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メリカの国家不渡

“내가 대통령에서 물러나도 의사당의 그 개자식들이 이 제도를 없애지는 못할 거야.”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현재 미국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인 소셜시큐리티 제도를 도입할 때, 자신을 마르크스나 레닌에 비유하며 공산주의자로 욕하던 의회의 보수적 의원들을 겨냥해 한 말이다.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루스벨트가 욕했던 그 의원들보다 더한 ‘개자식’들에 의해 도발된 전쟁에 휩싸여 있다. 이 전쟁의 대상도 루스벨트가 확립한 사회복지제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 입법인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미국 정가의 혈투로 연방정부가 5일로 닷새째 폐쇄되고 있다. 공화당의 초강경 보수 정파인 티파티 계열의 소장 하원의원 20~40명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당내 지도부를 밀어붙여 오바마케어의 무력화를 요구하며 내년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아 일어난 사태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타협의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거나 철저히 망가져야만 해결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일(미국시각) 사태 해결을 위해 초청한 의회 지도부와의 만남 뒤 베이너 하원의장은 “민주당이 협상하지 않으려 한다”고 불평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만남에 앞서 <시엔비시>(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정당의 ‘극단주의자 일각’이 정부를 인질로 잡는 전례를 만들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오바마로서는 타협이나 양보할 이유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다. 여기서 밀리면 공화당 강경파에 계속 발목을 잡히는데다, 지지층도 돌아서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주도하는 티파티 계열 의원들도 물러설 처지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보수적 백인들이 유권자의 다수인 지역구 의원들로서, 민주당 후보들보다는 당내 경쟁자들을 더 걱정해야 한다. 보수적 색깔을 더 강경히 표현해야만 다음 당선이 약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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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오바마와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기울고 있다.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미국 전체를 인질로 잡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한다면, 이는 오바마케어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공화정치제도와 민주주의가 걸린 문제라고 대다수 언론들은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미국의 리버럴 세력들은 좋은 기회를 만났다. 90년대 이후 미국의 사회복지제도 축소를 주도하던 공화당 내 초강경 보수 소장 의원들의 적나라한 당파적 본질이 드러나고, 차기 총선에서 유리한 정치지형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러야 할 대가다. 오는 17일까지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상한선을 올려주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돈이 바닥난다. 예산안도 통과되지 않은데다 연방정부가 돈을 차입하는 채권발행 등도 못해 빈 주머니를 차게 되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이번에 예견되는 연방정부 부채상한선 인상 실패가 가져올 연방정부 폐쇄 장기화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계속되는 현재 상황에서 부채상한선 인상 실패는 특히 세계경제의 마지막 안전처인 미국 국채의 신뢰성을 파괴해 또다른 금융위기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공화당의 강경파가 전문가들의 이런 과학적 합의와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류여서 아마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국가부도 사태가 나게 해서 금융위기가 헌정 위기로까지 치닫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크루그먼의 경고와 우려가 과장됐다 할지라도 미국은 그에 준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가를 치러도 공화당의 그 ‘개자식’들은 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 공화당의 현 지도부와 온건파들만이 유탄을 맞을 것이다. 다음주부터 미국이 그 ‘개자식’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도발한 전쟁을 어떤 대가를 치르고 해결할지 세계는 지켜볼 것이다. 아마 미국 리버럴 세력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공산이 크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3.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