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성의 문제, 성공과 탁월성


효율성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왠지 바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자원 낭비를 줄이며, 더 빠르고 더 많이 성과를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정말 그렇게 자명한가?

Bhuyan와 Chakraborty(2024)는 효율성이 무조건적인 선이 아님을 철학적으로 해부한다. 그들은 효율성이 단지 외재적 수단이 아니라, 때로는 그 자체로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는 ‘역설적 가치(paradoxical good)’일 수 있다고 말한다. 효율성이 지향하는 목적이 진정한 탁월성이나 공익을 향하지 않을 경우, 효율성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맥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실천(practice)과 제도(institution)의 구분에서 출발한다(MacIntyre, 2007). 실천은 인간이 탁월성을 추구하며 수행하는 활동이다. 예술, 과학, 스포츠, 심지어 요리 같은 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와 달리 제도는 실천을 조직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자원 배분과 외재적 보상을 담당한다. 문제는 이 제도가 실천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외재적 성공(돈, 권력, 명예)을 우선시할 때 발생한다. 효율성은 이 제도적 관점에서 자주 동원되며, 실천을 왜곡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논문은 효율성의 부작용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perversity, 다른 하나는 jeopardy다. perversity는 효율성의 극단적 추구가 오히려 시스템 전체를 더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Tenner, 2018). 냉장고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자 더 많은 소비자가 더 큰 냉장고를 구매하게 되고, 결국 총 에너지 소비량은 늘어난다. 효율이 낳은 비효율이다.

두 번째는 jeopardy, 즉 효율성이 인간의 탁월성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자동화된 기술 시스템은 인간의 실수 가능성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장점을 갖지만, 동시에 인간의 판단력, 창의성, 인내심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다. Disneyland의 ‘Autopia’는 아이들에게 운전 체험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차량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위험도 없고 실수도 없으며, 결국 배울 것도 없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학습과 성장을 제거한다(Morozov, 2013).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효율성이 지향하는 성공의 종류이다. Bhuyan와 Chakraborty는 성공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째는 외재적 성공이다. 이는 재화, 명예, 권력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결과 중심의 성공이다. 둘째는 경쟁에서의 승리다. 이 경우 성공은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 있다. 셋째는 내재적 탁월성 그 자체를 추구하는 성공이다. 이는 맥킨타이어가 말한 ‘실천’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과 조직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성공에만 집중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효율성은 비윤리적 행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Facebook은 사용자 참여를 늘리기 위해 감정 조작과 중독 알고리즘을 활용했고(Bhargava & Velasquez, 2021), 코카콜라, 펩시 같은 기업들은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성공적인 브랜드’로 평가받는다(McVeigh, 2020).

그렇다면 효율성은 정말 악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Bhuyan와 Chakraborty는 효율성이 인간의 탁월성을 도울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거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때 효율성은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의 목표가 내재적 탁월성일 때만 가능하다. 효율성이 무조건 추구되어야 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목적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어야 할 윤리적 수단이라는 말이다.

이 논의는 기술 철학자 Ivan Illich와 Amartya Sen의 주장과도 맞닿는다. Illich는 기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게 된다고 보았다(Illich, 1973). Sen은 효율성이 개발의 중심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능력(capability)과 자유가 더 근본적인 개발 지표라고 주장하며, 효율성은 그것을 보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본다(Sen, 1975).

이처럼 효율성은 단순히 빠르고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따져야만 윤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기업도, 정부도, 개인도 효율성에 앞서 탁월성과 공동선을 생각해야 한다. 드러커(Peter Drucker)는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이 일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결국 효율성의 윤리적 정당성을 따지는 질문이다(Drucker,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