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작가님, 커피는 좋아하시나요?
A 커피 좋아했어요. 지금은 건강 문제로 먹지 않고 있어요.
왜 커피를 좋아했는지 생각해보면, 커피는 검정색이에요. 검정색과 갈색이 미묘하게 섞인 색이고, 빙글빙글 돌아요.
커피는 원색이 아닙니다.
커피는 완벽한 색이 아니고, 마시기 위한 색이에요. 묽어지기 직전의 색이라 좋아요. 그게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좋아요. 커피는 정말 관찰하기 좋은 대상이네요.
Q 경주에 와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작가님께 경주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경주라는 도시가 작가님께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A 경주에서 강아지 몇 마리를 만났던 게 자꾸 생각나요. 두 마리인가 세 마리였는데 저를 잘 따랐어요. 검은색 털을 가진 아이가 특히. 토끼를 닮았었고요. 배경은 한옥이었던 거 같네요.
불국사 좋았어요. 거기까지 가려고 버스 편을 알아봤던 게 기억나요. 버스에서 내렸는데 산안개가 가득했어요. 거기서 제 기억은 끝나죠. 산안개가 불국사에 대한 기억 전부를 막아버렸죠.
정말 스산하고 아름답습니다. 제 기억을 뒤져볼 필요가 없어요.
볕은 음험하지만 달콤했죠.
경주 시내의 유산(遺産)은 대체로 무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어둡고 축축하고. 천마총. 자전거. 말소리. 나무. 조명. 무덤이 가까이 있는 삶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경주는 작고, 낮고,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하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대에 유달리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죽음이 형상을 지니고 있었어요. 부드럽고, 거칠고, 낯설고, 노랗고, 푸르며, 새삼 함께이면서 각자인 잔디의 구체적인 물성을 지닌 채. 부드러운 곡선을 한껏 드리우며. 죽음이라는 과거가 삶이라는 현재의 풍경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지요.
Q 이런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혹은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해요. 책이지만 드립백이고 커피 회사를 통해 유통되는 책인데요,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너무 행복했어요. 드디어 나를 알아주는구나! (웃음) 너무 재밌겠다. 꼭 해야지. 생각했어요.
실용적인 물건으로서의 책을 꿈꿔 왔고, 나름대로 사업 구상도 해봤었는데요. 드립백 소설은 색달라요.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소설이나 시가 프린트된 드립백을 찢어야 하잖아요. 훼손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이 아프고, 멋진 거 같아요. 테이프로 붙여서 보존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처음과는 다르죠.
그런 게 좋아요. 영원하지 않겠구나. 자체로 기존의 책과는 달라지고 말죠. 일반적인 책은 보존·기록이 주된 목적인데, 드립백 책은 찢어지고 버려지는 게 마지막 단계죠. 『경주의 사랑』이 하나씩 하나씩 찢어지고 버려지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커피를 홀짝이며 『경주의 사랑』은 잊어버리고 말 사람들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좋아요. 그게 커피의 시간일 수도 있겠고요.
경주의 시간이기도 하죠. 잊혀지고, 훼손되고, 그러나 희미하게 향기도 나는 시간이요. 그런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젝트여서 좋아요.
저는 이런 식의 책이 가져오게 될 변화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 소비자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이 완전히 변하게 되는데, 그 지점이 재밌어요. 제가 조금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거든요. 소비자는 글과 커피를 동시 구매하는 거죠. 혼란스러운 구매라고 생각하고, 응원합니다.
내가 뭘 사는 거지?
소설? 커피? 김유림? 시간? 무얼 기대하고 사느냐에 따라 이 상품(책이든 무엇이든 상품이죠)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색채를 달리 하겠죠. 혼란스러운 상품이 좋아요.
돈을 주고 샀는데 사라지는 글이 좋아요.
돈을 주고 샀는데 사라지는 커피가 좋아요.
잊혀지고 버려지고
외면하게 될
시간을 자발적으로 산다는 건
이 시대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기호 식품인 커피와도요.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책’은 지금의 시대에 무엇인가요?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저희는 커피 회사에서 책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를 계속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A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책은 일단 작가에게 중요하죠. 유형의 물건(책)을 만들어낸다, 는 행위는 작가와 작가를 둘러싼 시장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작가로서는 노동의 결과를 감각 가능한 물질로 유형화한다는 게 필요하죠.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속성을 어느 정도 담보해주는 물건으로 생산해내면, 예상치 못한 미래나 반응과 조우할 확률이 커지죠. 그게 바로 보존이 약속하는 가능성입니다. 책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숏텀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으려면 오래 견딜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어 왔죠. 그리고 그런 면이 분명 있습니다.
출판 시장은 팔 만한 대상이 필요하니까 물건이 필요하죠. 물론 물건이 꼭 유형이어야 할 필요는 (이제) 없지만요. 책의 상징성은 여전하죠. 왜일까? 만져야 하니까요. 눈도 만질 줄 아는 기관이기도 하고요.
책과 시간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죠. 책이라는 사물이 가진 특성, 혹은 책이 책으로서 오랜 기간 유통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은 시간을 거쳐야만 발생하는 작용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커피도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호 식품으로 사랑 받아 왔는데요. 바로 그 점이 이번 프로젝트를 아주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는 유형의 물질일 수밖에 없고, (인간의) 몸에 특정한 작용을 하죠. 책과 비교하면 즉각적인 작용이죠. 모르겠어요. 커피의 유통과 책의 유통이 합쳐진다는 점이 좋아요. 책이 일반적으로 기대고 있는 시간 작용을 배반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발간되는 드립백 책이 책의 기존 유통 관계를 비틀 수밖에 없다고 느껴요.
앞서 말했듯이 혼란스러운 구매에서는 씁쓸한 맛이 나고, 쓸쓸하죠. 버리기 위해서 구매한다는 점이 좋아요.
그냥 그 지점이 글을 이미 다르게 만들거든요.
글의 운명을 어느 정도 결정해주는 거죠.
갑자기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생각나요.
알면서도 사는 건 좀 다른 방식의 소비인 거 같아요. 기대도 되고, 쓸쓸해요. 그리고 전 쓸쓸한 걸 좋아하거든요.
유머는 더 좋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