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은 정치다: 권력을 넘어 삶을 바꾸는 실천


우리는 흔히 정치를 정부의 영역으로만 생각한다. 투표를 하고, 국회의원을 뽑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 말이다. 하지만 정말 정치란 그게 전부일까? 


미국 미시간대학교 철학자 제이슨 리 바이어스(Jason Lee Byas)는 다르게 말한다. 그는 “정치는 반드시 국가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창업이 바로 중요한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Byas, 2025).


그가 말하는 정치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모든 시도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문제에 맞서는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차별을 줄이는 비즈니스를 시작한다면—그것 역시 정치라는 것이다. 단지 투표소가 아니라, 카페, 웹사이트, 사회적 기업, 혹은 스타트업의 사무실에서도 정치는 이뤄진다.


바이어스는 정치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정책 중심 프레임워크(Policy Framework)”라고 부른다. 이 시각에서는 오직 국가만이 정치를 실행하는 주체로 여겨진다. 반면 그는 “방법론적 아나키즘(Methodological Anarchism)”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며, 국가 이외의 다양한 사회 행위자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정치의 주체는 반드시 정부일 필요가 없으며, 평범한 시민도 새로운 규범과 제도를 실천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창업이 등장한다. 창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일까? 


바이어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두 경제학자, 이스라엘 커즈너(Israel Kirzner)와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이론을 인용하며, 창업은 기존 질서를 읽고 변화시키는 행위라고 본다. 커즈너에 따르면, 기업가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기회를 '눈치채는(alertness)'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틈새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균형을 회복하는 존재다 (Kirzner, 1973). 반면 슘페터는 기업가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주체로 본다. 기존의 시스템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는 역할이다 (Schumpeter, 1942). 


바이어스는 이 두 관점을 조화시켜, 창업이 사회 질서를 바꾸는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실제 사례로 들어가 보자. 20세기 초 미국에는 국가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때 흑인과 이민자, 노동자들은 스스로 ‘상호부조조합(mutual aid societies)’을 만들었다. 이 조직들은 구성원이 낸 회비로 의료비, 장례비, 실업 수당을 지원했다. 1920년 당시 미국 성인 인구의 약 30%가 이런 조직의 회원이었다(Beito, 2000).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공동체 기반의 사회안전망이자,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시민들이 직접 정의를 구현한 창업적 정치였다.


또 다른 예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우회로’다. 미국의 인종차별이 법으로 고착화됐던 ‘짐 크로(Jim Crow)’ 시대, 흑인 운전자들은 안전한 숙소나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그때 빅터 휴고 그린은 『The Negro Motorist Green-Book』을 발간해 흑인들이 갈 수 있는 장소들을 안내했다. 이 안내서는 흑인 가족이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든 사회적 인프라이자, 차별을 우회하는 실용적 정치 실천이었다(Green, 1936–1966).


현대에는 기술을 통한 창업이 이런 정치적 실천의 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Bitcoin)은 중앙은행 없이도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최초의 암호화폐다(Nakamoto, 2008). 이는 국가가 독점하던 통화 발행 권한에 도전한 시도로, 명백히 정치적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정부를 통하지 않는 금융'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후 다크웹에서의 거래 플랫폼인 ‘실크로드(Silk Road)’ 같은 사례로 이어졌다. 이 플랫폼은 정부의 마약 정책을 우회하는 시도였으며, 사용자 간 평가 시스템을 통해 안전성과 자율성을 높였다(Barratt et al., 2016).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Common Justice’라는 조직은 폭력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형벌 대신 회복적 정의(restore justice)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형사 사법 체계를 보완하며, 감옥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시도하는 정치적 창업이다 (Sered, 2019).


그렇다면 왜 굳이 창업으로 정치적 실천을 해야 할까? 

첫 번째 이유는 ‘신속성’이다. 기존 정치 시스템은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 설득하고, 투표하고, 정책을 통과시켜야 한다. 반면 창업가는 자신이 감지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이념의 전복’이다. 사람들은 종종 기존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새로운 실천이 등장하면, 기존 질서가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마치 비트코인이 ‘돈은 반드시 국가가 찍어야 한다’는 믿음을 깨뜨린 것처럼 말이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창업은 국가만큼의 자원을 갖지 못하고, 불법적인 시도로 여겨질 경우 탄압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실크로드 운영자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업은 새로운 질서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며, 기존 정치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바이어스는 말한다. “살아 있는 경제에서는 모든 사람이 기업가다”(Mises, 1996). 그렇다면 오늘날, 살아 있는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이 잠재적 정치가이자 혁신가일 수 있다. 창업은 더 이상 단지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창업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들어보려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다.



Barratt, M. J., Ferris, J. A., & Winstock, A. R. (2016). Safer scoring? Cryptomarkets, social supply and drug market violence. International Journal of Drug Policy, 35, 24–31.


Beito, D. T. (2000). From mutual aid to the welfare stat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Byas, J. L. (2025). Entrepreneurship as political action. Public Affairs Quarterly, 39(2), 164–183.


Green, V. H. (1936–1966). The Negro Motorist Green-Book. Self-published.


Kirzner, I. M. (1973). Competition and entrepreneurship. University of Chicago Press.


Mises, L. von. (1996). Human action (4th ed.). Fox & Wilkes. (Original work published 1949)


Nakamoto, S. (2008).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Retrieved from https://bitcoin.org/bitcoin.pdf


Schumpeter, J. A. (1942).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Harper & Brothers.


Sered, D. (2019). Until we reckon: Violence, mass incarceration, and a road to repair. The New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