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세모그룹 유병언 구원파 청해진해운

종교연구가 탁지원의 시각 유병언과 구원파

27년 전의 미제 사건이 다시 나왔다. 침몰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과 속칭 ‘구원파’로 불리는 기독교복음침례회에 관심과 섬찰 수사가 집중된다. 정부의 늑장 대응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잠시 뒤로 밀렸다. <한겨레>는 보통 ‘이단’으로 불리는 신흥종교 문제를 파헤 쳐온 탁지원(46) ‘현대종교’ 소장을 만났다. 유 전 회장을 위해 무보수 노동을 했던 전 신도도 만났다.

27년 동안 싸우고 있다.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은 1980년대 내내 기독교복음침례회를 파헤쳤다. 사람들은 이 교파를 흔히 ‘구원파’라 불렀다. 교인들은 스스로를 그리 부르지 않았다.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권신찬 목사가 1960년대에 만들고, 유병언이라는 당시 청년 목사가 세를 키웠다. 기업 활동과 종교 활동을 동일시한 독특한 교리를 전파했다. 곧 이단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부실 기업을 인수한 청년 목사 유병언은 1980년대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이 된다.

어떻게 교리에 ‘기업=교회’라 못박나

구원파는 늘 ‘오대양 사건’과 함께 기억된다. 1987년 8월29일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의 사주 박순자씨와 직원 등 32명이 공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숨진 박씨는 구원파에 속했다가 스스로 만든 종교 ‘오대양’의 교주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이른바 ‘오대양 사건’이다. 검찰은 1987년 및 1991년에 걸친 수사에서 ‘박씨 등이 사채빚 때문에 저지른 집단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당시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 전 세모 회장과 박씨 사이에 수억원대의 돈거래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커졌다. 숨진 오대양 직원 대부분이 속칭 ‘구원파’ 신도인 사실도 드러났다. 부검 결과 자살로 보기 어려운 정황도 나왔다. 집단자살이 아니라 대부분 타살됐으며, 그 배후에 유 전 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탁명환 소장도 그 의혹을 제기한 사람 가운데 한명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등 권력의 비호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이 유 전 회장을 조사했지만 살인 혐의는 밝히지 못했다. 권력과의 유착도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이 특혜를 준 것 외에 밝히지 못했다. 대신 유 전 회장은 교회가 운영하는 기업을 번창시키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교제를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교인들을 속여 사업자금을 가로챘다는 상습사기 혐의로 1992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 회장은 1991년 기소되기 전 탁 소장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도 취하했다. 유 회장이 경영하던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겪으며 1997년 부도 처리됐다.

탁지원(46) ‘현대종교’ 소장도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이단이라고 비판받던 ‘영생교’ 문제를 파헤치다 영생교 교인에게 1994년 살해당한 선친 탁명환 소장에 이어 자신이 구원파 문제를 다시 연구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현대종교’는 탁명환씨가 1970년 만든 신흥종교문제연구소가 전신이다. 이단 문제를 연구한다. 탁씨는 선친의 뒤를 이어 이 단체를 운영하며 월간지 <현대종교> 발행인도 겸한다. 지난 24일 찾아간 서울 중랑구 망우동 ‘현대종교’ 사무실 현관 유리문은 전자잠금장치로 닫혀 있었다.

<한겨레>가 “구원파의 교풍이 침몰사고를 낳은 기업 운영 방식과 어떤 맥락이 있을까. 가령 상명하복의 구원파 종교 기풍이 사업의 기풍으로 이어졌다고 보느냐”고 먼저 물었다. 탁 소장의 답은 ‘그렇다’였다. “과거 ‘영생교’ 사건 당시 피해자 증언을 들어보면 한달 월급이 2만여원에 불과했다. 노동 착취를 통해 교주 일가나 측근의 부를 이루는 게 쉽다. ‘아가동산’의 경우 레코드사를 운영했는데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이비 종교 중에 기업을 만들어 신자 노동 착취와 저임금으로 경제적 생산을 이루고 교주가 가로채는 단체가 적지 않다. 구원파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특별하게 교리 자체에 ‘기업이 교회’라는 걸 못박은 점이다. 구원파 신도들이 청해진 직원 중에 많다고 알려져 있고, 또 구원파 이탈자 증언을 들어보면 헌금을 사업자금에 사용했달지 월급이 밀렸달지 또는 아주 월급이 적었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신자가 직원일 때 얻어지는 이점이라는 건 너무 많다. 예전부터 우려한 상황이 터지니 망연자실하다.” 영생교는 조희성씨가 1980년대에 만든 기독교계 신흥 종교다. 신체의 영생을 주장했다. 신도 납치 살인이 드러나 조씨 등 교단 간부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가동산’은 1990년대 중반 논란이 된 기독교계 신흥 종교다.

1960년대 권신찬 목사가 만들고

청년목사 유병언이 키운 구원파

1987년엔 오대양 사건과 연루

그 의혹 제기한 탁명환 목사 아들

탁지원은 대 이어 구원파와 싸워

‘사업과 교회를 동일시,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

구원파의 핵심적인 두 교리

이번 사건에 어떤 영향 끼쳤나

검찰이 조사해봐야 할 대목이다

대전지법의 유 전 회장에 대한 사기죄 유죄 판결문을 보면, 유 전 회장은 권신찬 목사와 1962년께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한다. 교리가 독특했다. “기존 교단의 예배는 불필요한 형식이며 진정한 예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돌아보고 서로 가까이 교제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며 올바른 교제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의 계획을 위하여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교회’ 교리다.

판결문을 보면, 유 전 회장은 직장이 없는 신자들에게 일터를 줘야 한다며 1976년 경영이 어렵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신자들의 헌금, 출자, 무상노무 제공 등으로 회사를 경영했다. 이것이 현재 청해진해운의 전신인 세모그룹의 시작이었다. 유 전 회장은 세모유람선, 세모해운 등 사업을 확장했다. 오대양 사건으로 유 전 회장이 복역하고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모는 1997년 8월 부도 처리됐다. 그러다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유 전 회장 일가는 ‘재기’에 성공한다. 부도난 지 몇년 지나지 않아 ‘청해진해운’과 ‘천해지’가 설립된다. 2007년 유 전 회장의 두 아들 대균, 혁기씨가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두 회사의 대주주가 된다. 아버지가 부도낸 기업을 얼마 뒤 두 아들이 되사들인 셈이다.

교인 1만여명 규모, 3개 분파로 갈라져

탁 소장은 ‘구원파’의 교리가 청해진해운 직원들의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해석했다. <현대종교>의 설명을 종합하면, 기독교복음침례회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따라서 ‘한번 구원받으면 이후 육신으로 어떻게 생활하든 상관없다’는 교리를 갖고 있다. “세월호 선원들이 자기만 살려고 한 것의 이유가 자신의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구원파 교파의 행동 때문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검찰 조사가 밝혀야 할 대목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최근 청해진해운 직원 90%가 본 교단의 교인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확인 결과 10% 남짓”이라고 주장했다. 청해진해운과 교단의 관계가 멀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변우섭 전 총회장은 전 세모그룹 이사로 유 전 회장 수사 당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측근 교인이다. 청해진해운 직원과 세월호 승조원들이 구원파 신도인지 여부, 교리가 선원들의 비상식적 행동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도 수사에서 밝혀야 한다. <한겨레>가 탁씨의 주장에 대해 ‘청해진 해운’의 입장을 듣고자했으나 홈페이지가 폐쇄돼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

한국종교사회연구소가 1993년 펴낸 <한국종교연감>을 보면,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인은 206개 교회 10만명이다. ‘현대종교’의 자체 취재를 종합하면, 2008년 9000명에서 1만명 규모로 추산된다. 현재 구원파에는 모두 3개의 분파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업과 교회를 일치시키는 유 전 회장에 반대하는 일부가 떨어져 나가 따로 교회를 만들었다. 유 전 회장에게 영향을 준 미국 선교사 딕 요크의 가르침을 받은 박아무개 목사가 유 전 회장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든 또다른 구원파도 존재한다. 유 전 회장 계열이 아닌 나머지 두개의 구원파 분파는 기업 활동에 집중하지 않는다.

다만 탁 소장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유 전 회장에게 몰아가는 분위기에 선을 그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은 본질적 부분이다.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지금 종교의 문제로만 부각되니 본질의 문제를 놓치는 느낌이 있다. 정부의 늑장대응, 정부와 업체 관련자들, 구원파 종교의 문제 등이 다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지금 뉴스를 보니 종교 문제로만 부각되는 느낌이 있는데, 책임질 사람들이 피해 가는 창구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탁 소장은 구원파와 같이 ‘이단’으로 비판받는 종교가 어떻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지 검찰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건은 특정 종교집단이 그냥 개인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여객업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더 커진 측면이 있다. 이처럼 특정 종교가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에서 다른 예상되는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이비 종교는 겉으로는 잘 포장되어 있다.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것에 대해 차단을 잘한다. 피해자가 생기면 불만이 나오지 않게 압박하기도 한다. 또 공적 활동을 통해 정부나 정당과 관련을 만드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사이비 종교 내부까지 확인해야 한다.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고발하는 게 국세청을 통해 세금 포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세모의 경우는 왜 이렇게 정부의 특혜를 많이 받았는지 놀라울 정도다.”

탁명환과 청해진해운 데모크라시호

탁 소장은 이와 관련해 아이러니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현재 인천과 백령도를 운항하는 배편은 청해진해운 소속 ‘데모크라시호’와 또다른 운수업체 소속 ‘백령 아일랜드호’ 두 편이다. 1995년 백령 아일랜드호가 취항하기 전까지 데모크라시호밖에 없었다. “아버님(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1980년대 중반 백령도에서 구원파 관련 집회에 가야 하는데 데모크라시호를 타고 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저희는 이단들이 만드는 제품을 이용하지 않는다. ㅁ탄산음료도 안 마신다. 그게 헌금 및 후원이 되니까. 그런데 인천에 가보니 데모크라시호 말고 탈 게 없었던 거다.” 실제로 1991년 검찰의 ‘오대양 수사’ 당시에도 전경환씨가 유 전 회장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전경환씨 등 고위층의 특혜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

탁명환 소장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친구 어머니가 이단으로 비판받는 종교에 빠져 자살한 사건이 그를 종교문제연구가로 만들었다. 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큰형 탁지일(50) 부산장신대 교수는 ‘현대종교’ 고문이다. 막내 탁지웅(41) 성공회대 신부는 월간 <현대종교>에 자주 기고한다.

“오대양 사건이나 구원파 문제가 유 전 회장 사망 전에 도마 위에 다시 오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연관된 문제로 주목받는 걸 보면 놀랍다. 하나님의 섭리다. 정부의 비호나 관련 부처 특혜가 있었다면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야 하고, 사이비 종교 문제가 다시 없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아버지가 파헤치고 이제 아들이 연구한다. ‘현대종교’ 얘기다.

한겨레신문(2014.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