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43년 만에 유럽공동체와 결별

영국 43년 만에 유럽공동체와 결별

2013년 1월22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만 해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6개월이 지난 2016년 6월23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민심은 결국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1973년 뒤늦게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U)에 가입한 뒤 보조금이나 분담금, 유로화 도입 등에서 다른 회원국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던 영국의 유럽공동체 역사는 4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애초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정은 재정위기와 긴축재정으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던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국민투표를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우월한 지위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하면서도,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영국 내 여론을 달래며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의 승리를 이끈다는 계산이 숨어있었다. 보수당은 2015년 5월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과반 이상을 얻었고,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도 현실화됐다.

브렉시트의 파장을 우려한 유럽연합은 영국의 민심을 어르고 달랬다. 지난 2월 18~19일 이틀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럽연합 28개국 정상들은 유럽연합 규약의 ‘더 끈끈한 결속’ 조항에서 영국은 예외로 명시하는 등 영국의 요구안 대부분을 받아줬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저지 개혁안’으로도 불린 합의안이 통과된 뒤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에 남도록 온 힘을 다해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월15일 10주간의 공식 유세가 시작되자 캐머런 총리를 필두로 한 잔류 캠페인 ‘유럽 내 더 강한 영국'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주축이 된 ‘탈퇴에 투표를’ 캠페인과 연일 대립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혼전이었다. 5월 말까지 잔류가 앞섰던 영국 여론은 6월13일 잔류 39%, 탈퇴 46%(유고브)를 보이는 등 탈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6월16일,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해오던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이 피살당하자 다시 잔류 여론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23일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탈퇴(51.9%)가 잔류(48.1%)를 3.8%포인트 차로 앞서며 3년6개월간의 논란도 막을 내렸다. 유럽대륙으로부터 ‘영광스러운 고립’을 추구해왔던 영국은 결국 정치적, 경제적 우려의 목소리를 누르고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출처: 한겨레(2016.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