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론, 프레이밍, 서사를 통한 비판적/해석적 정책 분석
정책을 보는 새로운 눈과 정치를 하는 새로운 길
정책의 세계에서는 숫자나 통계만큼이나 말과 이야기가 현실을 빚어냅니다. 정부가 어떤 문제를 “위기”라고 부를지, 혹은 “도전”이라고 부를지에 따라 대중의 인식과 대응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책 분석에서 이러한 의미의 해석과 구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바로 비판적·해석적 접근법이며, 그 핵심에는 담론 분석, 프레이밍(framing) 분석, 내러티브(narrative) 분석이라는 세 가지 이론적 렌즈가 있습니다 (van Hulst et al., 2025). 이 세 접근법은 각기 다른 뿌리와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언어와 이야기를 통해 권력과 현실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주목합니다. 다음은 이들 세 가지 접근법이 어떻게 등장했고 무엇을 강조하며, 비판적 정책연구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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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담론 분석은 가장 거시적인 렌즈로 볼 수 있습니다. 담론(discourse)이란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적 의미의 질서를 가리키는데, 담론 분석가들은 언어가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 자체를 구성한다고 봅니다. 이 접근법의 철학적 뿌리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포스트구조주의 전통과 규범적 담론이론 두 갈래를 들 수 있습니다. 포스트구조주의 계열 학자들은 미셸 푸코와 같은 이들의 영향을 받아, 시대를 지배하는 담론이 어떻게 지식과 “진실”의 기준을 만들고 사람들과 제도를 규율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Foucault, 1977; van Hulst et al., 2025). 예컨대 푸코는 근대 사회에서 형벌에 관한 담론이나 성(sexuality)에 관한 담론이 어떻게 등장하여 사람들의 생각과 제도(감옥, 정신의학 등)를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규범적 담론이론은 민주적 토론과 이상적 담화 상황을 강조하며, 담론을 이상적인 의사소통 행위의 관점에서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철학적 입장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담론 분석은 언어 속에 권력이 스며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개념, 범주는 중립적이지 않고, 사회적·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어떤 관점을 정당화하고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는 힘을 지닙니다 (Keller, 2012; Fairclough, 1992).
정책학 분야에서 담론 분석은 1990년대부터 활발해졌는데, 마르텐 하이어의 환경정책 연구가 한 사례입니다. 하이어(Hajer, 1995)는 네덜란드의 환경 논쟁에서 **“산성비”**라는 담론이 등장해 정책 의제를 어떻게 형성하고 지배적인 이야기로 자리잡았는지 분석했습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담론은 “사회적·물리적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아이디어, 개념, 범주들의 집합으로, 특정한 실행(practice)을 통해 생산·재생산된다” (Hajer, 1995, p.44). 예를 들어 한때 환경 분야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이 부상하면서, 개발과 환경보호를 조화시키는 것이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구분되었습니다. 이러한 지배 담론 속에서 정책 문제와 해결책의 상식이 형성되고, 그 담론에 맞지 않는 의견은 주변부로 밀려나곤 합니다. 담론 분석가들은 바로 이렇게 언어의 구조 속에 숨어있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밝혀내고자 합니다 (van Hulst et al., 2025). 언어는 그냥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보고서, 언론 기사, 회의록 등 텍스트와 말의 형태로 구현되어 제도적 관행과 얽혀 있습니다. 담론 분석은 이 텍스트들을 꼼꼼히 읽고 맥락을 파헤쳐, 어떤 표현이 금기시되고 무엇이 당연시되는지, 누구의 이해관계가 떠받들어지고 누가 침묵당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가령 어떤 사회에서는 범죄에 대한 담론이 “엄정한 처벌”과 “법과 질서”의 언어로만 이루어지면, 복원적 정의나 가해자의 사회적 배경 같은 대안 담론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하지만 담론은 늘 균일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대항담론(counter-discourse)**도 등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지배적인 “진리”에 도전하는 새로운 언어와 개념들이 나타나 담론 투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Laclau & Mouffe, 1985; van Hulst et al., 2025). 이를테면 기후변화 문제에서 한때 “경제 성장” 담론이 정책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 담론이 힘을 얻어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압박하는 양상입니다. 이런 식으로 담론 분석은 정책 담론의 형성과 변동을 추적하면서, 겉보기엔 객관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책 “사실”들이 실은 특정 언어적 구성을 통해 권력과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임을 밝혀냅니다 (van Hulst et al., 2025).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 **“사실”**이고 **“문제”**로 여겨질지조차 담론의 힘에 달려 있으므로, 담론 분석은 정책 과정의 숨은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는 도구가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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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레이밍(framing) 분석은 담론보다는 한결 미시적인 층위에서 의미 구성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접근입니다. ‘프레임(frame)’이란 말 그대로 사물을 보는 틀인데, 어떤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측면을 부각하고 어떤 측면을 배제하느냐를 분석합니다 (Entman, 1993). 프레이밍 개념은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고 발전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의사결정 연구에서 동일한 문제를 제시하더라도 “사망자 수”로 표현할 때와 “생존자 수”로 표현할 때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Tversky & Kahneman, 1986). 이는 프레임이 인간의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반면, 해석적 사회과학에서는 프레이밍을 사람들 간의 의미 만들기 과정으로 봅니다 (Schön & Rein, 1994; Dewulf & Bouwen, 2012). 정치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엔트만(Entman, 1993)은 프레이밍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프레이밍이란 인지된 현실의 어떤 측면들을 선택해 강조함으로써, 그 사안을 특정 방식으로 규정하고 원인과 도덕적 평가, 해결책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프레임이란 ‘이 문제는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ntman, 1993). 같은 현실의 사건도 프레임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데, 이는 정책 과정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북극해 석유 시추 소식을 접했을 때, 한 언론은 이를 “환경 재앙”으로 프레임화할 수 있고, 다른 언론은 “지역 경제의 기회”로 프레임화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환경 피해를 핵심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규제와 보존을 요구하는 문제로 만들고, 후자는 경제성장을 부각하여 개발을 정당화하는 문제로 정의합니다. 이렇듯 프레임은 특정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다른 요소들은 배경으로 밀어냄으로써 (Dewulf et al., 2011; van Hulst et al., 2025) 현실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어떤 프레임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이슈의 원인과 해법도 달라지니, 프레임은 사실상 현실을 바라보는 창이자 정책 방향을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프레임 개념의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대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레임에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전략적으로 프레이밍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정책 토론장에서 논쟁하는 당사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의제를 묘사하려 애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Benford & Snow, 2000). 이를테면 이민 문제를 두고 어떤 이는 이를 “국가 안보 위협”이라는 프레임으로 제시하고, 다른 이는 “인도주의적 위기” 프레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이민자를 잠재적 범죄자나 테러 위험으로 그려 강경 대응을 요구하게 하고, 후자는 고통받는 난민의 이미지를 그려 지원과 보호를 주장하게 되죠. 이렇게 **프레임 간 충돌(frame contest)**이 벌어지면, 어떤 이야기가 힘을 얻느냐에 따라 정책도 크게 달라집니다. 결국 “토론의 의제를 누가 설정하느냐” – 다시 말해 어떤 프레임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느냐 – 가 정책 방향을 좌우하게 됩니다 (Schön & Rein, 1994; van Hulst et al., 2025). 프레이밍 분석은 이러한 과정을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회의록이나 인터뷰 자료를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들이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프레임을 주고받는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쪽이 어떤 표현으로 문제를 규정하면, 다른 쪽이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재해석하거나 반박하면서 **“프레임 교섭(frame negotiation)”**이 벌어집니다. 경우에 따라 대화가 원만히 이뤄져 공통 프레임(shared frame)이 형성되기도 하고, 반대로 끝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프레임의 양극화가 심화되기도 합니다 (Dewulf & Bouwen, 2012). 프레임이 갈리면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 진영이 전혀 다른 현실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대의 많은 정책 논쟁 – 예컨대 백신 정책, 총기 규제, 기후변화 대응 – 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프레이밍 분석은 이렇게 정책 이슈를 둘러싼 인식의 지형을 그려주고, 각 프레임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며 누구를 배제하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van Hulst et al., 2025). 또한 프레임 연구는 인지와 가치의 연결고리에도 주목하는데, 쇤과 라인(Schön & Rein, 1994)이 말했듯 프레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 설명(있는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당위(마땅한 대응)”로 점프하도록 만들어주는 교량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문제를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면 강경 대응이 당위처럼 여겨지고, “인권 문제”로 보면 인도적 조치가 당연해집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규범으로의 도약”(Schön & Rein, 1994) 덕분에 프레임은 정책 논리를 짜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비판적 정책분석에서는, 표면적인 통계나 법률 분석뿐 아니라 정치적 담론 속에서 누가 어떤 프레임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레이밍 분석이 정책학에 기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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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내러티브(narrative) 분석, 즉 이야기 분석은 인간이 이야기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접근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전달할 때 흔히 이야기를 통해 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대화에서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오가죠. 정책 세계도 예외가 아니라서, 복잡한 정책 문제들은 단순한 데이터 나열이 아니라 인과관계와 교훈이 담긴 이야기의 형태로 대중에게 설명되는 일이 많습니다 (Stone, 1997). 내러티브 분석은 이러한 이야기의 힘을 분석의 초점으로 삼습니다. 학술적으로 이야기 연구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Labov, 1972; Bruner, 1990), 사회과학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입니다 (Riessman, 2008). 특히 조직학 분야에서 보지(Boje, 1991)는 조직 자체를 “스토리텔링 조직”이라 부르며,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온갖 이야기들이 조직 문화를 이루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책학에서도 **서사적 전환(narrative turn)**이라 불릴 만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Deborah Stone의 저서 Policy Paradox (정책의 역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톤은 정책 논쟁에서 흔히 등장하는 네 가지 유형의 이야기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쇠퇴의 이야기”**입니다. 그 전형적인 플롯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상황이 좋았다. 그런데 점점 나빠지더니, 이제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Stone, 1997, p.139). 이런 몰락의 서사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정치인들은 종종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지금 위기가 심각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통해 정책介入의 필요성을 역설하지요. 이러한 플롯은 문화적인 공명을 얻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므로, 위기 서사는 위기의 심각성을, 발전 서사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며 정책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내러티브 분석의 기본 가정은, 사람들이 사건을 이야기로 조직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Forester, 1993; Roe, 1994). 이야기는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사건들에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를 부여하고 거기에 주인공과 악당, 피해자와 영웅 같은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를 **스토리텔링의 ‘플롯 짜기(emplotment)’**라고 부르는데 (Czarniawska, 2004), 같은 사실관계도 어떻게 줄거리를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정책 담론의 예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이민 문제를 두고 어떤 정치인은 “나라의 안전이 한때는 굳건했는데, 이민자 급증으로 지금 혼란에 빠졌다”는 쇠퇴 서사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부는 무능하거나 방임적인 인물로, 이민자는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과거에 우리나라는 난민을 도우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지만, 최근에 연대의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 서사는 국민의 연민과 정의감을 불러일으켜 정책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이끕니다. 이처럼 서사는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만들어갑니다. 한 연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직후 미국 언론 보도를 분석했는데, 처음에는 뉴올리언스의 상황을 “무법천지의 폭동” 이야기로 그려냈다고 합니다. 신문에 “약탈자들이 날뛰고, 상점을 약탈하고 있다”는 묘사가 넘쳐났고, 정부도 이를 “치안 붕괴” 서사로 받아들여 군대를 투입했습니다 (Tierney et al., 2006).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바로는 당시 언론이 전한 극단적 폭력의 이야기가 상당히 과장되었고, 이러한 내러티브가 재난 대응을 지나치게 군사화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Tierney et al., 2006). 이 사례는 이야기가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언론 보도가 그린 서사에 따라 여론과 정책 대응이 요동친 것이지요.
내러티브 분석은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정책 과정에서 이야기의 역할을 탐구합니다. 사람들이 정책을 둘러싸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van Hulst et al., 2025). 이야기는 대개 등장인물(인간 또는 집단), 사건들, **배경(시간과 장소)**으로 구성되는데 (Labov, 1972; van Hulst et al., 2025), 이야기 분석가는 텍스트나 담화에서 이 요소들을 찾아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분석합니다. 예컨대 정책 보고서의 머리말에 “우리는 지난 10년간 ~~분야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이제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는 구절이 있다면, 이는 과거의 성취와 현재의 위기라는 사건들을 연결하여 향후 행동의 필연성을 이야기로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묘사도 중요합니다. “악의적인 가해자 vs 힘없는 희생자” 구도가 그려지면 강력한 개입이 정당화되고, “유능한 영웅 vs 극복해야 할 난관” 이야기로 그려지면 혁신 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사의 구성 요소들은 특정 가치판단을 실어나르며, 독자는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시각을 채택하게 됩니다 (Stone, 1997; van Hulst et al., 2025). 내러티브 분석의 비판적 의의는, 정책 담론에 내포된 이러한 서사적 함의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더 자각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누가 이야기를 말할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한데,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서사적 발언권을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나 전문가의 이야기는 공식 기록과 언론에 실리지만, 사회적 약자나 주변인의 이야기는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비판적 내러티브 연구자들은 때로는 연구과정에서 직접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장으로 들어가 인터뷰를 통해 주변부 집단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공론장에서 새로운 서사가 등장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Acosta et al., 2020). 이는 단순한 학술 분석을 넘어, 이야기의 힘을 활용한 참여적 개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내러티브 분석은 정책에 관한 담론 속에서 어떤 이야기들이dominant 되고, 어떤 이야기들은 억압되며, 이를 바꾸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탐구함으로써, 정책을 둘러싼 인간적 의미세계를 조명합니다 (van Hulst et al., 2025).
지금까지 살펴본 담론 분석, 프레이밍 분석, 내러티브 분석은 각기 초점과 방법은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철학적 기반을 공유합니다. 셋 다 해석주의적(interpretive) 관점에 서 있는데, 이는 정책현실을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사실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한다는 점입니다 (van Hulst et al., 2025). 다시 말해, 정책 문제와 해결책은 사람들의 의미부여 활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의미부여 과정에는 권력과 담론이 개입합니다. 또한 세 접근법 모두 언어, 상징, 이야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과학적 분석이라 하더라도 그 언어적 구성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자각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실증주의 정책분석과 구별되는 점으로, 해석적 분석가들은 정책 분석 자체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van Hulst et al., 2025).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담론/프레임/내러티브 분석은 각자 다른 질문과 시각으로 현실을 파고듭니다. 비유하자면, 같은 숲을 담론 분석은 위성사진처럼 전체 지형을 조망하며 어떤 거대한 길과 경계가 그려져 있는지 살핀다면, 프레이밍 분석은 숲속 현장에 내려가 사람들이 길을 어떻게 만들고 다투는지를 관찰하고, 내러티브 분석은 그 숲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들을 채록하여 사람들이 숲을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는지를 밝히는 셈입니다. 세 접근법이 강조하는 바가 다르기에 연구자가 얻게 되는 통찰도 조금씩 다릅니다. 예컨대 하나의 복잡한 정책 이슈를 놓고, 담론 분석은 “이 이슈에 대한 지배적인 언어와 지식의 구조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묻고, 프레이밍 분석은 “다른 행위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르게 정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무슨 갈등이 생기나?”를, 내러티브 분석은 “사람들은 어떤 줄거리로 이 문제를 이야기하며, 그 이야기가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를 물을 것입니다. 서로 질문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보완적입니다. 실제 정책 현장에서는 담론의 구조 속에서 프레임들의 경쟁이 벌어지고, 그 경쟁이 이야기의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이 셋을 함께 고려해야 온전한 그림이 나옵니다. Merlijn van Hulst와 동료 연구자들도 세 접근법을 나란히 비교한 끝에, 이를 대립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인 도구로 보고 각각의 장점을 살려 쓰자고 제안합니다 (van Hulst et al., 2025). 가령 초보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 주제에 가장 맞는 렌즈를 우선 선택하되, 필요하면 다른 접근의 개념도 빌려와 다층적인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가지 접근법만 고집하면 자칫 다른 관점을 놓칠 위험이 있는데, 예를 들어 담론 분석만 하면 개별 행위자의 역동성을 간과할 수 있고, 프레이밍 분석만 하면 더 넓은 역사적 맥락을 놓칠 수 있으며, 내러티브만 보면 언어 구조의 제약을 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판적 정책분석가는 이들 도구를 모두 자신의 연구 도구함에 넣어두고, 분석 대상과 문제의식에 따라 적절히 조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van Hulst et al., 2025).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접근법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정책에 대한 성찰적이고 민주적인 이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정책을 기술적 문제나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기지만, 담론·프레임·내러티브 관점에서 보면 정책은 곧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의 산물입니다. 이 세 가지 렌즈를 통해 정책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당연시되어 온 전제들”을 의심하고, 배제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더 나은 대안을 상상할 가능성을 얻습니다.
예컨대 담론 분석은 어떤 문제가 오랫동안 특정 담론 아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해되어 왔다면, 그 이면에 숨은 권력관계를 드러내어 우리에게 다른 언어로 말할 용기를 줍니다. 프레이밍 분석은 서로 대립하는 집단 간에 프레임 차이를 자각시켜줌으로써, 때로는 갈등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타협점을 찾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분석은 정책결정자들이 숫자 뒤에 가려진 인간의 이야기를 보도록 하여, 정책에 인간적 얼굴을 부여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비판적·해석적 정책분석의 세 가지 접근법은 모두 정책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 즉 권력이 언어로 어떻게 행사되고 정당화되는지를 깨닫고, 더 포용적이고 숙의적인 정책 담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것입니다 (Fischer & Forester, 1993; Hajer & Wagenaar, 2003). 우리가 정책을 둘러싼 담론과 프레임과 이야기에 한층 민감해질 때, 비로써 정책을 보는 새로운 눈과 정치를 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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