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를 위한 관리인가?
관리와 조직을 둘러싼 근본 질문들—“누구를 위한 관리인가?”, “현재의 조직운영 방식은 얼마나 정당한가?”—에 답하려는 도전
“관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하라
기업에서건 복지기관에서건, 관리자와 조직이 추구하는 효율과 질서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가치 판단에 기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따져보라
비판적 관리학/경영학(Critical Management Studies)
비판적 공공관리학/행정학(Critical Public Management Studies)
비판적 경영학이 던지는 질문들은 그래서 학계 담장을 넘어 우리 각자의 일터 이야기가 된다. “왜 우리는 이 규칙을 따라야 하지?”, “이 목표는 누구의 가치를 반영한 것일까?”, “좀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적인 해결책은 없을까?”와 같은 물음들은 비단 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비판적 경영학과 공공관리학의 담론은 이러한 물음을 더 체계적으로 생각해볼 언어와 관점을 제공해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일상의 직장이나 서비스 기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작은 실천적 변화의 가능성까지 상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반골 학자들의 탁상공론”처럼 보였던 논쟁들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노동의 질, 복지의 방향, 리더십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비판적 문헌 여행은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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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관리”와 “경영”은 효율과 성과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과 일상 생활까지, 전문적인 관리기법과 관리자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주의(managerialism)**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Parker, 2002). 예컨대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래버는 현대 조직에서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이 넘쳐나는 현상을 지적하며, 과도한 관리로 인해 오히려 “헛된 일자리”만 양산된다고 비판했다 (Graeber, 2018). 실제로 지나친 계획, 보고, 성과지표 관리는 일터를 비효율과 혼란에 빠뜨리고 업무의 의미감을 훼손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서도 무능한 상사나 관료제를 풍자한 코미디가 인기를 끄는 등, “관리”에 대한 회의는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학계에서도 관리와 조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이를 가리켜 **비판적 경영학(Critical Management Studies, CMS)**이라고 부른다.
비판적 경영학은 말 그대로 경영과 조직 현상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학 내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부상했다. 이 접근은 기존의 경영 관행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하거나 정의로운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Adler et al., 2007). 다시 말해, 개별 관리자나 특정 기업의 실패를 탓하기보다, 관리자와 기업이 속한 더 넓은 사회·경제 시스템 자체가 불평등과 환경 파괴를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것이다 (Adler et al., 2007). 예를 들어 한 연구는 “경영학은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않는 연구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경영학 연구가 반드시 기업 성과 향상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환기한다 (Fournier & Grey, 2000). 이러한 관점은 경영 담론 자체에 내재된 성과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CMS에서는 “비공식적(非功利的) 연구 지향” 또는 **반(反)성과주의(non-performativity)**라고 부른다. 요컨대 비판적 경영학자들은 “이론이 실용적으로 쓸모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경영 실천의 효율성이나 성과개선을 돕는 데 연연하지 않고 조직과 관리 현상의 숨겨진 가정들을 드러내는 일에 주력한다 (Fournier & Grey, 2000).
비판적 경영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탈자연화(denaturalization)”**이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리 관행이나 조직의 질서가 사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임을 폭로하고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다 (Fournier & Grey, 2000). 예를 들어 오늘날 기업에서 흔히 시행되는 성과평가 제도나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도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와 권력관계가 반영된 산물일 수 있다. CMS 연구자들은 이러한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음”**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관리자들이 쓰는 언어와 조직의 규칙, 직장 문화에 내재한 권력과 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힌다. 또한 **성찰성(reflexivity)**도 핵심 원칙으로 거론되는데, 이는 연구자 스스로도 자신의 연구 과정과 관점에 비판적으로 질문하며 편견을 인식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적 태도를 말한다 (Fournier & Grey, 2000). 이처럼 CMS는 비판적 이론(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전통과 탈구조주의(푸코, 데리다 등의 영향)의 사상을 접목하여, 경영 현상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비판적 경영학의 탄생과 전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략 **두세 차례의 “물결”**로 구분된다. 첫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노동현장 연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해리 브레이버맨의 저서 『노동과 독점자본』(Braverman, 1974)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과정 이론은 산업현장에서 관리자가 어떻게 노동을 통제하고 노동자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시기의 연구들은 작업장 내 착취와 통제에 초점을 맞추었고, 경영을 노동계급 통제의 수단으로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이러한 흐름을 모태로 1980년대에 “비판적 경영학”이라는 명칭이 점차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노동과정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폭넓게 조직 내 권력관계를 탐구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두 번째 물결이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과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이론이 결합되어, 조직과 경영을 문화적·담론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연구들이 활발해졌다 (Alvesson & Willmott, 1992). 예컨대 이전에는 주로 물질적 착취(임금 노동의 착취 등)에 관심을 두었다면, 1990년대의 연구자들은 주체성과 정체성에 주목하여 “관리담론이 어떻게 구성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배하는가”, “조직문화와 언어가 권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조직 안에서 통용되는 **“관리자다움”**이나 **“이상적인 직원상”**이 실은 담론적 구성물이며, 이것이 개인의 행동과 사고를 미세하게 통제한다는 통찰이 나왔다. 또한 푸코의 영향을 받아 권력의 미시적 작용(예: 팀 회의에서의 언어, 성과관리 시스템 등)이 어떻게 사람들을 규율하는지 분석하거나, 포스트모던 관점에서 조직의 경계와 질서가 얼마나 유동적인지 탐구하는 등, 경영학 연구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다.
2000년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뚜렷한 “제3의 물결”로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전보다 연구주제가 한층 다변화되고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평가된다 (Spicer & Alvesson, 2024). 관리와 조직에 대한 비판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식민주의, 인종주의, 성차별, 신자유주의 정책, 기업의 환경파괴 등 광범위한 주제로 퍼져나갔다. 실제로 최근 10~20년간 CMS 연구들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주제 영역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대학과 학술기관 자체에 대한 비판(학계 비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대안 조직 모색, 조직 내 통제와 노동자의 저항 연구, 담론 분석(조직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의미체계 연구), 푸코 이론을 응용한 통치성 연구, 젠더와 조직(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권력관계 등), 정체성(노동자와 관리자 정체성 형성에 대한 연구),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지속, 탈식민주의 관점의 경영비판,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접근 등 (Spicer & Alvesson, 2024). 물론 이 주제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겹쳐지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CMS는 이제 조직과 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광범위한 지적 운동이 되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주제의 확장이 관리와 조직 자체에 대한 관심을 흐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관리”라는 주제를 깊이 다루기보다는, 관리 현상을 더 큰 사회구조—이를테면 신자유주의나 세계 자본주의—의 한 부수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논의를 전개하기도 한다 (du Gay, 2020). 이는 관리현상을 보다 거시적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비판의 초점이 분산되어 정작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구체적 관리 실천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비판적 경영학은 이러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많은 통찰을 제공해왔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 자기 성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André Spicer와 Mats Alvesson 같은 대표적인 학자들은 최근 CMS의 행보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Spicer & Alvesson, 2024). 그들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비판적 경영학 연구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의 지적”**이라는 **일차원적 비판(one-dimensional critique)**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까발기는 데에는 열심이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건설적인 대안 제시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는 비판적 경영학이 초기에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판에 박힌 비판으로 예측 가능해지고 활력을 잃어가는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Spicer & Alvesson, 2024).
Spicer와 Alvesson이 꼽은 대표적인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첫째는 이들이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적 경향이라고 부른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주의란 정치적 독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권위에 대한 맹목을 뜻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기보다는 유명 이론가(예를 들어 푸코, 들뢰즈, 지젝 등)나 유행하는 개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논문의 분석보다 특정 거장의 이론적 틀을 적용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사례 자체의 생생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론의 권위만 남게 된다. 이러한 연구에서는 대체로 글의 결론이 “역시 ~의 이론대로 나타났다” 식으로 거장 이론의 재확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특정 이론가 대신 유행 개념이 권위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담론(discourse)”, “탈식민주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 “제도(institution)” 같은 용어들을 큰 맥락 없이 반복 사용하며, 개념의 명료한 정의나 실제 맥락에 대한 새로운 통찰 없이 추상적 주장으로 흐르는 연구들도 있다. 요컨대, 비판을 한다면서 정작 자신이 받아들인 이론 권위에는 비판적이지 못한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Spicer와 Alvesson은 CMS 연구자들이 외부의 비판이론들을 수입해서 적용하는 데 치중할 뿐, 자기 분야에서 참신한 이론이나 개념을 역으로 발전시켜 수출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꼬집는다. 이는 곧 CMS가 학제 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소통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실제로 CMS 연구자들의 작업이 경영학 바깥의 사회학, 정치학 등 타 분야에까지 파장을 일으키는 사례는 많지 않고, 학계 밖 실무나 정책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도 미미하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Spicer & Alvesson, 2024).
둘째 문제는 **“모호한 난해함(obscurantism)”**이다. 많은 비판적 경영학 논문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현학적인 문체로 쓰여 있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물론 학술적 글쓰기 자체가 어느 정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CMS 분야에서는 유독 복잡한 조어(造語)와 길고 구조가 어긋난 문장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단한 현상도 일부러 어렵고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는 식이다. 긴 문장과 추상어, 방대한 참고문헌 나열 등으로 전문가 커뮤니티 밖 독자들은 접근하기 힘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글쓰기 스타일이 마치 지적 엄격함의 증표인 양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Tourish, 2019a). 예를 들어 “담론”, “관리성(governmentality)”, “저항(resistance)” 같은 용어들은 CMS 연구자들이 애호하는 개념이지만, 쓰는 사람마다 가리키는 바가 애매모호하여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결국 이러한 난해한 용어들의 남용은 실제로는 별다른 새 아이디어가 없음에도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가짜 기여”**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Alvesson & Kärreman, 2011). Spicer와 Alvesson은 이러한 모호한 문체와 전문 jargon의 범람이 오히려 비판적 논의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학계 내부의 좁은 담론장에 갇히게 만든다고 우려한다.
셋째로 지적된 문제는 **“틀에 박힌(radicalism의) 급진성”**이다 (Spicer & Alvesson, 2024). 이는 언뜻 보기에 정치적으로 과격하고 비판적인 듯하지만, 실제 연구 전개 방식은 상투적인 공식을 따르는 경향을 말한다. 많은 CMS 연구가 학술지 논문의 정형화된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중간중간 “이 연구는 권력을 탐구한다” “저항을 조명한다” “해방을 지향한다” 같은 급진적 수사만 덧붙이는 식이라는 비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가 **“노동자들의 저항”**을 다룬다고 하면, 이는 그 자체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주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연구 수행은 기존의 틀—이론 검토, 인터뷰 몇 건, 익명화된 인용구 제시, 적당한 자기반성 섹션, 그리고 큰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 결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 내용은 체제순응적 형식을 따르면서 표현만 급진적으로 꾸미는 태도를 Spicer와 Alvesson은 비판한다. 물론 학술연구의 형식을 따른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통찰을 주기 위해 때로는 형식의 파격도 필요할 텐데, CMS 연구들이 점잖고 안전한 형식에 안주하다 보니 내용의 급진성도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인터뷰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례들도 학술지의 제한된 지면과 엄격한 구조 속에서 잘게 나열될 뿐, 독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나 맥락으로 발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연구자들은 논문의 서두와 결론에서 “이 연구는 권력관계를 폭로하고 저항과 해방을 논의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본문에서는 크게 새롭지 않은 인터뷰 조각 몇 개를 제시하고 끝나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내용과 형식의 상투화는 비판적 경영학 연구의 급진적 의제를 무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넷째, **“판에 박힌 악역 찾기(usual-suspectism)”**라는 문제가 있다. 이는 비판적 연구자들이 너무 쉽게 늘 똑같은 구조적 악당들을 지목하는 경향을 말한다 (Spicer & Alvesson, 2024). 즉 사회 문제의 원흉으로 항상 자본주의, 관리자본주의(managerialism), 가부장제,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같은 단골손님만 소환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 구조들이 문제의 근원인 경우가 많겠지만, 항상 비슷한 설명틀을 가져다 대다 보면 도덕극처럼 양상이 단순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급진적 글에서는 “관리자는 모두 억압자, 노동자는 항상 피해자/저항자”라는 일면적인 구도를 전제한다. 모든 통제 시스템은 “신자유주의의 발현”으로, 모든 남성 관리자는 가부장적 억압자이고 여성은 피해자인 양 그려지기도 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언제나 노동자가 고통받는 피해자라는 식의 도식적 서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설정은 비판적 경영학의 도덕적 에너지를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문제는 현실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미묘하고 복잡한 현상을 포착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권력관계가 늘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때가 많다. 때로는 직원이 상사 위에 군림하기도 하고 (Ekman, 2014), 일거리 부족이 과로보다 큰 고민이 되기도 하며 (Graeber, 2018), 규제적 관료제가 오히려 현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지켜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상투적인 비판 서사에 빠지면 이러한 예외적이거나 복합적인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Spicer와 Alvesson은 CMS가 매번 같은 “악당”을 호명하며 예측 가능한 결론만 반복한다면 독자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지 못하고, 자기확증적 담론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다섯 번째로 꼽히는 문제는 “피상적 실증주의(empirical light-touchism)”, 즉 경험적 연구의 빈약함이다. 비판적 경영학 연구 중에는 개념적 이론 논의나 철학적 비판에 집중하느라 실증 자료(현장의 데이터) 활용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물론 철학적 논의도 중요하지만, 현실 조직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풍부한 조사 없이 이론적 비판만 거듭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어차피 현실이라 믿는 것 자체가 구성된 허상”**이라며 경험 연구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극단적인 사회구성주의 입장에서 “객관적 진실 추구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주장하며, 실제 사례 조사를 멀리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판적 논의를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담론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한편 자료를 사용하더라도 종종 피상적으로 활용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들은 현대 조직현상을 비판한다면서 고전 영화 줄거리나 문학 작품에 기대어 논지를 펴기도 하고 (Cabantous et al., 2016), 실제 현실 데이터를 통한 분석은 부족한 경우가 있다. 또는 몇몇 인터뷰나 온라인 게시글 등 단편적인 자료만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 몇 명의 직원들과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한 뒤, 그들이 스스로 “나는 조직에 저항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을 깊이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저항의 증거로 삼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Bristow et al., 2017). 또는 학계 웹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라온 하소연 몇 건을 가져와 조직 내 억압의 단면을 보여주는 주요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Smith & Ulus, 2020). 물론 이러한 질적 자료 조각들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보다 두텁고 다각적인 자료를 통해 풍부하게 맥락을 살핀다면 더 설득력 있는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Spicer와 Alvesson은 CMS 연구자들이 이론적 논쟁에는 치열하면서도, 정작 현장의 상세한 실태를 파고드는 노력에는 인색해진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문제점—이론 권위에 기대는 경향, 난해한 표현, 상투적 급진성, 도식적 비판 대상, 빈약한 실증근거—때문에, 비판적 경영학 분야가 정체기에 빠졌다는 것이 Spicer와 Alvesson의 진단이다. 심지어 그들은 현재 CMS가 활력을 잃어 “쇠퇴 국면”에 있으며, 다시 재생(rejuvenation)을 모색하거나 아니면 “임종 돌봄(palliative measures)”이라도 고민해야 할 지경이라고까지 말한다 (Spicer & Alvesson, 2024). 이들은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소개하는데, 자신들이 어느 비판경영학 학술지의 편집위원들에게 최근 5~10년 사이 정말 뛰어난 공헌을 한 연구를 추천해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이 매우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한 명은 “솔직히 그런 건 없다”고 답했고, 나머지 몇 명도 자기 자신의 논문 몇 편을 슬그머니 추천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Spicer & Alvesson, 2024). 물론 이 일화는 다소 극단적 예일 수 있지만, 그만큼 CMS 내부에서도 자기반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Spicer와 Alvesson은 CMS의 향후 발전을 위해서는 더 야심 차고 상상력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진부한 공식에서 벗어나 예상 밖의 주제와 방법을 시도해야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연구자가 관행을 깨고 모험적인 연구를 하려 하면 학계의 기존 “문지기”들이나 동료들로부터 저항을 받을 수도 있고, 오늘날 실적 위주의 대학 풍토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위험부담이 큰 연구를 수행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Spicer & Alvesson,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와 조직을 둘러싼 근본 질문들—“누구를 위한 관리인가?”, “현재의 조직운영 방식은 얼마나 정당한가?”—에 답하려는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Spicer와 Alvesson이 제기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CMS 분야만이 아니라 경영학, 조직연구 더 나아가 사회과학 일반에도 상당 부분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Alvesson et al., 2017). 그들은 자신들의 비판이 모든 연구를 싸잡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며, 자신들 역시 일부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실제로 그들이 지적한 권위 의존이나 관행 답습, 한정된 실증자료의 활용 문제 등은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는, 현대 학술 연구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비판적 경영학 내부에서는 이러한 자기비판과 위기감 속에서 향후 진로를 둘러싼 논쟁도 활발하다. 특히 **“비판은 현실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견해차가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비판적 연구자들도 현실 경영 실천에 개입하여 조금이라도 조직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진적 개혁론을 제시한다 (Wickert & Schaefer, 2015). 이들은 CMS가 아무리 훌륭한 비판이라도 현실과 유리되어 탑 속의 담론으로만 남는다면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경영자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들의 관행을 좀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이끌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건설적 비판”**을 추구하자고 제안한다. 이를테면 노동자에게 더 발언권을 주는 관리기법, 덜 위계적인 조직문화 만들기, 성과평가 대신 복지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인사제도 등 실천적인 변화 전략까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때때로 **“비판적 수행성(critical performativity)”**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Spicer et al., 2009).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적 수행성”이란 CMS 초기 원칙 중 하나였던 비공리적 태도와 상반되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비판 이론을 실제로 수행한다(행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연구자가 현장에 들어가 경영자나 정책입안자와 대화하고 설득하여, 자신의 비판적 통찰을 현실 변화로 이어지게끔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Wickert와 Schaefer(2015)는 이러한 입장에서 **“진보적 수행성(progressive 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는 비판적 학자들이 언어와 담론을 통해 현실에 점진적 진보를 만들어내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근본적 급진파들은 이러한 접근을 타협으로 간주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이들의 입장은 “관리라는 체제 자체가 문제이므로, 이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기업 중심적·이윤 중심적 관리 패러다임을 부분 수정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관리주의와 자본주의 자체를 근본에서 거부하고 대안 조직 모델을 실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leming & Banerjee, 2016; Parker, 2021). 예를 들어 시장 경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협동조합, 공동체자치에 기반한 조직, 탈성장(degrowth) 경제 등 기존 시스템 밖에서의 실험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오히려 CMS가 점점 현실 참여 쪽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경계한다. 비판적 연구자들이 현실 조직의 개선에 협력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존 질서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하게 되고, 체제 내 관리 컨설턴트처럼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관리자들과 “협력”하기보다는, 보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이나 대안 네트워크 편에 서서 외부로부터 관리 체제를 전복하거나 탈주하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정리하면, 비판적 경영학계 내에서는 온건 개혁 vs. 체제 전복이라는 두 노선 사이에서 긴장이 존재한다. 전자가 **“더 나은 관리”**를 꿈꾼다면, 후자는 **“관리 없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고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CMS의 지속적인 쟁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다른 견해들이 부딪치는 자체가, 비판적 경영학이라는 분야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진지하게 숙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주로 민간 기업 중심의 관리 비판 담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이러한 비판적 시각이 공공부문의 관리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관리주의의 영향력은 기업 경영뿐 아니라 정부와 공공서비스에도 깊숙이 미쳤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NPM)”**라 불리는 개혁이 도입되어, 공공서비스 분야에 시장 논리와 경영기법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결과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 영역에서 성과 측정, 경제성, 경쟁, 민영화와 같은 키워드가 중심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전문직 전문가들의 자율이 중시되던 공공서비스 분야에 경영 논리가 침투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사회복지 조직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숙련된 사회복지사가 전문적 판단에 따라 클라이언트를 돕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관리자들이 정한 성과 지표(얼마나 많은 사례를 처리했는가, 예산을 얼마나 절감했는가 등)에 따라 일하는 양상이 강화된 것이다 (Lawler & Bilson, 2009). 게다가 예산 삭감 등의 압박까지 더해져, 일선 사회복지 관리자는 두 가지 상충하는 요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정량적 성과와 효율”**을 달성하라는 관료적·경영적 요구에 복종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복지 본연의 **“사회정의적 사명”**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Timor-Shlevin, 2025).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과연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도 비판적 관리가 가능할까?” 즉, 사회복지 조직의 관리자들이 주어진 신자유주의적 규칙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사회정의와 인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관리 실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Timor-Shlevin, 2025).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회복지학자 Shachar Timor-Shlevin은 최근 논문에서 **“비판적 공공관리학(Critical Public Management Studies)”**이라는 연구의제(research agenda)를 제안하며, 사회복지 분야의 관리에 비판적 관점을 도입할 가능성과 의미를 탐색했다 (Timor-Shlevin, 2025). Timor-Shlevin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사회복지 영역에 만연한 시장중심 관리 풍토는 사회복지 실천의 핵심 가치인 사회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해왔다. 예컨대 복지 기관에서 예산 절감과 효율만을 강조하면, 가장 취약한 시민들을 창의적으로 돕는 일은 뒷전이 되기 쉽다.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추가 시간을 쓰고 싶어도 상부에서는 “규정된 시간 이상은 안 된다”거나 “비용 대비 효용이 낮다”는 식으로 제동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회복지 관리자들과 실무자들은 갈등 속에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Timor-Shlevin, 2025). 겉으론 상부 지시에 따르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현장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창의적으로 규칙을 우회하는 은밀한 저항을 펼치기도 한다 (Thomas & Davies, 2005; Strier & Breshtling, 2016). 예를 들어 영국 공공부문 관리자를 연구한 Thomas와 Davies(2005)는 관리자들이 신공공관리적 변화에 대응하는 미시정치를 분석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정책을 실행하면서도 언어와 정체성 수준에서 조용한 반발과 왜곡이 일어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스라엘 사회복지 현장을 연구한 Strier와 Breshtling(2016) 역시 사회복지사들이 관리적 통제를 받는 가운데서도 **“대항 실천(counter-practice)”**이라 불리는 창의적 방법으로 자신의 전문적 양심을 지켜나가는 사례들을 보고했다. 이를테면 겉으로는 공식 지침을 따르면서 이면에서는 동료들과 협력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추가 지원을 해주거나, 서류에는 드러나지 않게 인도적 융통성을 발휘하는 등의 행동이다. 이런 사례들은 비록 개별적이고 분산된 저항일지라도, 공공서비스 조직 내에서 비판적 실천의 공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Timor-Shlevin이 보기에,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현장 사회복지사(프론트라인)의 저항과 실천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관리자 층위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비판적 학자들은 “관리자는 본질적으로 경제적·조직적 합리성에 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적 관리자’라는 개념은 모순”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Evans, 2016; Lawler, 2013). 사실 전통적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비판적 실천”**이라고 하면, 일선 사회복지사의 실천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리자는 대체로 체제의 일부로 간주되어, 비판적 사회복지 실천은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와 직접 호흡하는 실무자들의 몫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Timor-Shlevin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 관리자의 역할도 사회정의를 증진하는 데 중요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필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Timor-Shlevin, 2025). 왜냐하면 사회복지 조직의 중간관리자들은 한편으로는 기관의 일원으로서 정책을 집행하지만, 동시에 사회복지 전문직 출신으로서 현장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클라이언트와 사회를 향한 윤리적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이중적 위치 덕분에, 관리자들은 위로는 정책결정자와 소통하고 아래로는 현장과 연결되는 교량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있다 (Timor-Shlevin, 2025). 따라서 이들을 비판적 주체로 인식하고 역량을 북돋운다면, 사회복지 분야에서 관리와 사회정의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Timor-Shlevin(2025)은 비판적 공공관리 연구가 나아갈 수 있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수준(level)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로컬(managerial practice)의 수준, 즉 개별 사회복지 조직 내부에서 관리자가 일상적인 운영을 사회정의 가치에 맞게 꾸려나가는 실천이다. 예를 들어 관리자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클라이언트 편에 서기”**를 조직의 최우선 미션으로 내세우고 (Krumer-Nevo, 2020), 이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방식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주의, 반억압적 실천, 빈곤인지 감수성 등 사회복지의 비판이론들을 관리자 교육과정과 의사결정에 도입할 수도 있다. 관리자가 회의를 진행할 때도 단순히 실적을 점검하는 대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직원들이 비판적으로 성찰할 시간을 갖고 있는지 등을 중시할 수 있다. 상사와 직원 간 관계에서도 전통적인 위계 질서만 강조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학습의 문화로 바꾸려는 노력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조직 내부의 비판적 관리 실천은 현재까지 그 사례가 드물고 연구도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Timor-Shlevin은 이스라엘의 “빈곤인지 사회복지(poverty-aware social work)” 프로그램을 흥미로운 사례로 언급한다 (Krumer-Nevo, 2022). 이 사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빈곤층 복지 서비스에 비판적 사회복지 이론을 대거 반영하여, 일선 실천 뿐 아니라 기관 운영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예컨대 빈곤 문제를 개인 책임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보고 클라이언트의 존엄성과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원칙을, 관리자 교육부터 현장 업무지침까지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 규모로 실현되면, 관리자가 예산이나 규정을 이유로 사회정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이 존재함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적 관리 실천의 효과나具 발전 가능성에 대한 학술 연구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기에 (Timor-Shlevin, 2021a), 앞으로 더 많은 사례 발굴과 평가 연구가 필요하다.
두 번째 수준은 사회적(managerial practice의) 수준, 즉 개별 조직을 넘어 사회정책과 구조적 변화에 관리자가 기여하는 실천이다. 사회복지 기관의 관리자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시적 현장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거시적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Timor-Shlevin, 2025). 예를 들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클라이언트들의 고충이나 제도적 모순을 파악한 관리자가 이를 정책결정자나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정책 개선을 촉구할 수 있다. 실제로 사회복지 분야에는 **“정책 실천(policy practice)”**이라는 전통이 있어서, 일선 사회복지사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법이나 제도 개선 운동에 참여해 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Timor-Shlevin은 관리자들이 이러한 정책 실천의 주체로 나서는 경우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관리자는 윗선의 지시에 따르는 “행정가”로만 여겨졌지,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옹호자로 상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비판적 공공관리의 관점이 확산되면, 관리자들도 지역사회 연대 활동이나 정책 옹호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제도 변화를 위한 중간 지도자(middle-level change agent)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복지센터의 소장이 지역의 다른 기관들과 연합해 아동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고 정부에 제출한다거나, 현장에서 느낀 복지제도의 허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언론과 협력하는 모습 등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역할 전환은 관리자의 위험 부담을 수반할 수 있고, 현재 구조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imor-Shlevin은 일부 사회복지 조직관리자들이 자신의 권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 무대로 끌어올리는 시도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관리자의 옹호 활동은 개별 사례 해결을 넘어, 제도 자체를 더 정의롭게 바꾸는 데 기여함으로써 사회복지의 본래 윤리적 사명을 구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거시적인 수준은 “관리적 합리성(managerial rationality)의 재구성”**이다. 이는 단순히 실천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관리 패러다임 자체를 이론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도전이다 (Timor-Shlevin, 2025). 현재의 관리자들은 대개 경영학교육이나 관료제 전통 속에서 효율, 통제, 예측가능성을 최고의 가치로 배운다. 즉, 도구적 합리성이 관리담론의 핵심을 이룬다.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누구를 위한 통제인가?”와 같은 물음 말이다. 예컨데, 사회복지 조직에서 예산 절감이라는 목표가 겉보기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비용(빈곤 심화, 범죄 증가 등)이 발생한다면 진정한 합리성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관리 합리성을 재정의하는 이론 작업이 요구된다. Timor-Shlevin은 사회복지의 핵심 가치인 **“개인적 고통과 사회 구조의 연결”**이라는 개념을 관리담론에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회복지 이론에서는 개인이 겪는 고통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불의의 반영이라고 본다 (Krumer-Nevo & Benjamin, 2010). 그렇다면 관리의 성공 여부도 단순히 내부 지표상의 성과가 아니라, 얼마나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정의를 증진했는가로 재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리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회 정의 지향의 질문들을 상시적으로 던지는 문화, 예컨대 “이 조치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금의 정책이 불평등을 고착화하지 않는가?” 등을 묻는 관행이 자리잡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관리자 교육, 조직 문화, 성과평가 체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수반하는 만큼, 학계와 실무계의 장기적인 협력이 필요한 과제다. 비판적 공공관리학은 이러한 거시적 질문을 연구 의제로 삼음으로써, 기존 비판적 경영학(CMS)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공익과 정의의 관점에서 본 관리”**라는 근본 물음에 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imor-Shlevin, 2025).
Timor-Shlevin의 이러한 제안은 흥미롭게도 앞서 살펴본 CMS 내부 비판에 대한 응답처럼도 읽힌다. Spicer와 Alvesson 등이 CMS를 향해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다”거나 “현실에 영향이 없다”고 지적했던 부분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 공공서비스 분야에 비판적 관리 모델을 실제로 적용해보면 학계의 비판이 현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답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Spicer & Alvesson, 2024; Timor-Shlevin, 2025). 사실 Timor-Shlevin은 논문에서 Spicer와 Alvesson(2024)을 직접 인용하면서, 많은 CMS 학자들이 CMS의 한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적 논쟁에 그친다”**고 평해왔다고 언급한다. 예컨대 CMS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할 뿐 **“어떻게 고칠 것인가”**는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 (Wickert & Schaefer, 2015), 이윤 추구가 본질인 민간조직을 비판하는 이론이 실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회의 등이 그것이다 (Spicer & Alvesson, 2024). Timor-Shlevin은 이러한 회의적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공공부문, 특히 사회복지 영역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회복지 조직은 애초에 **“사회적 약자 지원”**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존재하는 만큼, 이 분야에서조차 비판 이론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복지 분야야말로 관리주의와 비판적 가치 간의 갈등이 첨예하기 때문에, **CMS의 문제의식을 시험해볼 최적의 장(field)**이라는 주장이다 (Timor-Shlevin, 2025). 가령 기업 경영에서는 이윤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 비판적 실천이 구현되기 어렵지만, 사회복지에서는 명분상 모두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동의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두고 경합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담론이 설득력을 얻을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그리고 만약 이 영역에서 비판적 관리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잡는다면, 이는 CMS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질문—“더 나은 조직운영은 가능한가? 비판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비전은 이상에 가깝고, 현실의 벽도 존재한다. 비판적 공공관리의 관점에서 본 조직혁신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다. 관리자가 사회정의 구현자 역할을 하려 할 때, 위계적인 관료제 구조나 정치적 압력에 부딪힐 수 있다. 또한 관리자 자신이 내면화한 관리주의를 극복하는 일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비판적 담론이 **“민간 기업 경영 비판”**을 넘어서 **“공공서비스 관리의 자기혁신”**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CMS와 인접 학계의 학술적 상호작용을 통해 가능해졌다. 사회복지학, 공공행정학 등에서 나오는 비판적 연구들이 CMS의 통찰을 받아들이고 변용함으로써, 학제 간 시너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복지 분야 연구자들은 비판적 경영학의 개념들을 활용해 현상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보다 실천적인 대안”을 강조함으로써 CMS에 건설적 자극을 주고 있다.
정리하면, **비판적 경영학(CMS)**과 **비판적 공공관리학(CPMS)**은 서로 닮은 듯 다른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통한다. 둘 다 “관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기업에서건 복지기관에서건, 관리자와 조직이 추구하는 효율과 질서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가치 판단에 기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이 정의롭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 못하다고 판단된다면, 담론을 바꾸고 실천을 바꾸는 노력에 동참하라고 권한다. 이 여정에는 날카로운 이론적 비판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비판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용기와 상상력도 요구된다. 비판적 경영학은 이론적 급진성을 무기로 한 시대의 문제제기자였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해 실제 조직변화를 만드는 운동가로서의 역할까지 요청받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사회복지 조직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예컨대 어떤 복지센터 관리자는 규정을 내세우는 대신 직원들과 토론을 거쳐 인간다운 서비스의 기준을 함께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상부에 끊임없이 건의한다. 또 다른 이는 지역사회 모임에 나가 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적 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이런 노력들은 아직 미약하지만, 관리라는 행위가 반드시 관료제의 톱니바퀴 노릇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비판과 변혁의 서사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모두는 조직의 관리 또는 피관리의 경험을 갖고 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학교 교사이든, 누구나 관리자와 피관리자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비판적 경영학이 던지는 질문들은 그래서 학계 담장을 넘어 우리 각자의 일터 이야기가 된다. “왜 우리는 이 규칙을 따라야 하지?”, “이 목표는 누구의 가치를 반영한 것일까?”, “좀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적인 해결책은 없을까?”와 같은 물음들은 비단 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비판적 경영학과 공공관리학의 담론은 이러한 물음을 더 체계적으로 생각해볼 언어와 관점을 제공해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일상의 직장이나 서비스 기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작은 실천적 변화의 가능성까지 상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반골 학자들의 탁상공론”처럼 보였던 논쟁들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노동의 질, 복지의 방향, 리더십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비판적 문헌 여행은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관리인가?” 그리고 “다른 방식의 관리도 가능하지 않은가?” 비판적 경영학과 비판적 공공관리학은 바로 이 두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나온 풍부한 논의와 사례들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조직을 꿈꾸는 데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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