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과학적 합의가 아니라 ‘수렴된 증거’


오늘날 세계는 정치적 불안정과 지정학적 갈등, 그리고 사회적 불만의 급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 과학의 원칙과 연구 과정, 그리고 그 결과마저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과학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주요한 수단 중 하나는, 전통적 언론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무수한 왜곡 정보들이다. 이 가운데 대중의 혼란을 부추기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과학적 합의(scientific consensus)’다.


과학자들은 이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크다. 많은 사람들은 ‘합의’라는 말을 들으면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떤 회의나 투표를 통해 의견 일치를 이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말하는 ‘합의’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적이고 다양한 연구들이 같은 방향으로 수렴함으로써 축적된 지식의 결과를 뜻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론과 데이터가 동일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곧 ‘수렴된 증거(convergent evidence)’를 의미한다 (Jamieson, 2023).


커뮤니케이션 학자 캐슬린 홀 제이미슨(Kathleen Hall Jamieson)은 과학자들이 이제 ‘합의’라는 표현을 버리고 ‘수렴된 증거’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합의가 존재한다’는 표현은 과학의 비판과 수정이라는 핵심 규범을 무디게 만든다. 반면 ‘수렴된 증거’라는 표현은 지식이 어떻게 다각도로 구축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과학의 지속적인 검증 가능성을 드러낸다”(Jamieson, 2023).


이는 과학의 본질과도 일치한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열려 있는 체계다. 새로운 증거가 기존의 설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지 반대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에 축적된 증거들과 새롭게 제시된 증거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통합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 과정이 수반될 때 비로소 기존의 과학적 설명을 대체할 수 있다 (Oreskes, 2019). 따라서 과학을 단순한 ‘권위’로 이해하는 태도는 오히려 그 비판성과 자기수정을 막는 결과를 낳는다.


MMR 백신(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과 자폐증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수많은 독립적인 연구가 이 주장을 반복적으로 반박했고, 이로부터 형성된 ‘수렴된 증거’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Taylor et al., 2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에 대한 또 다른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반대에 직면했으며, 상원 보건위원회 위원장인 빌 캐시디조차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CDC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조차도 자폐증 진단율이 증가한 주요 원인이 백신이 아니라, 보다 정교해진 진단 기술과 인식의 향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CDC, 2024). 물론 과학은 언제나 추가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수많은 연구들이 동일한 결론을 반복해서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NIH 국장 제이 바타차리아 역시 이 사안을 “해결된 과학적 질문”이라고 명확히 말한 바 있다.


한편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23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과학자들이 과학 관련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수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과학자들이 “정책에 개입하지 말고 과학적 사실 수립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Funk et al., 2023). 팬데믹 당시 일부 과학자들의 강한 의견 표출은 이런 불신을 더 악화시켰다. 2024년 미국 대선 결과는 이와 같은 정서가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과학자의 의견과 과학적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고, 과학적 합의라는 개념을 ‘수렴된 증거’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설명함으로써, 과학이 왜 여전히 신뢰할 수 있고 중요한 지식의 원천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과학은 권위가 아니라 방법론이고, 권위주의가 아니라 검증과 재검토의 체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024). Autism Spectrum Disorder Surveillance Report.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Funk, C., Tyson, A., & Kennedy, B. (2023). Trust in scientists and science-related information. Pew Research Center. https://www.pewresearch.org


Jamieson, K. H. (2023). Personal communication as cited in discussion on scientific consensus and convergent evidence.


Oreskes, N. (2019). Why Trust Sci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Taylor, L. E., Swerdfeger, A. L., & Eslick, G. D. (2014). Vaccines are not associated with autism: An evidence-based meta-analysis of case-control and cohort studies. Vaccine, 32(29), 3623–3629. https://doi.org/10.1016/j.vaccine.2014.04.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