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 사회지표

무너진 공공성, 가라앉은 한국사회

세월호는 국내 여객선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깔끔하고 화려한 식당, 카페 등의 내부시설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화물이 잘 묶이지도 않은 채 과적돼있고, 곳곳에 안전시설이 고장나 있는 줄은 몰랐다.

2014년 한국 사회의 외관은 화려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평등, 빈곤, 빈약한 사회안전망이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세월호 승객들은 살기 위해 배를 탈출했지만, 매년 1만5천여명의 ‘한국호’ 승객들은 이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 속도는 영국의 6배, 일본의 3배에 이를 정도로 빨랐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국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녔다. 1996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며 개발도상국의 옷을 벗었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1975억달러로 경제규모로 보면 세계 15위다. 1990년 6303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GNI)은 24년 만에 3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을 2만6244달러~3만535달러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67.6%로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1위다. 고등학교 이수율(98%)과 전문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율(64%) 또한 오이시디 1위다.

우리나라가 오이시디 1위를 차지하는 지표들은 더 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회원국(평균 12.6명) 가운데 자살률(10만명 당 33.3명)이 1위다. 9년째다. 2011년 1년동안 1만5681명, 하루에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자살률이 심각하다. 오이시디 국가들의 평균을 보면, 노인자살률이 2000년 22.5명(인구 10만명당)에서 2010년 20.9명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34.2명에서 80.3명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 아이를 낳는 사람도 적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수)은 2010년 기준 1.23명으로 오이시디(평균 1.74명) 가운데 아래에서부터 1위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자살은 자기생명을 중단함으로써 공동체를 탈출하는 것이고, 저출산은 생명을 더이상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이대로 가면 인구가 줄어들어 인간공동체로 존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런 인간지표들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느끼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생명에, 죽음에 마비돼있다”고 말했다.

1인당 GDP 3만달러 육박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한국 사회 외관 화려해졌지만

자살률·저출산율 등 ‘인간지표’ 심각

빈곤·차별·빈약한 사회안전망 기인

세계 최고 자살율의 뒤에는 빈곤, 차별, 장시간노동이 존재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49.3%)은 오이시디 국가(평균 13.5%) 가운데 가장 높다. 오이시디 기준 임시직노동자(기간제·파견·일일근로자 포함) 비율은 23.76%로 전체 33개 나라 가운데 3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기준(기간제, 시간제, 파견·용역, 특수고용, 영세사업장 임시직노동자 포함)으로는 임금노동자 가운데 45.9%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41만원으로 정규직(284만원)의 49.7%다. 최저임금(2013년 시간당 4860원)도 받지 못하는 임금노동자가 208만8000명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연간 2090시간으로 오이시디 국가(평균 1776시간)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도 10만명당 20.99명으로 오이시디 21개 나라 중 1위다. 하루에 5명 가량(2013년 연간 1929명)이 일을 하다가 죽고 있다. 노조조직률은 10.3%에 불과해, 오이시디 33개국 가운데 30위다.

국가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료비 중 공공부문에서 지출하는 비중이 55.3%로 오이시디(평균 72.2%) 34개국 가운데 31위다. 이는 병에 걸렸을 때 환자 본인이 내야 할 돈이 많다는 의미다. ‘세계 최악의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이 32위로 비슷한 수준이다. 전체 복지 수준도 낮다.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9.6%로 오이시디(평균 22.1%) 33개국 중 32위다. 나라가 가난해서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일 때 오이시디의 평균 공적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19.9%였고, 스웨덴은 34.5%, 미국은 13%였다.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 오이시디가 지난해 소득, 일자리, 공동체 생활 등 11개 영역에 대한 점수를 매겨 행복지수를 따져보니 한국은 조사대상 36개국(오이시디 34개국과 브라질, 러시아) 중 27위였다. 미래 세대를 끌고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더 불행하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오이시디 23개국 중 우리나라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한국 사회는 겉으로 멀쩡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있다.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사회해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신문(2014.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