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토끼굴 속에 빠지다

여느 유럽 나라들처럼 영국에서 12월은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도시의 주요 거리에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등장하고 상점마다 캐럴이 흘러나온다. 동네마다 있는 펍들도 저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치장하고,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다. 서양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의 아늑하면서도 즐거운 분위기에 젖어드는 시기다.

하지만 올해 영국의 12월은 사뭇 다르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지만, 영국 사람들의 마음은 그 분위기만 즐기고 있을 여유가 없다. 티브이에서는 연일 ‘브레이킹 뉴스’(breaking news·긴급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어제 상황과 오늘이 다르다. 내일도 예측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회오리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40대 주부 레이치 로스는 “완전히 엉망진창(mess)이다. 우리는 브렉시트라는 토끼굴(rabbit-hole)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토끼굴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토끼굴에 떨어진 뒤 온갖 이상한 일들을 겪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50대 영어강사인 새뮤얼 무어(가명)도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동조하는 그는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는 과장돼 있다”며 “영국 정치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브뤼셀(유럽연합의 수도)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브렉시트를 하기로 한 시한이 내년 3월29일이다. 불과 석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영국은 어떤 절차와 과정, 과도기를 거쳐 유럽연합(EU)에서 빠져나올지 그 방법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201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