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Peru Chiriloma ini Geisha
제가 알던 게이샤라는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고요.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저에게 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제가 알던 게이샤라는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고요.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저에게 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PERU COFFEE PROJECT #06
Peru Chiriloma ini Geisha
정동욱 : 교수님. 드디어 뉴크롭이 도착했네요.
송호석 : 네. 가장 먼저 소개할 커피는 ‘치리로마 농장의 ini geisha’입니다.
정동욱 : 드디어 페루 게이샤네요. 게이샤는 할 이야기가 참 많죠.
송호석 : 네. 현재 커피씬에서 가장 각광받는 품종은 단연 ‘게이샤’입니다. ‘게이샤’라는 이름 때문에 일본과의 관련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실 수 있지만, 사실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름의 기원을 찾아보면 에티오피아가 등장합니다. 서남쪽 고원지대에 ‘게샤(Geisha)’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게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정동욱 : 저도 처음엔 일본의 그 게이샤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마을에서 발견된 품종이 왜 파나마에서 더 유명한 걸까요?
송호석 : 애초에 이 품종은 ‘녹병에 저항성이 있다’는 장점 때문에 케냐의 품종 연구소로 보내졌고, 다시 중미의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로 전해졌습니다. 품종이 소개된 시점만 하더라도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인 2004년. 라는 파나마에서 생산된 커피 중 최고의 커피를 가리는 대회에서 가 1위를 차지합니다. 그 커피를 평가한 심사위원은 “커피 잔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라고 극찬하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커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정동욱 : 결국은 파나마 게이샤, 그중에서도 에스메랄다 게이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이샤의 전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송호석 : 네. 그래서 중남미의 국가들은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몇몇 농장은 이 프로젝트에 성공해서 게이샤 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종자 확보에 실패한 농장들은 코스타리카의 종자 연구소와 아프리카에서 게이샤를 공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진짜 게이샤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사실 가짜 게이샤는 없습니다. 에티오피아 ‘게샤’ 마을에서 기원했다면 모두 게샤/게이샤 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파나마 게이샤의 뉘앙스를 지니려면, 애초에 코스타리카로 전파될 당시 명명된 코드명인 ‘T2722’라는 모델명을 가진 길쭉한 외관을 가진 것이 ‘진짜’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쭉하지 않은 외관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해서 게이샤가 아니라 말하기 어려우니 결국 우리 앞에 놓은 콩의 모양, 형태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조금 검증이 필요합니다.
정동욱 : 다시 게이샤의 고향 에티오피아로 돌아가 보시죠. 게이샤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그 마을에서 재배되는 게이샤는 어떤가요? 실은 게이샤 빌리지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해서요.
송호석 : 게샤 빌리지는 에티오피아 게샤 마을을 모티브로 한 회사입니다. 실제 ‘게샤’의 배경이 되는 벤치마지(Benchi Maji) 지역을 배경으로 3종의 게샤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Gesha 1931은 파나마 게이샤와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품종으로 ‘진짜 게이샤’라 불리고 있으며, 그 밖의 ‘고리 게샤’나 ‘일루바보르 게샤’는 파나마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지요. 게샤 빌리지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마켓팅 포인트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지요. 해마다 에티오피아 커피가 받는 주목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정동욱 : 고리 게샤의 경우 사실 기대하는 게이샤의 특성을 찾기 어려워서 다루기가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린 팁, 브론즈 팁의 새순의 형태라든지 생두의 생김새라든지 같은 게이샤라 하기엔 참 다양한 커피들을 보게 됩니다. 같은 품종 내에서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가 봅니다.
송호석 : 아무래도 야생의 환경에서 시작된 품종이고, 자연상태에서 그 순수성을 오랜 시간 유지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야생 숲에서 시작된 ‘게샤’의 정체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게샤숲에서 발견되었더라도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질 수 있기에 새순이 녹색과 브론즈색인 걸 보면, 이들 사이에도 향미적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흔히 브론즈팁은 티피카 계통의 특징으로 그린팁은 버번 계통의 특징으로 여겨져 왔지만, 게이샤에도 적용된 이 두 가지 갈림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걸어야만 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정동욱 :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게샤(gesha)’와 ‘게이샤(geisha)’ 이거 말입니다. 왜 명칭이 이렇게 두가지로 분화하게 된 걸까요?
송호석 : 게샤와 게이샤의 구분이 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게샤’라는 단어의 발음보다 ‘게이샤’라 부르는 음차가 보다 수월해서 ‘i’가 자연스레 중간에 추가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에티오피아에서 탄자니아로 다시 케냐로 그 후 태평양 건너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암하라어가 영어로 불리는 과정에서 ‘i’가 추가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2004년 베스트오브 파나마에서 에스메랄다 게이샤가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게이샤라는 이름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가 설립되면서 게이샤의 발상지가 ‘게샤’였다는 점이 부각되었고, 이에 본래 발상지의 이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혼란을 가져왔다는 게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또 ‘게이샤’라는 이름이 가진 이미지가 일본의 기생을 연상시키기에 본래 지명인 ‘게샤’로 회귀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여전히 무엇이 사실인지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게샤와 게이샤 무엇이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으나 구분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입니다.
정동욱 : 교수님. 이제 페루 게이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송호석 : 페루에 게이샤가 전파된 것은 6-7년 전의 일입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생산지역인 ‘찬차마요’에 게이샤가 처음 심어졌고, 차츰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페루의 게이샤는 대체로 파나마 계통의 게이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길쭉한 외형의 다소 단단한 특성을 지닌 품종이지요.
정동욱 : 아. 찬차마요! 들어본 적은 있네요. 그렇지만 우리가 다루게 될 커피는 다른 치리로마 농장이네요.
송호석 : 네. 우리가 오늘 만나게 될 치리로마 농장의 게이샤는 올해로 수령이 5년생인 나무에서 생산되었습니다. 농장주 에드윈은 5년 전 1,950m의 분지 지형의 위치에 게이샤를 심었습니다. 이 농장에서 조용히 커피의 수확을 기다리며 3-4년을 기다렸고, 첫 번째 수확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제가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치리로마 농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이었죠. 브론즈팁과 그린팁이 어우러져서 자라고 있는 게이샤 숲이 펼쳐졌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높은 고도, 아침마다 안개가 끼어 일조량이 조정되는 기후, 비옥한 토양은 커피가 자라기 완벽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동욱 : 수령이 5년. 보통 수령이 몇 년이 되면 커피가 생산이 되나요? 그리고 몇 년까지 생산을 하는지요?
송호석 : 보통 3년생부터 결실이 시작되지만, 향미가 매우 약하거나 풋풋합니다. 4년 생부터가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4-7년생이 커피나무의 전성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 가장 왕성하게 체리를 맺고, 향미도 뛰어납니다. 8-9년 차가 되면 다소 우디한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늘어내며 생산량이 감소합니다. 10년생이 되면, 향미가 두드러지게 매력적인 부분이 사라져서, 대다수 농장에서는 나무를 잘라버리고 새오운 나무를 심습니다. 이니 게이샤는 전성기에 생산된 체리로 만들어진 커피로 보시면 됩니다.
정동욱 : 네. 이번 이니 게이샤는 가공법이 특이하다고 들었습니다.
송호석 : 이 치리로마 농장에서 생산된 이니 게이샤의 가공은 ‘아나로빅 워시드’입니다. 그런데 무산소 발효를 한 용기가 특별한데, 크래프트 맥주 발효조에 담아서 산소를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로 17-18도의 온도로 50시간 발효를 진행했습니다. 작년 농장을 방문했을 때 제가 이야기를 했던 맥주의 발효를 적용한 커피라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25도에 이르는 조건을 갖춘 환경이지만 온도를 낮추기 위해 햇볕을 차단하고 차가운 물을 활용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발효 시간이 일반 커피보다 조금 더 길게 발효가 진행되었습니다. 원하는 시점에 발효를 종료한 다음 안데스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차가운 물로 깨끗하게 씻어낸 다음 24일 동안 그늘 건조를 하여 생두가 완성되었습니다.
정동욱 : 페루 4번 5번, 팀부야쿠 농장이 떠오르네요.
송호석 : 지난 4, 5번 커피가 무산소 발효 커피로 보가 투명하고 깔끔하게 커피가 지닌 특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줬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커피 또한 그러합니다. 투명하게 게이샤의 뉘앙스가 선명하게 관찰됩니다. 이 커피를 통해 무산소 발효가 커피의 투명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는 게 다시 검증이 된 셈입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주신 만큼 특별하고, 또 특별한 커피를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커피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ini Geisha를 소개합니다. 생산된 양 자체가 워낙 적어 nano-lot으로 구분했고, 저와의 관계로 오직 한국에서만 이 커피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ru Chiriloma ini Geisha
Region : Qulleouno, Chirumbia, Cusco
Altitude : 1,950m
Process : Anaerobic washed(craft beer fermentation tank)
Variety : Geisha
베르가못, 사과, 라일락, 피치
송호석 : 게이샤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치는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신의 얼굴을 보았다던 그 사람의 말처럼요. 이니 게이샤를 몇 마디로 정의해 보자면 ‘우아함’과 ‘특별함’이 아닐까 합니다. 완연히 입 안에 퍼져나가는 플로럴과 빨간 사과의 뉘앙스 그리고 베르가못의 피니시는 치리로마 농장의 곳곳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무산소 발효의 목적인 향미의 투명함이 이니 게이샤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한 잔의 커피로 만춘을 즐겨주시기를.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동욱 : 그럼에도 게이샤는 언제나 설렙니다. 아름답고요. 이번 치리로마 이니 게이샤는 그중 특별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발산하니까요. 따뜻한 봄날에 어디선가 불어온 짙은 꽃향기가 떠오릅니다. 그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기 말입니다. 글쎄요. 제가 알던 게이샤라는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고요.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저에게 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