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국가신용등급

이번에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올려준 기관은 무디스라고 했어요. 피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한 곳이죠. 권위가 있다는 뜻이에요. 무디스가 이번에 매긴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Aa2예요. 그전에는 한 단계 낮은 Aa3였죠. 우리나라가 이 정도 수준의 등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무디스가 매긴 이번 등급은 사상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견줘도 매우 높은 쪽에 속해요. 무디스는 총 21개 등급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우리나라가 받은 Aa2는 그중 Aaa와 Aa1에 이어 세번째거든요. Aa2 이상 등급을 받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Aaa)와 영국, 홍콩(Aa1), 프랑스 등 8개 국가밖에 없어요. 나라 경제 규모로 세계 3위인 일본도 우리보다 두 단계나 아래(A1)에 있죠.

그런데 국가신용등급이란 거 자체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소고기도 아닌 국가에 등급을 매기는 걸까요? 일단 국가신용등급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에요. 편의상 그렇게 부를 뿐이죠. 정확한 표현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돈을 빌리기 위해서 나라 안팎에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을 말해요. 국가의 구성원인 나의 살림살이는 나빠졌는데, 국가신용등급이 올라서 이상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죠. 정부 살림살이는 좋아져도 국가의 한 구성원인 기업이나 가계의 살림살이는 나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제 국가신용등급 상승의 의미도 좀더 뚜렷해지죠? 등급 상승은 정부가 돈을 빌릴 때 그전보다는 조금 싼 이자를 물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 되어요. 마찬가지로 등급이 떨어지면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더 많은 이자를 내게 될 여지가 커진 거고요. 여러분 부모님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등급이 높은 분은 이자가 싸고 등급이 나쁘면 많은 이자를 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 생각할 수 있어요.

나아가 예전에 돈을 제때 갚지 않아 신용등급이 매우 나쁜 사람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듯이 정부도 등급이 많이 나쁘면 돈을 어디서도 꿔 오기 힘들어지지요. 실제 1997년 12월 우리나라는 신용등급이 Ba1(투기등급)까지 떨어진 탓에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죠. 국제통화기금은 정상적으로 돈을 빌리지 못하는 나라에 일정한 조건을 걸고 급전을 꿔주는 국제기구예요.

그렇다면 신용등급 평가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신용평가회사들이 무엇을 살펴보고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기냐는 거예요. 정답부터 말하면, 빌린 돈 혹은 빌릴 돈을 얼마나 잘 갚을 것인지가 신용등급을 가르는 핵심 평가 대상이 되어요. 빚 갚을 능력이 좋으면 등급이 높고 나쁘면 떨어지죠.

빚 갚는 능력을 따질 때 우선 살펴보는 게 소득이에요. 말로만 아무리 돈 잘 갚겠다고 하면 뭐해요. 갚을 돈이 있어야 할 거 아니겠어요. 정부의 소득 대부분은 국민에게서 걷는 세금으로 메워져요. 세금이 늘어나려면 가계나 기업이 돈을 잘 벌어야겠지요. 물론 가계가 가난해도 정부는 세금을 올려서 정부의 소득을 더 불릴 수 있기는 해요. 여하튼 가계나 기업이 가난해져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어요.

정부 살림살이도 중요해요. 소득(세금)이 아무리 많아도 벌어들인 소득보다 더 많이 돈을 쓰면 정부 가계부는 구멍이 날 거 아니에요. 소득만큼이나 씀씀이(지출)도 적절한지 신용평가기관들은 꼼꼼하게 따져봐요. 또 빚이 얼마나 많은지도 주목하죠. 특히 나라 밖에서 꿔온 빚과 국민이나 국내 기업한테 빌린 빚인지도 잘 살펴보죠. 우리나라처럼 경제가 개방돼 있는 나라일수록 나라 밖 빚이 많으면 불리하죠.

마지막 궁금증 하나를 풀어보죠. 등급 상승이 우리 경제가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뜻일까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볼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 상황이 신용등급이 나쁜 나라보다 좋은 것에는 다른 의견을 달기가 어렵지만, 우리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아져서 등급이 올랐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무디스의 평가 잣대가 좀 달라졌기 때문이죠.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볼게요. 무디스는 신용등급 평가 항목 중 하나인 나랏빚 규모의 적정성 기준을 과거보다 느슨하게 했어요. 이런 이유로 종전 평가 때보다 우리나라의 나랏빚 수준은 더 나빠졌지만 이 부분에 배정된 배점은 높아지게 됐지요.

무디스가 잣대를 손질한 배경이 있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너나 할 것 없이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많이 끌어다 쓰면서 나랏빚이 크게 늘어났어요. 무디스가 예전 잣대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러 나라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끌어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죠. 이러다 보니 무디스는 평가 기준을 좀 느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나라는 일본 등 다른 나라보다 나랏빚이 적게 늘어난 덕택에 과거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우리나라의 나랏빚 수준은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적은 쪽에 속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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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는 잣대도 크게 보면 일반 기업이나 개인에게 등급을 매길 때와 매우 비슷해요. 돈은 잘 벌고 있는지, 번 돈은 짜임새 있게 잘 쓰고 있는지, 빚은 얼마나 되는지를 본다는 거지요.

이제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지요. 앞에서 등급이 좋으면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물어야 하는 이자가 줄어든다고 했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일단 한국전력이나 수출입은행과 같은 공기업도 혜택을 입어요.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공기업 등급도 덩달아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공기업들도 돈을 빌릴 때 물어야 하는 이자가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죠. 이번에도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과 더불어 공기업 등급도 함께 올렸죠.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공기업 신용등급도 덩달아 오르는 건, 공기업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엔 결국에는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에요.

국가신용등급 변화는 민간기업의 신용등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줘요. 다만 그 영향은 공기업보다는 매우 적죠. 민간기업이 빚을 갚지 못했다고 해서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대로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정부 살림살이 바탕이 기업의 살림살이니까요.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모조리 바닥인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만 우뚝 솟기는 어렵겠지요.

이처럼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는 건 분명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이번에 많은 사람이 국가신용등급 상승을 혼란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무디스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에요. 무디스를 비롯해 세계 주요 신용평가기관들은 과거에 몇 가지 실수를 범한 탓에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었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기를 꼽을 수 있지요. 당시 무디스 등은 매우 복잡하게 설계된 특정 금융상품(주택담보대출 채권과 이를 바탕으로 만든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신용등급을 매우 좋게 매겼는데, 알고 보니 이 상품들은 거대한 위험 덩어리였던 사실이 뒤늦게 탄로가 났지요. 많은 사람이 신용평가기관이 부여한 높은 신용등급을 철석같이 믿고 너나없이 그 상품들을 사들였다가 큰 손실을 입었어요. 신용을 평가하는 일로 돈을 버는 기관이 스스로 신용을 잃어버린 꼴이 된 셈이죠.

또 다른 측면에서도 신용평가기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어요.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매기는 이유는 투자자를 위해서랍니다. 쉽게 말해 한국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들에게 한국이 신용이 높은 나라인지 그렇지 않은 나라인지 알려주는 일이 신용평가기관이 등급을 매기는 목적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말예요. 이런 일을 하면서 받는 대가는 투자자가 아니라 평가를 받는 대상으로부터 받는다는 거죠. 신용평가의 대가를 누구에게서 받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아요.

생선가게에 여러분이 갔어요. 어떤 생선이 신선한지, 맛있을지 잘 모르겠지요? 이런 걸 알려주는 구실을 하는 생선 전문가가 있다고 쳐요. ‘이 생선은 잡은 지 오래되어서 상한 것 같다’ ‘저 생선은 남해 바다에서 방금 잡아 온 거라 싱싱하다’고 평가를 해주는 전문가 말이에요. 그런데 이 생선 전문가가 생선가게 주인한테 돈을 받는다고 생각해봐요. 과연 이 전문가의 말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신용평가기관이 바로 이 생선가게에서 돈을 받고 생선을 평가하는 생선 전문가와 비슷해요. 물론 이 말이 우리 정부가 무디스에서 돈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사왔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신용등급 평가의 대가를 평가 대상 국가나 기업이 낸다는 뜻에서 완벽한 수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게 국가신용평가 세계의 현주소라는 사실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어요. 권위 있는 기관의 신용등급 평가도 그대로 믿는 건 조심해야 해요.

마지막 궁금증 하나를 풀어보죠. 등급 상승이 우리 경제가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뜻일까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볼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 상황이 신용등급이 나쁜 나라보다 좋은 것에는 다른 의견을 달기가 어렵지만, 우리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아져서 등급이 올랐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무디스의 평가 잣대가 좀 달라졌기 때문이죠.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볼게요. 무디스는 신용등급 평가 항목 중 하나인 나랏빚 규모의 적정성 기준을 과거보다 느슨하게 했어요. 이런 이유로 종전 평가 때보다 우리나라의 나랏빚 수준은 더 나빠졌지만 이 부분에 배정된 배점은 높아지게 됐지요.

무디스가 잣대를 손질한 배경이 있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너나 할 것 없이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많이 끌어다 쓰면서 나랏빚이 크게 늘어났어요. 무디스가 예전 잣대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러 나라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끌어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죠. 이러다 보니 무디스는 평가 기준을 좀 느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나라는 일본 등 다른 나라보다 나랏빚이 적게 늘어난 덕택에 과거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우리나라의 나랏빚 수준은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적은 쪽에 속하기도 하고요.

출처: 한겨레 (201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