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센 귀성기념전시회 현장

지금 제로센 (Zero Fighter)은 일본을 위로한다. 지난 11월21~24일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주오구 8번지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1층 전시홀에서 ‘제로센 귀성 기념전시회’가 열렸다. 주식회사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이 주최했다. 이번 전시회는 이 회사 가라키 요시노리(57) 대표이사와 이시즈카 마사히데(53) 이사가 2012년 9월 시작한 ‘제로센 귀성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영식(零式) 함상전투기’가 정식 명칭인 제로센은 일본의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40년 해군의 요구로 설계한 전투기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포함해 2차대전에서 널리 사용됐다. 행사에 공개된 제로센은 미쓰비시중공업의 22형으로 1970년대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됐다. 한 미국인이 구입해 러시아제 엔진으로 교체하는 등 부품을 많이 바꿔 비행 가능 상태로 복구됐다. 당시 이시즈카 마사히데는 뉴질랜드에서 의류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2008년 이 비행기를 구입하고 이듬해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을 설립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제로센을 일본에 돌려보내는 작업에 나섰다. 독지가인 가라키 요시노리가 프로젝트에 합류해 현재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행사의 취지는 제로센을 기술력의 상징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은 홈페이지에서 “제로센의 기술은 일본인이 가진 정교함으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정신은 현재 일본 제품에 이어지고 있다. 제로센은 현대 일본의 ‘모노즈쿠리’(혼신을 다한 제품 만들기)의 원점이다. 오늘날 일본 경제는 여러 요인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 지금 (일본 기술의) 원점인 제로센에 주목해 제로센이 태어난 고향 일본의 하늘을 나는 것은, 일본의 모노즈쿠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제로센은 추락 당시 발견된 엔진, 동체 앞부분, 뒷부분 등 세 부분으로 분할돼 전시됐다. 미국에서 수리됐을 때 교체돼 최근 비행 때까지 사용된 엔진도 함께 전시됐다. 실제 모습으로 복원된 계기판도 중앙 기체 공개장 옆에서 함께 전시됐다. 1회 입장 티켓 2500엔(약 2만3000원)으로, 관람객은 한 시간 단위로 교체됐다.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은 모두 6000여명이 전시회를 방문했다고 26일 밝혔다. 현재 기체와 부품이 분리된 상태인 제로센을 수리해 일본에서 비행시킬 뜻도 갖고 있지만 구체적 단계까지 진행된 건 아니다. 비행기도 수리해야 하고 정부의 비행 허가도 얻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 단체는 비행을 위해 필요한 경비 2000만엔을 모금하는 행사도 함께 벌였으나, 현재 모금액은 5% 안팎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나이 많은 남성들과 젊은 여성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전쟁세대는 거의 사망했기 때문에 실제 2차대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오는 것은 아니고 역사에 관심있는 남성과 영화 등을 통해 제로센을 접한 젊은 여성들이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라키 요시노리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독특한 50대다. 대학 전공은 비행기와 전혀 무관했다. 대학을 나와서도 티켓 발권 시스템을 만드는 아이티업체를 운영했다. 학생 시절에도 역사에 무관심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제로센에 열광하는 일본의 평범한 50대’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22일 행사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확실히 전쟁은 나쁜 것이었고, 제로센이 나쁜 곳에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그 시기에 제로센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라며 “(제로센의) 기술력을 향후 일본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70년 전에 이런 비행기를 설계했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했다. 컴퓨터도 없이 전부 수작업으로, 심지어 단기간에 이렇게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기술자들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물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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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키 요시노리는 “제로센의 기술적 측면보다 제로센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사용됐다는 역사적 문제로서 주목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한겨레>의 질문에 “한국인에게 이 이벤트의 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전쟁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라며 “그러나 ‘일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기다. 현대 일본인은 활력이 없다. 그래서 일본이 더 나은 기술강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의 굉장함을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달아야 한다”며 “한국인도 제로센을 보고 ‘일본인도 이런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이 이벤트는 성공”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의 제로센에 대한 관심은 전쟁의 역사와 기술적 성취는 별개라는 태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활력이 떨어진 경제적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와 과거 역사에 대한 재인식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제로센을 조종한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영원의 제로>가 개봉됐다. 2006년 8월 출판된 햐쿠타 나오키의 동명의 원작 소설은 지금까지 390만부 이상 팔렸다. 영화, 만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제작에는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고단샤(강담사) 등 다수의 출판·미디어기업도 참여했다. 한편 일본 최초의 비행장에 세워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 항공발상기념관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호리코시 지로 출생 110주년을 맞아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