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계획 깊이(planning depth)’ 조절
이 논문은 인간이 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의 복잡도에 따라 인지적 자원(특히 계획 깊이)을 유연하게 조절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입증
Eluchans, M., Lancia, G. L., Maselli, A., D’Alessandro, M., Gordon, J. R., & Pezzulo, G. (2025). Adaptive planning depth in human problem-solving. Royal Society Open Science, 12(4), 241161.
Eluchans et al.(2025)는 인간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계획 깊이(planning depth)’가 얼마나 유연하게 조절되는지를 탐구한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모바일 앱을 통해 여러 개의 보석을 수집하는 길찾기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계획 깊이를 1부터 8까지 다양하게 조정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상 동일한 수준의 계획 깊이를 고수하지 않고, 문제의 복잡성에 따라 유연하게 깊이를 조절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더 깊이 사고하며, 불필요한 경우에는 얕은 계획으로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이론과 맞닿아 있다. 이 이론은 인간이 무한한 정보나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자원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 노력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Simon, 1957; Lieder & Griffiths, 2020). 인간은 제한된 기억과 시간이라는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다양한 휴리스틱(heuristics)을 사용하며, 때로는 불완전하거나 근사적인 해결책을 선택하더라도 더 나은 효율성을 추구한다(Gigerenzer & Gaissmaier, 2011).
참가자들은 실험에서 처음 시도한 경로(즉, 처음 되돌아가기 전의 선택들)를 통해 해당 문제에 맞는 계획 깊이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5단계 깊이의 계획이 필요한 문제에서는 평균적으로 그 깊이를 정확히 사용하며 문제를 풀어냈다. 이는 ‘고정된 깊이’ 모델보다 ‘적응적 깊이’ 모델이 참가자의 행동을 더 잘 설명한다는 통계적 증거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일괄된 사고 깊이를 고수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인지 자원을 조절하며 문제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성은 기존의 체스 연구나 여행 세일즈맨 문제 등 다양한 도메인에서 발견된 계획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체스 대가들은 깊은 수 읽기를 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필요한 만큼만 수를 계산하고, 더 깊은 계산은 특별히 필요할 때만 수행한다(Chase & Simon, 1973; Campitelli & Gobet, 2004). 이는 뇌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신경과학적 가정과도 일치한다(Gershman et al., 2015).
또한 연구는 참가자들이 짧은 경로보다는 ‘잘 연결된 노드들’을 선호하는 경향도 보여준다. 이는 단기적 효율성보다 장기적 유연성과 선택지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가능한 옵션을 최대한 열어두는 선택을 함으로써 이후의 문제 해결 가능성을 넓혀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역량(empowerment)’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역량은 미래에 가능한 많은 행동과 결과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을 설명하는데, 이는 특히 불확실하거나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Brändle et al., 2023).
이 연구는 여러 중요한 논쟁에도 기여한다. 첫째, 인간이 문제를 해결할 때 ‘깊이 있는 계획’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일부 학자들은 사람들이 고정된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사람들이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전략을 바꾼다고 주장한다(Callaway et al., 2022). 본 연구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둘째, ‘메타 계획(meta-planning)’에 대한 논의다. 사람들은 계획을 하기 전에 “얼마나 깊게 계획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계획을 넘어서, 계획에 대한 계획을 요구하는 복잡한 인지 과정이다(Gershman et al., 2015). 본 연구는 사람들이 문제의 구조나 보석 배치 등을 빠르게 스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적절한 계획 깊이를 설정하는 ‘사전 판단’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현재 인간 계획 능력에 대한 이론뿐 아니라 AI 및 인지과학 분야에도 적용 가능성이 있다. 인간처럼 제한된 자원 내에서 효율적으로 계획하는 인공지능을 설계하려는 시도에서는 이와 같은 ‘적응적 깊이 조절’ 개념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Brändle, F., Stocks, L. J., Tenenbaum, J. B., Gershman, S. J., & Schulz, E. (2023). Empowerment contributes to exploration behaviour in a creative video game. Nature Human Behaviour, 7, 1481–1489. https://doi.org/10.1038/s41562-023-01661-2
Campitelli, G., & Gobet, F. (2004). Adaptive expert decision making: skilled chess players search more and deeper. ICGA Journal, 27(4), 209–216. https://doi.org/10.3233/icg-2004-27403
Callaway, F., van Opheusden, B., Gul, S., Das, P., Krueger, P. M., Griffiths, T. L., & Lieder, F. (2022). Rational use of cognitive resources in human planning. Nature Human Behaviour, 6, 1112–1125. https://doi.org/10.1038/s41562-022-01332-8
Chase, W. G., & Simon, H. A. (1973). Perception in chess. Cognitive Psychology, 4(1), 55–81. https://doi.org/10.1016/0010-0285(73)90004-2
Eluchans, M., Lancia, G. L., Maselli, A., D’Alessandro, M., Gordon, J. R., & Pezzulo, G. (2025). Adaptive planning depth in human problem-solving. Royal Society Open Science, 12(4), 241161.
Gershman, S. J., Horvitz, E. J., & Tenenbaum, J. B. (2015). Computational rationality: A converging paradigm for intelligence in brains, minds, and machines. Science, 349(6245), 273–278. https://doi.org/10.1126/science.aac6076
Gigerenzer, G., & Gaissmaier, W. (2011). Heuristic decision making.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2, 451–482. https://doi.org/10.1146/annurev-psych-120709-145346
Lieder, F., & Griffiths, T. L. (2020). Resource-rational analysis: Understanding human cognition as the optimal use of limited computational resource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43, e1. https://doi.org/10.1017/S0140525X1900061X
Simon, H. A. (1957). Models of man: Social and rational. New York, NY: John Wiley and 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