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의 승계 문제 (롯데)

재계 5위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승계를 둘러싼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골육상쟁’이 또다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올해 초 일본롯데의 경영에서 물러난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7일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경영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했으나,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하루 만에 신 총괄회장을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일선에서 퇴진시킴으로써, 분쟁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신동빈 회장은 29일 그룹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불안감과 혼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롯데가 오랫동안 지켜온 기업가치가 단순히 개인의 가족 문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롯데 안팎에서는 롯데홀딩스 대주주인 광윤사에 대한 두 형제의 보유 지분이 비슷해, 역시 광윤사의 주요 주주이자 창업자로서 상징성도 있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분쟁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 재벌이 창업자에서 2·3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총수 가족 간에 경영권 승계나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재벌의 후진적 승계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총수가 있는 10대 그룹의 경우 삼성 이건희-이맹희 회장 형제간 상속재산 소송(2012년), 현대 정몽구-정몽헌 회장 형제간 ‘왕자의 난’(2000년), 한진 조양호 회장 형제간 상속 갈등, 한화 김승연 회장 형제간 갈등(1990년대 초), 두산 박용오 회장과 나머지 형제간 분쟁(2005년) 등이 잇달았다. 롯데를 포함하면 10대 그룹 중 6곳에서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10위권 밖에서도 금호그룹 형제의 난(2009년), 씨제이 이재현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조카-삼촌 간 분쟁(1990년대 초),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케이씨씨 등 범현대그룹 간 경영권 분쟁(2003년), 태광 이호진 회장 오누이 간 상속 분쟁(2012년) 등이 잇달았다.

재벌 승계 분쟁은 총수 일가가 세습경영을 고수하면서도, 정작 2·3세에 대한 철저한 경영수업과 경영역량 검증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하는 ‘합리적 승계 프로그램’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라는 데 분석이 모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기식 의원은 “재벌 창업세대는 과감한 투자와 뛰어난 리더십으로 기업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나 2·3세 이후에는 부모를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에 큰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한겨레 (2015.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