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러와 경제협력강화

북, 일 이어 러와도 경제협력 강화

무역대금 루블화 결제 등 합의

유엔 대북 경제제재 타격 불가피

북한과 일본의 지난달 말 ‘스톡홀름 합의’에 이어 북한과 러시아가 경제협력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와 일

본을 탈출구로 삼으면서, 남한의 대북 제재도 사실상 무력화되고 유엔 차원의 다자 제재도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 5일(현지시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러-북 ‘정부 간 통상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이르면 이달부터 러시아 루블화를 무역대금 결제수단으로 삼기로 했다. 협력위원회 러시아 쪽 위원장인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이번달부터 러시아와 북한이 루블화로 결제하고, 북한은 러시아 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루블화는 국제 금융거래의 기본인 기축통화는 아니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 등에 쓰이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세계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거래 비중(200% 기준)은 2013년 1.6%로, 2001년 0.3%, 2007년 0.7% 등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4위, 11.8%)와 중국 위안화(9위, 2.2%)에 이어 12위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제재로 달러를 통한 교역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위안화에 이어 또 하나의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루블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사용을 한다”며 “이들과의 직접 거래는 물론, 북한이 외국과 거래를 할 때 루블화가 간접적인 거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북한과 러시아는 북한의 대러 채무 108억달러도 90%를 탕감하고 10%는 가스관·철도 건설 등 양국 공동사업에 쓰기로 했다. 결제수단과 부채 등 북-러 사이의 무역을 가로막던 걸림돌을 치운 것이다.

러시아의 대북 투자도 강화될 예정이다. 특히, 갈루시카 장관이 북한과의 협의를 마친 뒤 북한 내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러시아가 참여하는 방안과 북한이 무역 대금을 지하자원인 현물로 결제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소개한 부분은 한국의 대북 제재로 인해 생긴 공백을 치고 들어오는 의미를 갖는다. 남북은 2005년 7월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북쪽의 지하자원과 남쪽의 경공업 지원을 교환하는 이른바 ‘유무상통’ 경협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유무상통’ 경협은 흐지부지됐으며, 특히 천안함 관련 2010년 ‘5·24 조치’에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간 일반교역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그간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사이 북한 자원을 중국과 러시아가 선점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5.24 조치’가 취해진 이후 북한의 중국 종속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 러시아와의 경협 강화로 실효성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차원의 유엔 대북 경제제재도 일정 정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는 주로 군

사적 거래 사치품 수출 핵무기 및 대량 살상무기와 연결될 것으로 판단되는 거래 및 금융서비스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유엔 제재는 엄밀히 따지면 일반적인 무역 거래는 해당하지 않지만,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교역을 더디게 만드는 구실을 했다. 러시아와의 경제교류 활성화는 이런 분위기에 균열을 낼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겨레신문(2014.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