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 공공 소유(Deep Public Ownership)
사람들은 공원이나 도로, 학교, 병원 같은 시설과 자원을 "공공재(public property)"라고 부른다. 하지만 "공공"이 정확히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Nili, 2019). 보통 공공재는 개인이나 특정 기업의 소유가 아니라 그냥 "모두의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놀랍게도 정치철학에서 공공재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다.
개인의 재산권이나 사유재산은 자주 논의되지만, 공공재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부족했다(Nili, 2019). 이런 개념이 모호하면 정치 지도자나 권력자들이 공공 자원을 개인적으로 악용할 때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특히 세금을 개인적으로 쓰거나 공적 자산을 자기 것으로 돌리는 일을 비판할 명확한 근거가 없어진다(Nili, 2019).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ili(2019)는 두 가지 기존 모델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첫 번째 모델은 '개인 소유권의 집합(private aggregation model)'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공공재는 원래 개인이 가진 재산이 모여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하지만 이 방식은 개인이 언제든 자기 몫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재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쉽게 말해, 개인들이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철회하면 공공재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Nili, 2019).
두 번째 모델은 '법적 정의 모델'로, 법이 공공재라고 규정하면 그것이 곧 공공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독재자나 권력자가 법을 악용해서 공공재를 자기 것으로 전환할 때 이를 막기 어렵다. 법 자체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이 부패할 경우 공공재를 보호하기 어렵다(Nili, 2019).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Nili(2019)는 '심층 공공 소유(Deep Public Ownership)'라는 모델을 제안한다. 이 모델은 모든 자원이 처음부터 국민 전체, 즉 공공의 소유라고 본다. 개인의 소유권은 국가나 공동체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세금도 국가가 개인에게서 돈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국가가 가진 자원을 개인에게 일부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Nili, 2019).
"심층 공공 소유" 모델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잘 어울릴 수 있다. 즉, 개인의 재산권은 국가나 공동체가 정한 공공의 가치(평등, 정의 등)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만 보호받는다(Nili, 2019). 예를 들어, 한 부동산 사업자가 인종이나 성별을 이유로 특정 고객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면, 국가가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개입할 수 있다. 개인의 재산권은 공동체 전체가 동의한 원칙과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Nili, 2019).
이러한 논의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예를 들어, 주택 시장에서 인종 차별이 발생하면 국가는 이를 공적 자산의 부당한 사용으로 보고 개입할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인종이나 성별 등으로 차별하는 학교 정책에 대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개인과 사적 기관의 재산권은 공동체의 허락 아래에서만 인정받기 때문이다(Nili, 2019).
물론 이 모델이 국가가 개인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할 위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Nili(2019)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 없도록 "사생활권"을 별도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기 집에 누구를 초대할지 결정하는 것 같은 개인적 문제는 국가의 개입 대상이 아니며, 이것은 재산권이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Nili(2019)가 제안한 "심층 공공 소유" 모델은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를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 국가가 언제, 어떻게 개인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모델은 권력자의 공공재 남용을 비판할 강력한 도덕적 근거를 제공하며,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 잡힌 사회적 합의를 만들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Nili, S. (2019). The idea of public property. Ethics, 129(2), 344-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