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에 사로잡힌 종교

현재 한국 그리스도교인이나 불교인들 중에 천당이나 극락, 지옥이 없다고 하면 몇 명이나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천당, 극락, 지옥 등이 문자 그대로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그런 것에 의존되어 있다면 그 신앙이라는 것이 덜 성숙한 것이 아니야 하는 이야기이다.

한국 조계종의 창시자 지눌(知訥) 사상에 크게 영향을 준 당나라 승려 종밀(宗密, 780~841)은 그의 저술 <원인론>(原人論)에서 종교의 교의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인천교’(人天敎)를 제일 하급으로 취급했다. 인천교란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느냐 천상에 태어나느냐를 궁극 관심으로 삼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인과응보적 태도는 ‘내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제5단계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의 가르침과 너무 먼 문자주의적 신앙이라는 것이다.

이를 그리스도교적 용어로 고치면 죽어서 천당 가느냐 지옥에 떨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있다면 그런 신앙은 아직도 ‘하질’이라는 뜻이다.

종교 기본은 자기중심주의의 극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진정한 신앙의 방향과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천국에 가겠다고 애쓰는 사람이 그가 그처럼 바라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출처: 한겨레 (2017.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