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규정하고 과감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제창한 뒤 힘을 받은 전경련 등 재계 단체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난타하고 있다. 중소기업 단체들이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맞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책위원회를 지난 22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앞으로 이 제도의 존속과 품목 재지정의 필요성을 국회와 정부 등 각계에 적극 알릴 예정이다. 대책위에는 산하 협동조합과 중소기업 대표, 학계와 전문가 등이 대거 포함된다. 중앙회는 앞서 16일 ‘지방중소기업 활력회복을 위한 핵심전략과 추진과제’라는 제목의 정책자료집을 발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확대, 동반성장형 지역경제 영향평가제 도입 등을 정부와 각 지자체에 요구한 바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동반성장위원회 출범과 함께 2011년 어렵게 도입돼 막 뿌리를 내렸다. 이 제도는 당시 이슈였던 산업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 바람의 산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 전경련을 앞세운 대기업 집단이 이를 부작용이 큰 제도로 공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경련 고위 간부가 직접 토론회에 참석하거나, 실명 기고문 등을 통해 사실상 ‘폐지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지난 11일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이 제도는 3년 시한으로 도입된 ‘일몰규제’로서 원칙적으로 시한이 도래하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규제 완화 주문 뒤

전경련 앞세운 대기업 집단

“부작용 큰 제도” 일제히 공격

9월 적합업종 재지정 앞두고

정부 일각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보이지 않는 손’, 동반성장위 압박

중기중앙회 대책위 출범등 위기감

제도 존속 필요성 적극 홍보나서

정부 안에서도 박 대통령의 규제 완화 주문 뒤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와 관련해 “지금까지 약 3년 동안 운영했으니 중소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분석해 다시 선정할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기존의 기준 등과 관계없이 제로베이스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로베이스’라는 말은 사실상의 폐지까지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된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올 들어 도소매 업종을 적합업종에 추가해야 한다는 업계 요청과 관련해, 최근 정부 고위층에서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더는 이에 간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전했다. 올 9월 적합업종 재지정을 앞두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민간자율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쪽은 이 제도의 존속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를 보면, 적합업종 재지정을 앞두고 있는 82개 품목 46개 제조업체 가운데 95.5%가 올 하반기에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할 예정이거나 신청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중앙회는 지난 3년간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사업체 현장에서 매출 증대와 판로 확대, 기술개발 사례 등이 잇따르고 있다며, 혁신사례집도 따로 추려 언론에 공개했다. 동반성장위원회도 적합업종 제도는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유지하며 함께 멀리 가기 위한 민간 합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적합업종지원단장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여러 경제주체와 가치가 혼재하는 산업활동을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으로 이해득실을 따질 수는 없다”며 최근 전경련 쪽의 행보에 불만을 드러냈다. 정 단장은 이어 “많은 중소기업이 도태되고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한다면 소비자의 권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적합업종 제도는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유지하며 함께 멀리 가기 위한 민간 합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란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고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2011년 9월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로 처음 도입됐다. 첫해 1차로 지정된 16개 품목을 포함해 2~6차에 걸쳐 지금까지 두부와 세탁비누, 고추장 등 모두 100개 품목이 지정돼 있다. 올 하반기 3년 지정 기간 만료를 앞둔 82개 품목은 3년 추가 연장을 위해 올해 안에 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출처: 한겨레신문(201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