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隊将校問題

대한민국 장교는 왜 동기생의 약점을 들춰내고 싶은가

육군 인사와 ‘초조주’

▶ ‘초조주’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군은 매년 9월 초가 되면 진급 심사를 시작합니다. 10월 군 인사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애타게 진급을 기다리는 많은 군인은 이 기간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서울 용산에서,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근처에서 동료와 함께 술잔을 기울입니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마시는 술, 그래서 초조주랍니다. 군 인사가 곧 이뤄질 예정입니다. 군 인사의 문제와 초조주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참여정부가 임명한 첫번째 육군참모총장은 남재준 대장(현 국가정보원장)이었다. 남 총장은 2003년 4월 임명되자마자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존경하는 참모총장님께”로 시작되는 4쪽 분량의 이 편지에는 군 인사정책을 신랄히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육사 38기의 입장이 담겨 있었다. 남 총장은 이 편지를 인사참모부장에 건네주었다. 이어 편지는 청와대,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등 관계기관에 전파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육사 총동창회(당시 회장 박세직) 회장단은 국방부와 육군을 방문하여 “군 인사에서 진급 적체가 현 상태로 방치될 시 군의 장래가 걱정스럽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군 인사 적체가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가 군 안팎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2003년 5월2일 각 군 본부를 순시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인사제도가 합리적이지 못할 때는 젊은 나이에 (일할 사람은) 전역을 해야 하고, 지금처럼 33년을 근무하는 사람들이 16년 만에 중령, 대령 진급까지 끝내 놓고, 대령으로만 15년을 근무하는 불합리한 계급조직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바윗덩어리처럼 눌러앉아 있으니까 인사의 흐름, 곧 (하위 계급의) 상위 진출의 흐름 자체가 중단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의 흐름이 중단되면 썩는 것과 같다.”

조 장관이 당시의 군 인사를 ‘고인 물’에 빗대며 “장관이 앞장서서 인사 개혁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하자 자리에 참석한 장성들은 긴장했다. 이렇듯 국방의 최고위층까지 나서서 인사 개혁을 외치는 배경에는 2003년 대령 진급 심사를 앞둔 육사 38기 이하 기수의 위기의식과 더이상 군 인사를 방치할 수 없다는 예비역들의 인식이 함께 작용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남재준 사람, 김장수 사람…

이듬해인 2004년 10월, 육군본부에서는 사상 초유의 인사대란이 벌어졌다. 투서와 괴문서 살포, 청와대의 군 인사 개입 의혹과 이에 대한 육군본부의 저항, 사상 초유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수사로 얼룩졌던 육군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사파동이었다. 군 검찰이 육군본부의 인사비리 의혹을 수사한 결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검증위원회, 진급관리과 소속 장교 4명이 기소됐고, 이들 가운데 2명이 집행유예, 2명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진급에 대한 장교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가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결국 터질 게 터진 셈이다.

이러한 인사파동으로 온갖 수모를 당한 남 총장의 후임으로 김장수 대장이 임명되는 2005년 4월, 또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 당시 남 총장은 인사파동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몇몇 장교를 “구제해 달라”며 후임 김 총장에게 부탁하였으나 김 총장은 “내가 왜 그 사람들을 구제해야 하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 직후 진급 심사에서 남 총장이 부탁한 장교를 진급에서 탈락시켰다.

10월 진급심사를 앞두고

먹는 술은 일명 ‘초조주’

유력자 인연에 진급 좌우되니

장관 누가 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이 바뀔지 초조한 탓이다

육사 동기생 수는 많은데

선배 기수는 바위처럼 버텨

1989년엔 41살에 장군 됐는데

지금은 50살 돼서야 가능하니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남재준 총장은 이후 사석에서 “내가 나간 이후 육군은 쓸 만한 인재를 다 죽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일 때문에 지금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사이에는 10년 전 육군의 인사를 두고 감정적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과거 두 총장의 미묘한 인연 때문일까? 아직도 군 안팎에는 ‘남재준 사람’, ‘김장수 사람’이라는 전·현직 장교에 대한 구분법이 통용되는 실정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장수 총장 후임으로 임명된 박흥렬 총장은 인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통’으로 지금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부임해 있다. “나도 한 칼 있다”며 육군 인사를 줄줄 꿰는 사람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역시 2010년에 부임하자마자 전임 장관의 인사방침과 달리 고참급 정책 엘리트를 과감히 발탁하는 인사를 단행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자기가 인정한 인재는 반드시 쓴다는 과감성을 평가받는 반면, 이로 인해 진출의 길이 막힌 또 다른 장교단으로부터는 불만을 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여년간 육군의 인사는 매년 늘어나는 인사 적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과도한 진급 경쟁의 부작용으로 얼룩진 대혼란기였다. 무언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싸우는 군대’가 아니라 ‘진급하기 위한 군대’로 전락할 위험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위기의 시대였다.

역대 국방부 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만 큰 탈이 없으면 된다는 무사안일과 ‘자기 사람 챙기기’라는 악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인사 시스템이 개선되지 못하고 여전히 유력자와의 인연에 따라 진급이 좌우된다는 육군 장교단의 믿음이 굳어진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진급을 하려면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된다”는 생각 외에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누가 장관, 총장으로 오는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유력자 인사’ 풍토에서, 진급이 되려면 “누구 줄이든 잡아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확산되어 있다. 장교들의 시선이 그들이 적이라고 말하는 북한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삼각지로,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유신 사무관 특채’ 사기당한 육사 38~48기

군 인력구조의 왜곡현상을 빚고 있는 우리 군의 문제적 인사 시스템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군 인사정책의 최대 피해집단이며 ‘좌절의 세대’로 불리는 육사 38기부터 올해 장군 진급심사 대상이 되는 43기까지 어느 기수를 보아도 진급의 숨통은 바싹 조여져 있다. 육사 38기는 1978년에 박정희 정권이 육사를 졸업하고 장교로 일정 기간 복무하면 정부 5급 공무원인 ‘유신 사무관’으로 특채해 준다는 모집요강을 보고 육사에 입교한 최초의 기수다. 이 때문에 이 기수는 지원자가 급격히 늘고 정원도 300명 수준으로 확대되었는데, 이들이 유신 사무관으로 나갈 차례인 1988년에 이 제도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육사 37기까지만 사무관 진출이라는 혜택을 누렸고 정작 국가의 약속을 믿고 군에 복무하던 38기는 공무원 진출의 길이 막힌 채 전부 군에 남아 있게 되었다. 당연히 동기생의 수가 많은 이들은 진급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한 건 48기까지 전부 해당된다.

여기에다가 군에 더 오래 남아 있으려는 선배 기수들의 압력으로 군 정년이 연장되는 것을 뼈대로 한 군인사법 개정이 1989년, 1993년 두 차례 있었다. 이로 인해 대령 이상 상위 계급은 고참 장교들로 채워졌고, 나가지도 않고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이들 때문에 38기 이후 기수들은 진급 시기를 자꾸 늦춰야만 했다. 그 결과 1989년에는 41~42살에 장군이 되었는데 지금은 50~51살이 되어서야 장군이 된다. 진급 자체도 어렵지만 진급이 되어도 이미 장년층에 접어드는 시기다. 이러는 동안 군 전체는 장교의 고령화로 노인 군대가 되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체력이 문제다. 옛날 군 지휘관과 달리 지금의 대대장, 연대장들은 병사들과 함께 뛰지 못한다.

인사 적체는 하위 계급에도 영향을 끼쳤다. 상위 계급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금의 계급에 복무해야 하는 기간을 최저복무기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대위를 8년간 해야 소령으로 진급했고 중령을 7년을 해야 대령으로 진급했다. 동일 계급에 장기간 적체되니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떤 딸이 초등학교 때 아빠가 중령이었는데 대학 입학할 때도 중령이었다. 그러니 신상명세서에 아빠 직업을 ‘중령’으로 기재하더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위 계급의 장교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 못했다. 하도 오랫동안 대위 계급을 다니까 동창들이 “너 군대에서 무슨 사고 쳤냐?”고 묻더라는 얘기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약간 상황이 나아져 최저복무기간이 대위는 6년, 중령은 5년으로 줄어들었다.

고참이 즐비하게 버틴 한국군 인력구조는 이미 싸우고 일하는 군대가 아니다. 하위 계급은 인원이 모자라는데 일 안하는 상위 계급은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진급 적기가 경과하여 장군으로 진급하지 않는 대령, 곧 ‘장포대’(장군 되기를 포기한 대령)가 대령의 30%를 넘는다. 국방부 조직담당 부서가 전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거의 3000명에 이르는 한국군 대령 중 실제 ‘전투 직위’는 30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주로 지원, 파견, 교육, 행정 등 비전투임무에 투입되어 있다. 전투형 군대와는 거리가 멀다. 진급 경과자가 보직되는 부사단장 대령 한명에게 소요되는 연간 비용은 연 급여 8300만원, 퇴직금 1800여만원, 판공비 30만원, 차량 등 부속인력을 100만원으로 보았을 때 약 1억200여만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낭비되는 국방예산이 연간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

군 인력적체 불만이 낳은 두 번의 쿠데타

국방의 인력과 조직 구조 전체가 이미 중병이 들었지만 정작 군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실상을 감추기 급급하다. 그보다는 당면한 진급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급선무다. 도대체 육사는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육군 소위로 임용될 때부터가 인생의 목표는 장군이 되는 것이고, 죽으면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인생은 알지도 못한다. 분명히 위관장교 때는 동기생이었는데, 영관장교 때는 경쟁자가 되고 장군이 되면 적이 되는 것이 장교단 문화다. 매년 10월이 되면 진급을 앞두고 먹는 술을 ‘초조주’라고 한다. 장관과 총장이 누가 올지, 그래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초조하기 때문이다.

20~30년 전에는 대략 육사 한 기수에서 20~25%가 장군이 되었는데 지금은 13~15% 정도에 그치니, 장군 진급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한 육사 기수 중 60~70%는 자기가 장군이 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치열한 생존게임 결과 진급이 발표되고 난 다음에는 대다수가 인생 실패자,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건 견디지 못할 불명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진급을 앞두고 경쟁자인 동기생의 약점을 들춰내고 싶은 유혹과 음해, 비방이 나타난다. 여기에다가 국정원과 기무사령부를 비롯한 군 검찰, 헌병, 감찰 기능이 장교의 신원을 각기 관리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음해성 정보가 기관에 포착되기라도 하면 진급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진급을 앞두고 계룡대 인근의 식당에서는 진급 대상인 장교가 기무사, 국정원 요원들과 술자리를 갖는 장면이 흔히 목격된다. 또한 주변의 여론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진급을 앞두고 선후배들에게 인사 다니기가 바쁘다. 여기에는 가족까지 동원된다.

한국 현대사를 회고해 보면 1961년의 5·16과 1979년의 12·12 쿠데타는 인력 적체가 심각해진 장교단의 불만이 고조된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국가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의식한 일군의 장교들이 헌정질서를 전복했다는 점에서 군의 인사 불만은 국가의 불안요소였다. 마르크 블로크라는 빼어난 프랑스의 역사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집필한 <이상한 패배-1940년>에서 장교단의 진급 경쟁을 프랑스 군 조직의 폐단으로 지적함과 동시에, 이것이 독일에 패배한 이유라고 했다. 적과 싸우는 장교단이 아니라 동기생과의 경쟁에 몰입하는 군대는 내부적으로 붕괴되었다.

이를 개선해야 할 우리의 정치권력과 군사지도자들은 “결과에 대한 승복”만 강조하며 문제를 근원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려고 했다. 진짜 해결책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때 군 장교의 명예퇴직 활성화로 적체인원 해소를 추진하기도 했고, 제대군인 취업 자리를 만들어 군에서 조기에 전역시키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마저도 자신의 진급이 더 급한 엘리트 장교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무관심에 정작 그 자신이 피해자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한겨레신문(201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