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학(PA)의 진화
행정학은 오늘날 정부 운영의 실천과 이론을 모두 아우르는 중요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진화해왔다.
그 시작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정치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은 공공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는 단순한 치안 유지 기관에서 복잡한 문제 해결 기구로 전환하게 된다. 보건, 교육, 환경, 노동, 주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 현실은, 국가가 단순히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운영에 대한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필요가 '문제 해결 중심의 실천 학문'으로서 행정학의 탄생을 이끌었다.
초기의 행정학은 정치학, 법학, 경제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부터 이론과 방법론을 차용하여 공공 조직의 운영에 적용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행정학은 고유한 이론 체계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 기능했다. 이를테면, 맥스 베버(Max Weber)는 관료제의 이상형을 제시하며 행정조직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강조했고(Weber, as cited in Drechsler, 2020), 우드로 윌슨(Wilson, 1887)이나 프랭크 구드노(Goodnow, 2003)는 정치와 행정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통해 행정의 실무적 측면에 집중했다.
행정학을 정치학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는 공공정책의 집행과 국가 권력의 분배라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이러한 입장은 공공행정이 정치적 과정과 분리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며, 정치학의 연장선상에서 행정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실제로 초기 행정학자였던 우드로 윌슨은 행정을 정치로부터 분리된 실무 영역으로 보았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흐리는 면도 있었다. 프랭크 구드노 역시 정치와 행정의 이원론을 주장했지만, 현실에서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결국 행정은 정책의 집행이라는 실천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점차 강해졌다.
법학적 관점에서는 행정은 공법의 집행 행위로 정의된다. 행정은 법률에 근거한 국가의 조직적 활동이며, 행정의 정당성은 결국 법적 기초 위에서 설명된다. 이런 입장은 '법치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법적 절차와 규범을 통해 행정행위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Christensen et al., 2011). 하지만 지나친 '법률주의'는 유연성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Hood, 1995). 특히 현대 행정 환경에서는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커지면서, 법률만으로는 충분한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현실적 설득력을 가진다.
경영학적 접근은 행정을 조직관리의 문제로 본다. 즉, 행정은 하나의 경영활동이며, 민간부문의 관리 기법을 공공부문에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관점은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의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능률성, 성과지향성, 고객중심성 등을 중시한다(Gruening, 2001). 윌슨이나 레너드 화이트(White, 1928) 등은 행정이 과학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경영 기법과 이론의 응용을 강조하였다. 공공 부문에서도 계획, 조직, 인사, 예산, 평가 등의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영학의 이론과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행정학의 ‘내향화’ 시기로, 이 학문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이론적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허버트 사이먼(H. A. Simon)은 기존의 규범적 접근을 비판하며 행정을 실증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대상으로 보았고(Simon, 1946; 1947), 루터 굴릭(L. Gulick)은 행정이 효율성과 조직 관리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공공 부문에서의 관리 기법 발전을 주창했다(Gulick, 1933). 이와 함께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고, 연구 방법이 체계화되며, 학회와 학술지가 설립되는 등 행정학은 독립된 학문 분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문제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단일 학문만으로는 이를 다루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행정학은 다시 외부 학문과의 연계를 확대하며 ‘성숙한 교차학문’으로 진화하게 된다. 최근의 행정학 연구에서는 정치학뿐만 아니라 환경학, 사회학, 심리학, 정보기술학, 심지어는 철학과 윤리학까지도 융합되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Fox, 2000; Bouckaert & Jann, 2020).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행정학은 단지 실용적인 기술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론적 기반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공공서비스 동기(Public Service Motivation)', '행정적 부담(Administrative Burden)',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와 같은 개념은 이제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이론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는 행정학이 단순한 행정 실무의 기술을 넘어, 공공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학문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행정학은 정치적 권력의 배분을 다루는 정치학, 법적 정당성을 다루는 법학, 효율적 운영을 다루는 경영학의 교차점에서 발전해왔으며, 이제는 이 세 축을 종합하면서도 독립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한 하나의 성숙한 학문으로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복잡한 공공 문제에 보다 효과적이고 이론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행정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정은 각 시대적 필요와 이론가들의 사유에 따라 구성되어 왔으며, 여전히 그 정체성과 학문적 경계는 논쟁 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호성은 오히려 이 분야의 역동성과 현실 밀착성을 반영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민의 삶과 국가 운영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리하면 행정학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문제 중심적, 실천 중심적 단계 (1880년대~1950년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차용하여 공공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둠.
학문 정체성 확립의 단계 (1950년대~1990년대)→ 이론과 방법론의 체계화, 전문 학술지와 연구기관의 설립.
성숙한 교차학문으로의 전환 (2000년대 이후)→ 다양한 학문과의 연계 확대, 행정학의 개념들이 타 분야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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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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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ckaert, G., & Jann, W. (2020). European perspectives for public administration. Leuven University Press.
Christensen, R. K., Goerdel, H. T., & Nicholson-Crotty, S. (2011). Management, law, and the pursuit of the public good in public administration. Journal of Public Administration Research and Theory, 21(Suppl_1), i125–i140. https://doi.org/10.1093/jopart/muq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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