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세월호 7시간 산케이신문

대통령은 시민이다. 대통령 개인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대통령도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여행을 하고 섹스를 하고 남들처럼 다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가슴 아린 로맨스를 한 토막쯤 흘린들 손가락질할 까닭도 없다. 성자가 아닌 대통령한테 도덕적 기준을 따로 두고 닦달할 일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개인의 삶을 구속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시민 모두의 삶을 평등하게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직업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이 만들어 준 5년짜리 임시직 공무원인 대통령은 화려한 법적 보호에다 엄청난 월급을 받는 만큼 온갖 옥죄임에다 눈치를 봐야 하는 팔자다. 한국 사회가 걸핏하면 본보기로 입에 올리는 미국과 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09년 대통령 당선자 바락 오바마는 백악관에 들어서면서 국가안보국(NSA)한테 개인 전화와 이메일을 빼앗겼고 그동안 즐겨 써왔던 블랙베리는 특수부호를 심은 다음에도 사적 통신을 20여명쯤으로 제한당했다. 대통령을 ‘감방 속의 권력’이라고 했던 건 괜한 말이 아니다.

“움직임 하나 말 한마디도 감시당하고 기록당하는 자리를 벗어나니 속은 후련하다.” 인도네시아 첫 민주대통령이었던 압둘라만 와히드가 2001년 정적들한테 탄핵당하고 한 여섯 달쯤 뒤 내게 했던 말이다. 타이 전 총리 추안 릭파이도 “경호와 의전 같은 게 도를 넘을 때가 많고 지켜야 할 일도 너무 많다”고 귀띔해준 적 있다. 모두 사적 영역을 제한당하는 고달픔을 털어놓은 말들이다.

이건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제 맘대로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대통령도 출퇴근 시간이 있고 직장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라에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자리를 지켜야 하듯이 대통령도 벗어날 수 없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이 출근을 제때 하는지 또 근무시간에 일은 제대로 하는지 따위를 마땅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시민이 대통령 월급을 주며 나라를 잘 꾸려달라는 게 민주주의다.

마찬가지로 시민이 돈을 내고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지 따지고 알려달라고 맡긴 게 언론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회라면 대통령과 언론은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게 건강한 사회다. 세상 돌아가는 이 기본적 이치마저 이해 못한다면 대통령을 해선 안 된다. 지난 8월 초 시민단체(자유수호청년연합)가 대통령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을 기사로 다룬 <산케이신문>을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출처: 한겨레신문(201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