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환율만 치솟고 살림살이 곤두박질

“최근 엔화 가치 하락 속도는 적절하지 않다.”(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상)

“엔화 약세 추세가 과도하다. ‘자기 궁핍화’(수출 경쟁국이 아닌 자국이 피해를 입는 상황)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이와타 가즈마사 전 일본은행 총재)

1달러당 110엔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 엔화 약세 속도에 대해서 일본 안에서도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12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대규모로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를 시행하면서 엔화 약세는 계속돼 왔지만, 일본 경제가 지속적인 회복세에 들어서는 뚜렷한 신호는 없이 환율만 가파르게 상승(엔화 가치 하락)하는 상황에 대한 초조함이 확산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세는 올해 들어 다시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4.6%를 기록했고, 지난달 실업률도 6.1%로 비교적 양호해 선진국 가운데 경기회복 신호가 가장 뚜렷하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이 다음달 양적완화를 종료해 시중에 달러화를 푸는 정책을 종료하기로 해 엔화에 견줘 달러의 매력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다음달 초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금융완화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는 엔화 가치를 더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다. 영국계 헤지펀드 에스엘제이(SLJ) 매크로파트너스의 스텐픈 젠은 “일본은행이 11월까지는 추가로 금융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해, 다음달이 아니더라도 추가적 금융완화 정책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전했다.

문제는 아베노믹스가 기대했던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엔화가 달러당 80엔대였던 2012년 말부터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했지만, 일본의 경기회복 신호는 뚜렷하지 않다. 일본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1%(연율)를 기록했다. 일본은 1분기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사재기가 벌어졌다가 4월 소비세 인상 뒤 소비가 급격히 줄면서 2분기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성장세가 미약하다.

아베노믹스가 목표로 삼고 있는 디플레이션 탈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4월엔 소비세율 인상으로 신선식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인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 3.2%로 올라, 일본 정부가 목표로 한 2%대 물가상승률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후 5월엔 3.4%를 기록한 뒤 6월과 7월 각각 3.3%, 8월 3.1%로 다시 하락하는 추세다.

엔화 가치 하락을 통해서 얻은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자원과 물품을 수입하는 가격이 올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석유·가스 수입 가격이 높아지고 에너지 가격이 올라 서민들의 부담이 계속 커졌다. 일본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해 기업들에 임금 상승을 촉구하고 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2분기 노동자 실질 임금 증가율은 -1.8%였고,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로는 -2.2%로, ‘소득 주도 성장’이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국내총생산의 절반가량을 점유하는 개인 소비가 늘지 않으면 아베노믹스는 성공하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주장한 ‘세개의 화살’ 중 마지막인 구조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한, 아베노믹스는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정책을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출처: 한겨레(2017.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