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승계 방식의 변화

효성그룹과 동아쏘시오그룹이 총수 생전에 경영권 승계를 잇달아 단행하면서, 총수 사후에 승계가 이뤄져온 한국 재벌의 ‘승계 공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효성그룹은 지난해 12월29일 조석래 회장이 물러나고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동아쏘시오그룹도 2일 강신호 회장이 물러나고 4남인 강정석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두 그룹 모두 창업 2세에서 3세 체제로의 전환이다.

효성과 동아쏘시오의 경영 승계는 재벌 총수가 수명을 다해야 승계가 이뤄져온 기존 승계 공식과는 다른 ‘파격’이라는 점에서 한국 재벌체제에서 큰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주요 재벌 중에서 총수가 살아있을 때 경영권을 물려주는 전통이 확고히 자리잡은 곳은 재계 4위 그룹인 엘지(LG)가 거의 유일하다.

재계에서는 이런 변화를 지난해 롯데그룹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의 교훈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재계 20위권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90살을 넘겨 정상적 경영활동이 어려운데도 계속 승계를 늦추다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자초하고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지 않느냐”고 말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공백 이후 경영권 승계 리스크와 휴대폰사업의 고전 등 비즈니스 리스크가 겹치며 위기를 맞는 것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조석래 회장과 강신호 회장은 슬하에 각각 아들 세 명과 네 명을 두고 있는데, 아들과 심한 갈등을 겪은 공통점을 안고 있다. 조 회장은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효성중공업 부사장과 경영철학과 경영방식의 차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갈라선 뒤 2013년부터 사실상 의절한 상태다. 강 회장도 후계자를 둘째 아들인 강문석 부회장에서 넷째 아들 강정석 부회장으로 교체하면서 2004년 이후 차남과 여러 차례 갈등을 겪었다.

조석래 회장은 82살로 고령인 데다 건강 악화와 형사재판의 부담도 작용했다. 조 회장은 2010년 발견된 암의 치료가 6년 이상 장기화하고 있다. 또 지난해 1심 재판에서 탈세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과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았다. 효성 관계자는 “조 회장이 치료와 재판 때문에 정상적인 출근을 거의 못 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경영 승계 문제가 제기됐다”고 귀띔했다. 강신호 회장은 90살이다. 재벌 총수 중에서는 롯데 신격호(95) 총괄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고령이다. 그룹 안에서는 지난해말 사장단 인사 때 세대교체가 단행될 때부터 경영 승계가 예견됐다.

재계의 관심은 다음번 경영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그룹이 어느 곳인지에 쏠리고 있다. 재계 2위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1938년생으로 내년에 팔순이다. 지난달 최순실씨 국정 농단 관련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47살로 2005년 기아차 사장을 거쳐 2009년부터 현대차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 현대차그룹 전직 임원은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를 세계 자동차업계 5위로 끌어올린 주역이지만 최근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예전 같지 않다. 현대차가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과감히 시도하기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처럼 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재벌은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가 단순한 총수 집안 문제가 아니다”라며 “왕의 사후에야 세자가 즉위하는 봉건왕조식 승계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후계자가 최고경영자에 오르기 전에 경영 비전과 리더십을 제대로 평가받는 경영 능력 검증 과정까지 포함한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3세의 성공은 물론 회사 발전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 (20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