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리주의/경험주의, 인식, 진리, 필연적종합명제
Fung, T. (2025). Cognitive phenomenology and the arbitrariness problem for rationalism. Synthese, 205(6), 1-24.
미 Idaho 대학의 Torrance Fung 철학과 조교수 (중국계)
최근 철학자들 사이에서 두 가지 주요 논쟁이 있었다.
첫 번째 논쟁은 경험의 성질(phenomenal properties)에 대한 논쟁이다. 우리가 사과를 보면 빨간색이 떠오르고, 음악을 들으면 어떤 소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경험에는 특별한 감각적 성질(sensory phenomenology)이 있다. 그런데 최근 철학자들은 이런 감각적 성질 말고도 직관(intuition)이나 ‘생각’ 같은 경험에도 특별한 의식적 성질이 있는지 논쟁했다. 예를 들어 수학이나 논리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때 느끼는 특유의 느낌이 따로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감각과 구분되는 의식적 성질을 인지적 현상성(cognitive phenomenology)이라고 한다.
두 번째 논쟁은 우리가 경험 없이도 알 수 있는 선험적 지식(a priori knowledge)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논쟁이다. 예컨대,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다”라는 사실을 실제 삼각형을 그리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경험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반면, 직접적인 관찰이나 감각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경험적 지식(empirical knowledge)이라고 한다. 이런 선험적(a priori) 지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합리주의자(rationalists)라 하고, 이를 부정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며,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경험적(empirical)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험주의자(empiricists)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합리주의자들 중 일부(현상적 합리주의자(Phenomenal Rationalists))는 중요한 주장을 했다. 이들은 우리가 경험 없이 얻는 선험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얻게 하는 직관(intuition)이라는 것이 결국 하나의 의식적 경험(conscious experience)이라고 말했다(BonJour, 1998; Bealer, 1999; Plantinga, 1993). 즉,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냥 아무 느낌 없이 지식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일종의 특별한 의식적 느낌, 즉 ‘직관적(intuitive)’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이 문제를 임의성의 문제(Problem of Arbitrariness)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만약 직관(intuition)도 결국 하나의 의식적 경험이라면, 눈이나 귀로 하는 감각적 경험에서 얻는 지식은 ‘경험적(empirical)’이라고 부르고, 왜 직관적 경험에서 얻는 지식만 굳이 ‘선험적(a priori)’이라고 특별히 구분하는가?”(Peacocke, 2021; Marasoiu, 2020).
이 질문은 현상적 합리주의자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그래서 논문의 저자는(Fung, 2025)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즉,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구분하는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경험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필연적 종합명제(necessary synthetic propositions)를 알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 종합명제란, 경험 없이도 반드시 참인 사실이지만 단순히 정의나 말뜻으로만 알 수 없는 중요한 진리이다(예: “어떤 물체도 동시에 완전히 빨갛고 동시에 완전히 파랄 수 없다.”는 사실 등).
그렇다면 이런 필연적 종합명제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이때 필요한 경험이 바로 감각을 뛰어넘은 특별한 인지적 현상성, 즉 ‘생각 자체의 특별한 느낌’을 가진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색깔이나 모양 같은 일반적인 감각 경험(sensory phenomenology)만으로는 필연적이고 추상적인 진리를 이해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특별한 경험은 어떻게 필연적인 진리를 정당화할까?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필연적이고 추상적인 진리를 직접 ‘마주하는’ 또는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직접적 앎(acquaintance)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우리가 ‘사과’를 직접 보고 만지면서 사과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듯이, 추상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도 마음속으로 직접 마주하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합리주의는 최근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경험주의인 모달 경험주의(modal empiricism)와도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다. 모달 경험주의는 필연적 진리(예를 들어 “물은 본질적으로 H₂O다”)도 궁극적으로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적’(inferential)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Mallozzi, 2021; Kment, 2021). 즉, 이들은 필연적인 사실도 우리의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지를 관찰한 경험(empirical observation)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는 이런 필연적 진리를 단지 경험적(empirical) 추론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진리 자체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 즉 직접적 앎(acquaintance)을 통해 얻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모달 경험주의와 구별된다.
결과적으로 저자(Fung, 2025)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연적인 진리를 아는 직관(intuition)적 경험은 일반적인 감각 경험과는 다른 특별한 의식적 느낌인 인지적 현상성(cognitive phenomenology)이 있다.
이런 직관적 경험이 정당화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진리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 즉 직접적 앎(acquaintance)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주의자는 임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인지적 현상성과 직접적 앎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달 경험주의(modal empiricism) 추가설명:
모달 경험주의(modal empiricism)는 최근 등장한 경험주의의 한 형태로,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진리도 결국 세계에 대한 경험적 관찰(empirical observation)로부터 출발하여 추론적(inferential)으로만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모달 경험주의는 경험(empirical experience)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모든 지식을 설명하고자 하는 경험주의(empiricism)의 기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우리가 필연적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데서 기존 경험주의와 차이가 있다.
Bealer, G. (1999). A theory of the a priori. Philosophical Perspectives, 13, 29–55.
BonJour, L. (1998). In defense of pure reason: A rationalist account of a priori justif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Fung, T. (2025). Cognitive phenomenology and the arbitrariness problem for rationalism. Synthese, 205(6), 1-24.
Kment, B. (2021). Essence and modal knowledge. Synthese, 198, 11139–11164. https://doi.org/10.1007/s11229-020-02783-7
Mallozzi, A. (2021). Putting modal metaphysics first. Synthese, 198, 11493–11512. https://doi.org/10.1007/s11229-020-02731-5
Marasoiu, A. (2020). Arbitrariness arguments against new rationalism. Synthese, 197(1), 195–215. https://doi.org/10.1007/s11229-018-1743-3
Peacocke, C. (2021). The arbitrariness problem and the a priori.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102(1), 4–18. https://doi.org/10.1111/phpr.12711
Plantinga, A. (1993). Warrant and proper function.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