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가난한자와 싸우다

“박 대통령,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싸우고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서 ‘민영화 저지 결의대회’ 열려

주최쪽 추산 10만여명 참가 “멈춰라 민영화” 외쳐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3도까지 내려가는 한파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멈춰라 민영화’, ‘힘내라 민주주의’라고 적힌 팻말을 든 손을 감싼 장갑 속으로 스며드는 냉기를 이기려 시민들은 다른 손에 핫팩을 쥐었다. 칼바람 속에서도 서릿발같은 목소리는 우렁찼다. “철도 파업 사수하고, 국민철도 지켜내자”,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외치는 구호가 광장을 뜨겁게 메웠다.

민주노총이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철도파업 20일째인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영화 저지·노동탄압 분쇄 철도 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지난 22일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 진입해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 작전을 벌인 정부를 규탄하고, 철도 민영화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한파 속에서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 ‘안녕들 하십니까’ 행사에 참석했던 학생 등 10만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2만3000명)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시도 하려다 막히자 공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총파업 투쟁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규탄 대회를 이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22일 민주주의를 짓밟는 권력의 모습을 봤다”며 “국민들이 파업기금을 모아주고 청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이번 파업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가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싸우고 있다. 경제를 키우지 않고 탐욕을 키운다”며 “민주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1월9일과 16일에도 총파업을 이어가자. 2월25일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에는 투쟁의 함성으로 국민을 이기는 권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함께 연대한 한국노총 문진국 위원장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정부에서도 노동운동의 심장부에 공권력을 투입한 전례가 없다”며 “현 정권은 스스로 노동탄압, 반 노동자 정권임을 증명하고, 우리 노동운동을 후진국 수준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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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영상으로 파업에 참가한 이들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국 철도를 지키고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합법 투쟁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무엇이 그리 급하고 두려운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면허를 발급했다”며 “우리의 요구는 안전과 정시운행이 생명인 철도를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지키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의 아들 등 철도노조 조합원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박 수석부위원장의 아들 박광민 군은 “파업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며 “책임을 왜 국민과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냐”고 되물었다.

시민들도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입을 모았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정귀현(54)씨는 “정부의 노동자 탄압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자영을 하고 있지만 같은 서민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생각을 그만 두길 바란다”고 했다. 회사원 김지민(37)씨도 “집회에는 처음 나왔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란다”며 “국민과 더 소통해야 정부가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후 2시에는 탑골공원과 보신각, 영풍문고 앞에서는 사전집회가 열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500여명(경찰추산 약 300명)은 탑골공원에서 사전집회 성격의 전국교사결의대회를 갖고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과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 철회 등을 요구한 뒤 서울광장으로 합류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보신각 앞에서 ‘변호사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행사를 가진 뒤 민주노총 파업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더 이상 법정에만 앉아 변론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과 맞서기위해 연대의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정부가 무력을 훼손하는 것에 침묵할 수 없다”며 “우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파업에 참가한 이들은 오후 5시반께 해산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광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174개 중대 1만3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차로를 점거한 미신고 행진, 불법 가두시위, 집회 전후 주변 도로 점거 및 경찰관 폭행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 장비를 사용해 현장 검거 등 엄정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출처: 한겨레신문(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