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분식집 외상 먹는 아이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ㅇ초등학교 앞 토스트가게. 토스트를 손에 쥔 저학년 남자아이가 돈을 내는 대신 가게에 비치된 장부에 몇 글자를 끼적이고는 신이 나서 문밖으로 나섰다. 이 가게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기가 먹은 간식 이름을 날짜별로 적은 ‘수첩 장부’가 있다. 회사 주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상 장부다.

‘장부에 달아놓고’ 어린이들에게 간식을 파는 분식점이 늘고 있다. 간식을 제때 해줄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모, 용돈을 노린 학교폭력을 걱정하는 엄마들의 요구 때문이다. 분식점 주인 조아무개(48)씨는 “나도 맞벌이로 애를 키웠다. 제때 간식을 못 챙겨주는 엄마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근처 떡볶이집과 주먹밥집에도 ‘초딩용 외상 장부’가 있다.

이 분식점에 장부를 놔두고 간식을 먹는 아이들은 30여명에 이른다.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다. 아이들은 주로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 학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외상 장부를 이용한다고 한다. 엄마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씩 들러 1만~3만원씩을 선불로 결제한다. 조씨는 “처음에는 후불제로 했는데 음식값을 내지 않고 이사를 가거나 너무 오래 결제를 않는 경우가 있어 선결제로 바꿨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ㅅ초등학교 앞 토스트가게에도 ‘선결제 환영’이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지난해 7월부터 외상 장부를 만들었는데, 초·중학생 15명이 이용한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많게는 10만원씩 선결제를 한다. 아이들은 직접 자기 이름을 적은 영수증을 증거 사진으로 찍어 엄마한테 카카오톡으로 보낸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는 김아무개(40)씨는 11살, 8살, 5살 세 딸을 위해 학교 앞 토스트가게에 외상 장부를 마련했다. 김씨는 “방학 때는 오후에 간식을 챙겨줘야 하는데 돈을 주면 잃어버리거나 나쁜 아이들한테 뺏길 수 있어 3만~5만원씩 선결제하고 간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9살 아들을 둔 다른 엄마는 “500원, 1000원이라도 현금을 갖고 다니는 것이 알려지면 학교폭력 대상이 될까봐 아예 돈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13일 “요즘 초등학생 중에는 학교폭력 걱정 때문에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 용돈 쓰는 훈련도 필요한 법인데, 모든 생활이 엄마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고 했다.

출처: 한겨레 (2015.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