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전 의논
정리하기 힘든 긴 이야기.
한밤중, 눈물의 강. 촌장은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휘두르며 성을 내고 있다. 날씨가 이렇게나 심상치 않아 앞으로 농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쌀을 버릴 수는 없다는 거다. 스룩센은 촌장의 팔을 붙잡고 상황이 격해지는 것을 막아 보려 한다. 헤자르는 쌀을 버리는 것만이 마을을 구하는 길이라고 한다.
에델: 정말요?
헤자르: (끄덕끄덕)
촌장: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멍청이들아! 보고만 있지 말고 막아!
한 명이 쌀가마니를 버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슬금슬금 강으로 다가간다. 발렌틴은 겨울에 무엇을 먹으려 하느냐며 말린다. 마을 사람 하나가 신지기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자, 발렌틴은 신지기가 죽으라면 죽을 거냐고 쏘아 붙인다. 발렌틴은 어차피 버릴 것이면 자기가 가져가겠다며 쌓여 있는 쌀 자루를 하나 집어 든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버려야 하는 곡식을 왜 들고 가느냐고 하고, 발렌틴과 말다툼이 일어난다. 발렌틴은 자기는 부상자를 치료하기라도 했지, 신지기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며, 어차피 타야 하는 것을 보니 별로 하는 것도 없는 듯한데 차라리 자기가 신지기를 하는 게 낫겠다 한다. 에델은 왜 타야를 끌어들이느냐고 하지만 발렌틴은 아랑곳 않고 쌓인 곡식 앞에 서서 이건 자기가 다 가져갈 테니 불만 있는 자는 자기를 쓰러뜨리고 가져가라 한다.
바스티온이 헤자르에게 정말 버려야 하느냐, 겨울은 어떻게 날 것이냐고 묻자, 헤자르는 곡식을 버리면 겨울을 날 수도 있고 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겨울을 나지 못한다고 확언한다. 에델이 정말이냐고 묻자, 헤자르는 뭔가 얘기를 하려다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다시 정신이 나가서 배시시 웃는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에델과 타야,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란다. 바스티온은 타야에게 헤자르를 신당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고, 에델도 이를 따라간다. 바스티온은 칼을 뽑아들고 발렌틴이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싸움을 건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쌀을 가져온 마을 사람들 중 헤자르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몇몇은 쌀을 도로 챙겨가려 하고, 그 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도 싸움이 벌어진다. 결국은 촌장이 말리지만, 싸움통에 쌀자루가 엎어지고 터져서 바닥에 낟알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대충 쌀알을 주워담아 집에 돌아간다.
발렌틴은 바스티온의 다친 손을 치료해 준다. 바스티온은 치료를 받으며 헤자르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하고, 발렌틴은 저 신지기가 죽어야 일이 끝날 것 같다고 한다.
스룩센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며 촌장을 문책한다. 쌀을 버리는 것을 묵과할 것이냐고 촌장이 대들자 스룩센은 대로하여 남작이 올 때까지 집에서 나오지 말 것을 명한다. 그러자 촌장은 알겠다고 하고, 아까의 난장판에서 허리를 좀 삐끗한 것 같다며 치료를 받고 집에 가겠다 한다. 스룩센이 허락하자 촌장은 치료소로 발길을 옮긴다. 스룩센은 혼자 촌장집으로 돌아간다. 촌장 부인은 아픈 노인네를 혼자 치료 받으러 가게 뒀다고 스룩센을 타박한다.
에델은 헤자르를 신당으로 옮기며, 그 정신 나간 모습을 두려워한다. 에델은 걱정이 되어 그날은 신당에서 잔다.
타야: 스승님 이제 주무셔야죠, 계속 웃기만 하시면 어떡해요?
헤자르: 히히히.
촌장은 발렌틴을 찾아가, 스룩센이 자기에게 집에서 근신하라고 했다며 자기 대신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강에 버리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부탁한다. 발렌틴은 마을 사람들이 계속 이러면 자기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무슨 권력이 있는 것도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겠냐며 거절한다. 그러자 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며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촌장집에는 아침부터 손님들이 와서 촌장과 차를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린다. 스룩센이 다가갈 때마다 말을 멈추지만, 엿들어 보니 아마도 촌장이 연금을 당해 마을 사람들에게 곡물 투기를 막아 달라고 하는 것 같다. 객들이 돌아간 뒤에, 발렌틴이 또 찾아온다. 층계참의 의자에 낮아 있는 스룩센에게, 곡식을 버릴 것 같으면 고기라도 잡아야 하겠다며 낚싯대를 빌러 왔다 한다. 스룩센이 강에서는 벌레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고 묻자, 발렌틴은 그것도 감시하는 겸해서 가는 거라고 한다. 촌장은 발렌틴이 고기를 낚겠다 하는 말을 듣고 의아해하지만 군말 없이 낚싯대를 내 준다.
발렌틴: 어젯밤에 하셨던 얘기는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촌장: 부탁하네.
발렌틴은 강으로 간다. 가는 길에 보니 마을 사람 몇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발렌틴을 보고 "혹시 쌀..." 하다가 차림새를 보고 말을 거둔다. 강에 쌀을 버리러 가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지키고 있다며, 강가에서는 벌레가 나올까봐 여기서 지키고 있다 한다. 발렌틴은 이 사람들을 지나쳐 강가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촌장의 말과 바스티온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
스룩센은 신당을 찾아간다. 신당 주변에서는 그물과 밧줄, 망루를 설치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타야와 에델, 헤자르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헤자르는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하다. 스룩센은 신지기의 안부가 궁금해서 왔다고 하는데, 마침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곡식을 버리러 갔더니 몇 명이 촌장의 명이라며 길을 막고 못 버리게 했다며, 신지기에게 확인하러 왔다 한다. 스룩센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란다.
헤자르: 헤헤헤. 쌀! 쌀! 버려! 버려!
그 모습을 보고 미심쩍어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타야는 지금 정신이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렇게 강조하시니 정말 중요한 일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겠다며 일어선다. 에델과 스룩센도 따라 나선다.
강가로 가는 길에, 세 사람은 마을 사람 셋이 길목을 막고 있는 모습을 본다.
스룩센: 아니, 이 사람들이 거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