돌려 입을 열자마자 대답 대신 기침이 쏟아졌다. 기침은 쉬이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깊은 소리를 냈다. 마른 몸이 휘청거렸고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간간이 고개를 들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목이 아파서 말을 못하겠어요. 가슴이 터지려고 해요.” 그에게 답했다. “어르신,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혹여나 그가 찻길에서 주저앉지는 않을까 싶어 5분 정도를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가슴에 통증이 멎었는지 다시 몸을 추스르고 땔감을 잘랐다. 잠시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음료를 샀다. 군고구마를 파는 곳으로 돌아오니 최씨 옆에 부인 박영례(76)씨가 땔감과 고구마를 통에 넣고 있었다.

“어르신이 기침을 심하게 해서 사왔어요. 좀 드세요.” 최씨와 박씨 앞에 음료수를 하나씩 내밀었다. “뭐 이런 걸 사왔어요. 이리 좀 와봐요.” 박씨는 말을 받으며 군고구마통으로 가더니 잘 익은 고구마 서너개를 꺼내 종이 봉지에 담았다. “먹어봐요. 맛있어.”

“군고구마통은 우리의 난로”

손에 쥔 고구마는 따뜻했다. 찬 바람이 싸늘하게 목덜미를 스치는 서울 한복판의 길바닥에서 박씨와 마주 보며 작은 의자에 앉았다. 고구마의 온기가 손에서 입술로 전해졌고, 목덜미를 통과해 온몸으로 퍼졌다. 박씨에게 ‘장사는 잘되는지’ 물었다.

“6년 전 여기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장사가 곧잘 됐는데, 2~3년 전부터 고구마값이 금값이 돼서 잘 안 팔려요. 고구마가 한개에 1000원꼴이니 사람들이 비싸다고 하죠. 젊은 사람들은 비싸다고 잘 안 사고, 그나마 나이 든 사람들이나 먹어 본 주민들이 구매하죠. 처음 시작할 땐 하루에 고구마 8~10박스씩 팔았는데, 지금은 많이 팔아야 서너 박스예요. 아무리 장사가 안돼도, 우린 계속 군고구마를 팔 거예요.”

군고구마는 박씨 부부에게 단순한 장사가 아니었다. 이 부부는 본래 군고구마 장수가 아닌 채소 장수다. 사시사철 거리에서 좌판을 펼치고 채소를 팔지만 겨울엔 군고구마를 함께 판다.

“나이 들어 겨울철에 도저히 거리에서 채소를 팔 수가 없어요. 이 군고구마통은 우리의 난로예요. 10월쯤 날씨 쌀쌀해지면 이 통을 가지고 나오죠. 땔감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재활용으로 분리된 나무들을 주워 와요. 요즘 가스값이 비싸서 엘피지(LPG)로 고구마 구우면 남는 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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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옆에 있던 최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리어카 옆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 박씨는 혀를 찼다.

“저 사람이 몸이 안 좋은데도 담배를 안 끊어요. 지겹게 혼나도 말을 안 들어요. 폐가 안 좋아서 지난해에만 병원에 두번 갔고, 8월엔 폐에 가래가 가득 차서 수술을 하느라 병원비가 200만원이 넘게 들었어요.”

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40여분 대화를 나누는 동안 네 차례 손님이 박씨를 찾았다. 한 중년 여성은 콩나물 1000원어치를 샀고, 나머지는 군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경복궁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장안나(48)씨는 고구마를 1만원어치 샀다. “식구가 많은가 보네요”라고 묻자, 장씨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여기 군고구마가 맛있어요. 몇년째 사 먹는 단골이에요. 근데 매일 장사를 하시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프면 안 나오세요. 먹고 싶어도 못 먹을 때가 있어서 살 수 있을 때 많이 가져가는 거예요.”

채소를 팔기 전 식당에서 일하던 박씨는 일흔살이 되자 일자리를 잃었다. 박씨는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식당에서도 안 써주고, 노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전했다. 거리에 자리를 잡고도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속을 하는 구청 직원과도 자주 실랑이를 벌인다.

“한번 단속에 걸리면 벌금이 10만원이에요. 단속 나오면 채소랑 군고구마통 치우고 난리 나죠. 올해도 벌써 두번이나 걸렸어요. 날씨도 춥고, 단속도 피해야 하고 장사를 하는 게 쉽진 않아요. 그래도 나이 들어 집에 있으면 답답해요. 여기 나와 돈도 벌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재밌어요. 이 통을 난로 삼아 이렇게 살아요.”

채소장수 박씨 부부는 겨울이면

고구마통 가져 나와 불을 땐다

“젊은이들은 비싸다고 안 사고

나이 든 사람이나 좀 사 먹어요”

고구마 10㎏당 2만5000원에

엘피지 가스통 하나 4만5000원

한 상자 팔아야 4만원 버는데

이것저것 따지면 남는 게 없으니

겨울 대표 간식으로 설 자릴 잃어

가뭄·폭염·기름값 상승·멧돼지떼 출몰…

군고구마를 찾아 사흘간 서울의 밤거리를 쏘다녔다.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마포구 홍대 인근과 공덕동 일대, 성동구 금호동과 성수동 일대 골목을 훑었지만 군고구마통은 보이지 않았다. 있는데도 찾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분명했다. 얼마나 줄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군고구마통을 판매하는 중구 황학동 서울중앙시장을 찾았다. 군고구마통을 취급하는 금화식품기계의 주인은 “4~5년 전엔 한 해에 40~50개씩 팔았는데, 이번 겨울엔 20개 정도만 팔렸다. 예전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고 말했고, 형제만물의 점주는 “점점 판매량이 줄어든다. 이번 겨울엔 10개 정도 팔았다”고 밝혔다.

겨울철 별미인 군고구마가 왜 점점 사라질까. 지난해까지 고구마 가격이 급격히 오른 게 문제였다. 농수산물 도소매 가격을 공시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누리집을 보면, 고구마 가격은 지난해까지 고공행진을 벌이다 올해 그 기세가 꺾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10㎏당 1만원대 초반이었던 고구마 도매 가격은 꾸준히 오르다 2010년엔 2만원대를 넘어섰고, 2011년엔 3만원대를 돌파했다. 이 가격은 1년 전 이맘때까지도 유지됐다.

고구마값 고공행진은 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기름값 상승, 멧돼지떼의 잦은 출몰 등이 고루 영향을 미쳤다. 2년간 전국에 몰아친 가뭄과 폭염이 감자와 고구마 농사를 망쳤고, 전남과 경남·충남의 주요 고구마 산지에선 잦은 멧돼지떼의 출몰로 고구마·호박 농사를 포기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섭씨 10도 이하에서 보관하면 썩는 고구마의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보관 비용도 증가했다.

이번 겨울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고구마 도매 가격은 10㎏당 2만5000원으로 예년에 비해 20% 가까이 하락했다. 그럼에도 군고구마를 파는 노점은 다시 늘어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서울중앙시장 입구에서 채소와 함께 군고구마를 파는 차중식(74)씨는 비싼 가스값을 거론했다.

“엘피지 가스통 하나가 4만5000원까지 올랐어요. 이거 하나로 4일 정도 사용하니까, 하루에 가스비만 1만원꼴 되는 거죠. 고구마 한 박스에 40개 정도 나오는데, 하나에 1000원꼴로 팔면 한 박스 팔아도 4만원 조금 넘어요. 하루에 두세 박스 정도 파는데요, 고구마값이랑 가스비를 고려하면 얼마 안 남아요.”

차씨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연기가 나는 땔감식 군고구마통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종로구 통인시장 입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오승재(23)씨도 마찬가지다. 오씨는 “인터넷으로 군고구마통을 38만원에 샀다. 땔감식이 더 싸지만 시장이라서 가스식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휴학중인 오씨는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직접 군고구마 장사에 나섰다.

“10년쯤 전인 중학생 때 친구들이랑 겨울에 군고구마 알바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땐 골목마다 군고구마를 팔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큰길에는 100m, 200m 간격으로 군고구마통이 있었죠. 그때 생각이 나서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는데 예전만큼 팔리진 않아요.”

차씨와 오씨는 군고구마를 3개씩 한 봉지에 담아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오씨는 “통인시장에는 주말에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외국인들이 호기심에 먹거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사 먹는 중장년층도 있다. 시장 상인들도 종종 찾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시장의 차씨에게서 고구마를 사 가는 사람들은 대개 인근에서 일하는 상인이나 노동자들이다. 7일 오후 5시께 서울중앙시장 안에 있는 닭꼬치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변아무개(52)씨가 차씨에게 군고구마 1만원어치를 주문했다. 차씨는 큼지막한 군고구마를 13개 꺼냈다. “3개는 덤이다”라며 종이 봉지에 넣었다. 변씨는 “다음엔 공장으로 배달 좀 해달라”고 부탁하며 차씨의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공장으로 향하는 변씨를 쫓아가며 얘기를 들었다.

“닭꼬치 만드는 공장에서 아줌마들 열댓명이 일해요. 고구마가 맛있고, 배도 차면서 살도 잘 안 찌니까 겨울 간식으로 안성맞춤이죠. 배달도 해주신다니, 다음엔 시켜서 먹으려고요.”

군고구마 파는 곳이 줄면서 대개 다른 장사를 겸하는 상인들이 대다수였다. 6일 밤 9시께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근처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상인도 과일을 함께 팔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상인은 “거리에서 과일을 팔며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 지난해부터 군고구마를 같이 판다. 난로 삼아 군고구마통을 가져왔는데, 고구마 하나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붕어빵에 밀리는 노점들

군고구마를 파는 노점이 급격히 줄면서 겨울철 대표 간식도 바뀐다. 군고구마의 빈자리를 파고드는 대표 품목은 호빵이다. 1970년 12월 삼립식품이 처음 세상에 내놓은 호빵은 출시 직후부터 인기였다. 올해까지 누적 판매량이 55억개를 넘었고, 매출도 꾸준히 는다. 삼립식품 관계자는 “호빵 판매액이 2005년 500억원 정도 규모에서 지난해엔 800억원 정도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삼립식품 주가는 겨울마다 후끈 달아오른다. 지난해 10월 4만5000원대에서 올 1월 5만7000원대까지 상승했다. 이 회사 매출에서 호빵 비중은 10% 남짓이지만, 겨울이면 주가가 오르는 모습을 반복한다.

편의점, 마트 등에서 주로 팔리는 호빵과 함께 노점에서 팔리는 어묵·호떡·붕어빵 등은 여전히 대표 겨울간식의 자리를 유지한다. 상인들은 나름의 고충도 있었다. 마포구 창전동에서 만난 김아무개(69)씨는 5년 전 사업이 망한 뒤부터 겨울마다 붕어빵을 팔고 있다. “장사도 잘 안되는데 프랜차이즈가 진입해 3개에 1000원으로 가격을 고정해 버리니 돈을 벌기가 힘들어요. 가스값도 비싸고, 구청에서 단속도 자주 나와 한달 내내 장사해도 100만원을 겨우 벌어요.”

붕어빵 업계는 황금잉어빵, 원조붕어빵 등의 가맹사업 전문점(프랜차이즈)이 진입해 노점을 빌려주고 원료를 공급한다. 이들 업체는 가격을 붕어빵 3개에 1000원으로 고정했고, 다른 상인들은 이 가격보다 비싸게 받기가 어려워졌다. 붕어빵 가격은 2008년부터 3개에 1000원으로 고정된 상태다.

군밤은 군고구마와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추세다. 여의도 새누리당사 근처에서 군밤과 옥수수를 파는 신아무개(67)씨는 “남편이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 후유증으로 평생 몸이 안 좋았다. 30년째 이 장사를 하며 근근이 먹고살지만, 올해처럼 안되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3일째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찾은 군고구마 노점상 중에서 유일하게 잘 팔리는 곳이 한곳 있었다. 바로 홍아무개(71)씨가 건대입구역 인근에 마련한 군고구마 노점이었다. 13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홍씨는 3m 가까이 되는 높은 굴뚝이 설치된 군고구마통 2개를 놓고 장사했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진 8일 밤 9시부터 홍씨는 한시간 만에 군고구마와 군밤 8만원어치를 팔았다. 이후 30여분간은 거의 장사가 되지 않았다.

“장사가 되다 안되다 그래요. 추울수록 장사가 잘되죠.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 그래서 그런지 겨울에 할 수 있는 직업이 이거밖에 없어요. 이 통이 난로 역할을 하니까, 내게 딱 맞는 직업이지. 젊었을 땐 거리에서 군고구마, 군밤 안 사 먹었는데, 나중에 이거 팔 줄 알았겠어요. 힘닿는 데까진 이 자리를 지키며 장사할 거예요.”

‘거리의 난로’에서 폴폴 풍기는 군고구마향이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