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집창촌

집창촌은 저녁 8시에 영업이 시작돼 다음날 새벽 6시에 끝난다. 23살부터 43살, ‘아가씨’로 불리는 여자들이 머리와 화장을 마치고 ‘홀복’(손님 받을 때 입는 옷)을 입고 쇼윈도 앞에 앉는다. 통통한 아가씨, 빼빼 마른 아가씨, 가슴 큰 아가씨, 키가 큰 아가씨. 가게 유리문 너머에 한명, 또는 두세명의 아가씨가 앉아 있다.

마네킹처럼 쇼윈도 앞 의자에 앉아 자세를 취했다. 아가씨 60명이 이 거리에서 일하는데 일하러 나오는 날도 있고, 안 나오는 날도 있다고 한다. 영업하는 가게는 25곳이다.

이 거리에서 누군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는 네가지다. 업주나 가게를 관리하는 남자는 ‘삼촌’, 가게에서 청소·요리를 맡은 아주머니나 미용사는 ‘이모’, 손님을 받는 여성은 ‘아가씨’, 밤에 이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는 나이가 적든 많든 ‘오빠’다.

밤 9시가 지나면서 하나둘씩 남자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까맣게 선팅을 한 차량이 지나다닌다. 운전자들은 아가씨 구경을 하는데 택시마저 이 거리에 들어서면 저속 주행을 한다. 차보다 사람 걸음이 더 빠를 정도다. 선팅한 창문 안에서 남자들은 시선의 자유를 느낀다. 여자를 훑는다.

아가씨는 선팅된 창문 너머를 볼 수 없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남자들이 간혹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아가씨들은 그를 주시했다. 웃음을 준다. 말을 붙인다. 손짓을 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서류 가방을 들었다. 남자는 이곳저곳에 시선을 주지 않고 목적 없이 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처럼 직진을 하다 한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익숙해 보였다. 이 아가씨의 단골일지 모른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훑다가 이 아가씨를 고른 것인지도 모른다.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50대로 보이는 남자를 따라 올라간다. 손에 몇만원을 쥔 아가씨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업주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업주에게 돈을 줬을 것이다. 15분에 7만원. 빈손의 아가씨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아가씨가 사라지자 유리창 너머에 고양이 한마리만 앉아 있다. 아가씨가 기르는 고양이 ‘코코’다. 15분쯤 지나자 남자가 내려와 유리문을 열고 나간다.

여자는 다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고개를 묻고 휴대전화를 쳐다본다. 둘은 별다른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가씨와 15분을 공유한 남자는, 이 거리를 벗어나면 15분간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낮의 세계로 들어가 일터에 출근할 것이다.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을 것이다. 모른 척할 것이다.

이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들은 모두 창문 앞에서 아가씨를 훑는데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양복이나 서류 가방을 든 남자는 아까 그 중년처럼 종종걸음으로 걷다 급하게 가게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양복 뒤태마저 타인을 의식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타임스퀘어에서 ‘몰링’을 하듯 무리를 지어 이 거리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지나간다. 아가씨들에게 말을 붙인다. 농담 주고받기를 한다. 가격 흥정도 해본다. 낄낄거리며 즐거워한다. 타인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추리닝이나 후줄근한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는 이 두 부류의 중간쯤이다. 양복남처럼 종종걸음으로 걷지는 않지만, 20대 사내처럼 낄낄거리지도 않는다. 추리닝 아저씨와 양복 중년남의 차이가 있다면, 양복남들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지 않고 아무것도 안 본 척 지나가다 가게 안으로 사라진다는 것이고 추리닝남은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며 여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확연하다는 점이다.

한참 거리에 서 있으니 영등포 집창촌 업주 대표인 ㅇ씨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여기 이용하는 남자들 보면 20대부터 60대야. 기러기 아빠, 늦도록 장가 안 간 남자, 뭐 대충 그렇지. 한번은 지팡이 짚은 80대 할아버지도 왔었다니까. 그 할아버지, 집에 갈 때 신발을 못 신는 거야. 허리를 못 굽혀서. 아가씨가 신발 신겨줬어. 또 저번에는 팔다리 잘린 장애인도 장애인 택시 타고 왔었어. 사지 잘려봐, 남자가 기회가 없잖아.”

출처: 한겨레 (201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