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Finca Chiriloma Maragogype
치리로마의 떼루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2배 더 많이 담고 있는 품종이 마라고지페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향미를 지닌 품종으로 알려진 ‘파카마라’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가 되는 게 이 마라고지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치리로마의 떼루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2배 더 많이 담고 있는 품종이 마라고지페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향미를 지닌 품종으로 알려진 ‘파카마라’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가 되는 게 이 마라고지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PERU COFFEE PROJECT #09
Finca Chiriloma Maragogype
네. 다시 이어갑니다. 아홉 번째고요, 마라고지페 품종입니다. 지난달 송교수님이 페루에 다녀오셨죠. 거기서 여기 치리로마 농장을 방문하셨고, 농장주인 에드윈 옆에서 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요. 이때 농장주에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습니다. 커피 일을 15년째 하고 있지만, 농장주와 대화를 하며 커피를 준비해 보긴 또 처음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번 커피는 다시 품종입니다. 마라고지페라는 자주 접하지 않는 품종을 다루며 새로운 경험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음.티피카의 자연변이. 파카스와 함께 파카마라의 원종. 크기가 아주 큰 커피. 자주 다루지 않아 로스팅 할 때마다 고생을 조금 하는 커피. 생산량이 극히 적어 상업적인 재배가 어려운 커피. 커피나무의 키가 큰 편. 이 정도? 마라고지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말입니다. 커피를 준비하며 교수님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1. 마라고지페
정동욱 : 교수님. 9번 마라고지페를 시작해 보려고요. 그간 페루에서 보내주신 영상과 이야기들 재밌게 보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다루게 될 마라고지페가 재배된 치리로마 농장에서 에드윈과 나눈 실시간 생중계 대화는 아주 짜릿했습니다. 농장의 모습을 보고, 농장주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욱 이 커피를 로스팅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마라고지페. 티피카의 자연변이. 생두의 크기가 아주 크다. 인상 깊을 정도로 맛있게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니카라과에서 주로 보았던 것 같다. 이 정도 외엔 정보도 경험도 별로 없는 커피입니다. 생두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소름 끼치게 크진 않네요. 수분은 낮지 않고, 밀도는 낮게 측정이 됩니다. 페루의 마라고지페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송호석 : 페루의 마라고지페는 다른 나라의 마라고지페와는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향미적으로 특별할 것이 거의 없는, 크기만 큰 일반적인 마라고지페와는 달리, 페루의 마라고지페는 파카마라의 특별함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특별했습니다. 떼루아에서 기인된 풍성한 단맛과 함께 매우 이국적인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게 정말 마라고지페가 맞을까 싶을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다만 수분율이 높지 않고, 밀도가 낮은 데다가 크기가 큰 덕분에 로스팅에서 열을 쉬이 먹어버려 과도한 향미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이 큰 숙제라 할 수 있습니다.
2. 이국적 색채
정동욱 : 2020년에 다뤘던 콜롬비아 치리모요 농장의 마라고지페의 프로파일을 살펴보니 역시나 우여곡절 끝에 더 라이트 하게 로스팅 하는 방향으로 답을 찾았더라고요. 다만 지금 보니 아쉬운 대목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더 잘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1차 샘플로스팅 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이터가 컵에서도 그대로 보이는 결과였지만, 복합적이고 선명한 시트릭에 어찌나 설레던지요. 17% 정도의 dtr을 10퍼 초중반으로 당기는 것이 2차 샘플로스팅의 목표이고 그것을 위해 프로파일 수정은 이미 해 두었습니다. 음 배치사이즈나 배기 등등의 다른 세팅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차는 약간(?) 과발현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탑은 선명하고 긍정적인데, 미들 애프터로 갈수록 명료하기보다 거칠어지더라고요. 교수님은 어떤 컵으로 나와주길 기대하시나요?
송호석 : 저는 개인적으로 마라고지페가 가진 포텐셜을 ‘이국적 색채’로 보고 있습니다. 풍부한 단맛 위에 쌓여진 열대과일 같은 뉘앙스 랄까요? 그리고 블랙베리 같은 느낌과 포도 같은 뉘앙스가 이어지는 게 페루 마라고지페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조금 투박할 수 있는 중반부의 뉘앙스가 우디로 흐르지 않도록 밝아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래종 특유의 투박함을 완연하게 풀어내는 게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동욱 : 뭔가 큰 숙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국적 색채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결국 이국적이라는 것은 생경함이나 익숙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국적이라는 열대과일톤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겐 익숙함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마라고지페라는 자주 접하지 못하는 품종은 이미 우리에게 생경한 대상이고 그러므로 그 컵이 그러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존재론적 당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컨배치 진행하겠습니다.
3. 농부, 그린빈 바이어, 로스터 그리고 여러분
정동욱 : 세컨배치는 산미가 자극적인 강도로 나와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분쇄 컬러 88에 홀빈과의 편차가 17 정도 나왔는데, 코어가 상대적으로 덜 익은 상태라 판단해서 속까지 익혀주되 전체적으로 밝게 가는 방향으로 시도를 했고 그렇게 3차는 홀빈 73에 분쇄 83.1 정도로 컬러 편차를 10으로 줄였고 홀빈컬러는 약간 더 밝아졌습니다. 1차에서 산미톤은 좋지만 상대적으로 무거운 향미들이 불편했고, 2차에서는 무거운 향미는 줄었지만 산미가 격하게 발현이 된 반면, 3차는 클린 하게 캐릭터들이 발현되어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레몬제스트, 포도, 피치, 시럽의 톤들이 매우 독특하게 발현되어 맛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생두의 크기가 크다는 사실이 주는 로스팅의 변화가 까다롭지만 내심 즐겁기도 합니다. 네. 마라고지페 할 말이 많은 커피죠. 교수님. 이 커피를 출시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커피가 재배된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교수님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주시죠.
송호석 : 에드윈은 치리로마 농장의 시작부터 이 자리를 지킨 품종이 마라고지페라고 소개합니다. “마라고지페는 생산량이 극히 적어 재배에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농부들은 일부러 재배하는 사례가 극히 드문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품종이 지닌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마라고지페를 생산하기 위해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분들이 나의 마라고지페를 사랑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품종에 비해 체리 크기가 2배 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생두도 그러합니다. 치리로마의 떼루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2배 더 많이 담고 있는 품종이 마라고지페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향미를 지닌 품종으로 알려진 ‘파카마라’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가 되는 게 이 마라고지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아름다운 치리로마의 풍경이 여러분의 잔 안에서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적은 생산량은 농부의 몫, 이를 발굴 하는 건 그린빈 바이어의 몫, 생두의 포텐셜을 풀어내는 건 로스터의 몫. 여러분들은 이를 즐겁게 즐기며 행복할 몫이 있습니다. 이번 커피로 여러분들의 하루가 조금은 더 행복해 지시기를-
Finca Chiriloma Maragogype
Region : Chirumbia, Quilleuno
Altitude : 1,680m
Variety : Maragogype
Process : washed(dry fermentation)
포도, 레몬제스트, 유칼립투스, 시럽
새로운 커피를 만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된다. 생경함이 주는 긴장과 설렘이 교차할 때마다 나는 그렇게 가슴이 저리다. 지도를 보고 걷다가 또 아름다운 장면을 만나면 그저 길을 따라 걷다가, 처음 맡아보는 냄새와 이국적인 선율의 노래가 들릴 때면 그 자리에 멈춰 서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다시금 달려 나가는 것이다. 아니 나는 이 장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각자의 풍경은 각자의 길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 오늘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