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아베노믹스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데 왜 수출은 늘지 않을까?

‘아베노믹스’가 고민에 빠졌다. 2012년 12월 집권한 아베 정권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 장기침체를 끝내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 자금을 푸는 ‘아베노믹스’를 실시해 왔다. 통화량을 늘림으로써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내수와 수출을 늘린다는 성장 방안이다. 그러나 내수는 지난 4월 단행된 소비세 증세로 한풀 꺾였고, 수출도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

2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09.72엔까지 올라 6년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110엔 돌파가 임박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올 1~8월 일본의 수출액은 47.8조엔으로 비슷한 환율 수준이었던 2007년 같은 기간의 9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12년 가을만 해도 1달러당 80엔 초반이던 엔화 가치가 현재 30% 넘게 떨어졌지만, 물가 변동치를 감안한 실질수출은 크게 늘지 않고 게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8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실질수출 통계를 보면, 8월엔 96.7(2010년=100 기준)을 기록해 2달 만에 오히려 하락 반전하기도 했다.

엔저에도 수출이 늘지 않는 ‘아베노믹스의 수수께끼’를 둘러싸고 일본 안에서는 논쟁이 한창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9일 세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먼저 일본 수출의 ‘쌍두마차’인 자동차와 가전산업의 구조 변화다.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불어 닥친 엔고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 거점을 대거 해외로 옮겼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해외 생산 비율이 2008년엔 44%였지만, 2015년엔 65%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영향 등으로 2013년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2007년에 견줘 30% 정도 줄었다. 국내에 남은 생산 라인은 주로 고급 차종인데,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고급차는 엔저가 이어져도 현지 판매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자동차 기업들의 실적은 향상되고 있지만, 수출 대수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다음은 소니로 상징되는 일본 가전산업의 몰락이다. 한때 일본 수출을 견인하던 텔레비전, 휴대전화 등의 2013년 수출액은 2007년에 견줘 30%나 줄었다. 야마다 히사시 일본종합연구소 조사부장은 일본 가전제품의 수출 부진에 대해 “일본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세번째는 예상보다 심각한 세계 경제 침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를 보면, 엔-달러 환율이 현재와 비슷하던 2007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5.3%였지만, 올해는 3.4%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4.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