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Chiriloma Geisha Marc Selection
치리로마 게이샤 마크 셀렉션 (한영석 쌀 누룩 발효)
지역 : Qulleouno, Chirumbia, Cusco
고도 : 1,950m
품종 : Geisha
가공 : Anaerobic Washed (쌀 누룩 발효)
아카시아, 청포도, 리치, 복숭아, 화이트 와인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죠.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세상이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생물 말입니다. 이 커피는 우리나라 한영석 청명주의 쌀 누룩으로 발효한 커피입니다. 혹 이 커피에서 맑은 청주의 느낌을 느끼셨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한국의 누룩이 페루의 커피와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일입니다만, 커피의 향미 또한 특별합니다. 그 특별함이 2023 COE의 3위 입상으로 이끈 것일까요? 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커피의 또 다른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안녕히.
EK43 12.2
97도- (디개싱에 따라 온도를 낮춰주세요)
17(coffee) - 272(water) X16
TDS 1.38%
Yield 19.2%
Color 98.6
2024년 4월 26일
Peru Chiriloma Geisha Marc Selection
치리로마 게이샤 마크 셀렉션
술은 (거의) 먹지 않는다. 반의 반병이 안 될 것 같다. 1년간 총 주량 말이다. 그러니 가끔이라도 술이란걸 입속으로 넣어 보는 날엔 정말 맛있는 술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어차피 아주 조금일 테니. 그렇게 마신 술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스틸룸 사장님이 주셨던 꼬냑 그리고 사워비어를 처음 맛보았을 때 그리고 교동법주 정도가 있다. 그리고 프렙 사장님이 주셨던 청명주. 이걸 맛보고는 게이샤인가? 했다. 아니 정말 게이샤가 연상되는 향미였다. 술에서 커피를 연상하다니.
지난 페루 COE 커핑에서 단연 특별한 커피는 3위 치리로마 게이샤였다. 다른 모든 커피들과 달랐으니까. 이건 뭐지? 싶었던 것. 한국의 누룩으로 발효를 진행한 커피이고 그 주체가 우리가 잘 아는 송호석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먹었음에도 말이다. 아니 근데 한국 누룩인 줄은 알았는데, 게이샤를 연상했던 그 청명주의 누룩인 줄은 또 몰랐다. 기가 막혀서 나 참. 그 한영석의 청명주 그 누룩을 가지고 페루까지 가신 거지. 그걸로 치리로마 게이샤를 프로세싱 하신 거고. 그 커피가 COE 3위를 입상한 거고.
정동욱 : 교수님. 이 누룩으로 체리 상태일 때 한 번, 그리고 펄핑 후 무산소 발효 단계에서 또 한 번 발효를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발효과정에서 누룩은 커피 향미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되죠?
송호석 : 누룩이 가진 곰팡이가 당을 더욱 분해하는 역할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효소가 당을 녹이고, 효모는 그 당을 쉽게 먹고 발효를 진행하게 하는 설계입니다. 과육과 점액질을 100% 제거하면서, 누룩에 함유된 효모의 활동을 기대한 거죠. 마치 청명주가 발효를 하면서 나타나는 청포도나 파인애플 그리고 감칠맛 같은 부분이요.
정동욱 : 커피에서 발효라는 것은, 커피 체리에 남아 있는 과육과 점액질을 미생물이 먹어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산물을 통해 향미가 특별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누룩은 발효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하게 해주며 발효의 주체인 누룩의 특수성을 근거로 의도한 커피 향미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송호석 :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유럽 친구들이 일본의 사케 누룩인 ‘코지’라는 이름의 녀석들을 활용해서 체리 위에 포자를 번식하게 했는데, 그 활동을 통해 감칠맛이 상승하는 존재 정도의 발현이 있었던 걸 보고, 체리뿐 아니라 펄핑 후에도 그렇게 해 보면 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룩이 술을 만들 때 쌀을 녹이고 그 당분을 활용해서 향미 성분을 완성하는 걸 보고, 두 번 다 누룩을 넣는 게 당의 분해 그리고 효모의 먹이로서 보다 효과적인(?) 혹은 쉬운 먹이를 제공해서 더욱 원활하고 수월한 향미의 발현이 가능하다고 봤어요. 아나로빅 상태라면 더더욱 효모의 활동이 두드러질 것이니 온도나 환경 제어가 된다면 가능하다고 봤는데, 쌀 누룩이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당을 먹고 향미를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첫 배치를 로스팅했다. 청포도와 파인애플의 산미가 제법 강하다. 요거트 같은 느낌도 있고. 게이샤에서 기대하는 플로럴 계열이 약해 추출 조건을 바꿔서 다시 먹어보고는 세컨 배치를 다시 설계했다. 로스팅은 내일 해 볼 생각이다.
송호석 : 그리고 사실 비밀 레서피가 하나 더 있어요. 발효 막판에 유산균을 살짝 넣어서 레서피를 완성했습니다. 락틱을 살짝 곁들인 셈인데, 그보다는 향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보호막 같은 역할이에요.
정동욱 : 락틱이라고 하시니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와. 커피 플레이버를 프로세싱의 디테일과 연결해 이야기를 나누니 너무 재밌네요.
생두는 고작 15킬로밖에 구입하지 못했다. 전량 ROEST로 작업할 예정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제 첫 배치 작업해 봤으니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말로 하면 몇 킬로나 살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천천히 작업해 볼 생각이다. 재밌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