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미국 공화당 후보 트럼프 비교

한국과 미국의 보수 주류들이 지금 비슷한 처지이다.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로 보수 주류 세력이 심각한 내홍(内訌:ないこう)에 처해 있다.

먼저 박근혜와 트럼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최고권력자이고, 트럼프는 비주류 도전자라는 큰 차이가 있으나, 그 밑바닥 지지층은 유사하다. 보수적 성향의 중하류층이 이들의 밑바닥 지지층이다. 이들이 몸담은 당은 상류 보수 엘리트와 보수적 중하류층이 결합된 정당이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의 연대가 지금 흐트러질 상황에 처해 있다.

공화당은 처음부터 당의 기성 주류들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트럼프라는 존재 자체로, 새누리당은 최고권력자인 박 대통령이 ‘진박 타령’으로 상징되는 자기 세력 내리꽂기라는 친위 쿠데타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기성 주류들은 트럼프의 이민자 공격 등 인종주의 태도가 미국에서 늘어나는 비백인 유권자층을 고려할 때 향후 권력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다. 무엇보다 풍부한 이민자 노동력이 자본에 값싸고 질 좋은 혁신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이익을 해칠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출마 전에 공화당 주류들이 당 밖 기업인들의 압력으로 불법 이민자 구제 등 관용적인 이민법 개혁에 합의해준 것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이 이민법 개혁은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저학력 백인 중하류층들의 반발을 일으켜, 트럼프 돌풍의 핵심이 됐다.

새누리에서도 비슷한 균열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 파동으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의 지나치게 우경화된 국정 운영과 권력 독점은 새누리당 안팎 온건 보수주의 세력의 불만을 자아냈다. 총선을 앞둔 공천 과정에서 이런 불만은 결국 김무성 대표가 일부 공천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옥쇄 투쟁’으로 이어졌다. 새누리당 정권을 일관되게 변호하던 보수 언론들도 공천 과정에서 보인 진박들의 안하무인적 행태를 침을 튀기며 비난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믿는 구석이 있다. 자신들의 밑바닥 지지층이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생각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트럼프가 출마 선언 이후 아무리 막말을 해도 이들의 지지는 더 견고해졌다. 두 사람의 헛발질과 막말이 오히려 밑바닥 지지층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더 굳게 뭉치는 효과를 보였다.

이들의 지지층들은 자신들이 그 사회에서 다수이고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다. 다른 지역 사람이나, 다른 인종,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아간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위기의식이야말로 박근혜와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의 본질이다.

공화당과 새누리당의 진짜 주인들인 상류 보수 엘리트들은 이 내홍을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에선 트럼프가 지지층들을 데리고 공화당 주류에서 이탈하려는 거다. 한국에서 새누리당 안팎의 기성 주류 일부가 박근혜의 자장에서 벗어나보려는 거다. 트럼프는 여론 포화 속에 노출된 비주류 도전자에 아직 머물고 있다. 그러나 시간에서 결코 손해볼 것 없는 도전자이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동원 가능한 자원이 풍부한 최고권력자이다. 하지만 시간은 자기 편이 아니다.

출처: 한겨레 (2016.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