強制労働の現場

일제 강점기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남태평양 제도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우리의 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역사에 대해 일본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당시의 흔적이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은준수 기자가 다녀왔습니다.남태평양에 떠있는 팔라우 군도.수도 코로르와 이웃 섬을 잇는 '아이고' 다리입니다.1930년대 참혹했던 토목공사에 내몰렸던 한국인들을 기억하며 현지인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인터뷰>에티테로네즈(78살):"어릴 적 일본 경찰이 때리면 (토목공사에 동원된)한국인들이 아이고 아이고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강제 노역의 흔적은 밀림 곳곳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녹슨 채 쌓여있는 수 백통의 연료 탱크.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기름을 나르는 일도 한국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인터뷰>현지인:"(한국인들은)노예처럼 일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임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만 주고 이용했습니다."

수도 코로르에서 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펠렐리우 섬.태평양 침략 전쟁을 준비하던 일본군의 전진 기지가 있던 곳입니다.지난 1937년 완공된 일본군의 활주로입니다.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은 이런 군사 시설을 짓는데도 동원됐습니다.

한국인들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탈진하거나 풍토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군 위안부들은 해안 동굴 곳곳에 수십 명씩 강제 수용돼 감금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인터뷰> 김정곤:"수영도 못하지, 배도 없지. 그러니까 그냥 갇혀서 살기만 기다렸지."

일제 강점기 팔라우를 비롯해 남태평양 섬으로 강제 징용된 한국인은 만 6천 여명,일본 정부는 사죄는 커녕, 우리 정부의 진상 규명 요청에도 여전히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팔라우에서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出処: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