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창의성(심리적 재해석)
사회는 늘 불평등을 안고 있다. 소득, 교육, 법적 권리, 사회적 지위 같은 면에서 사람들은 계층화되어 있고, 이는 건강 문제나 폭력, 신뢰 붕괴 같은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러한 구조를 그냥 받아들이는 걸까? 또는 어떤 계기는 구조에 저항하게 만들까?
이 질문에 대해 ‘사회적 창의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집단 간 비교에서 열등하다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정면으로 싸우기만 하지 않는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위를 재해석하거나, 비교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심리적 승리'를 만들어낸다. 이때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사회적 창의성(social creativity)’이다 (Tajfel & Turner, 1979).
‘사회적 창의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열등하거나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직접 싸워서 지위를 바꾸기보다는 비교 기준 자체를 바꾸거나 평가 방식 자체를 재해석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라고 말하거나, “가난은 신성하다”고 해석하거나, 혹은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고 하향 비교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은 상대적 지위를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자존감을 유지하고 심리적 고통을 줄인다 (Tajfel & Turner, 1979; Becker, 2012).
이러한 전략은 단순히 자기 위안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창의성이 세 가지 역할을 한다고 본다. 첫째, 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감정적 대처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둘째, 지배 집단이 기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활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셋째, 사회적 낙인을 긍정적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기존의 위계 질서를 의문시하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첫 번째 경우는 주로 낮은 지위의 집단이 “현실은 바꿀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창의성을 쓰는 경우다. 예컨대 미국 내 히스패닉 계층이 낮은 임금 수준을 교육 탓으로 정당화하는 설명을 들었을 때, 일부는 돈 대신 가족 가치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면서 비교 기준을 바꾸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약 37%가 이러한 전략을 사용했다 (Van Bezouw & Van der Toorn, 2019). 이러한 방식은 상황을 바꾸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경우는 높은 지위의 집단이 사회적 창의성을 통해 현재의 위계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거나, “우리가 잘났지만 그들도 착하다”는 식의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Douglas et al., 2005). 이런 방식은 다른 집단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세 번째 경우는 다소 반전이 있다. 바로 사회적 창의성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Black is Beautiful' 같은 운동은 흑인 정체성의 낙인을 재해석하고 정치적 행동으로 연결되었다. 터키의 게지 공원 시위에서는 정부가 시위자들을 "잡것(çapulcu)"이라고 비하하자, 시위자들이 오히려 그 단어를 자긍심 있게 수용하고 정체성으로 만들어냈다 (Odağ et al., 2016). 이러한 재해석은 정체성의 정치화로 이어져 결국 체제에 도전하는 집단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사회적 창의성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그 전략이 집단 내외에서 받아들여지는지에 달려 있다. 나 홀로 비교 방식을 바꾸는 것은 자존감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집단 전체가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대로, 집단이 그것을 집단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공유하면 더 큰 정치적 파급력을 갖게 된다 (Turner-Zwinkels & Van Zomeren, 2020).
핵심은 이렇다. 사회적 창의성은 단순한 심리적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거나 흔드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상황에 따라 어떤 때는 체제를 안정시키고, 어떤 때는 균열을 만들어낸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불평등이 단지 구조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지속되기도 하고 변동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치적 변화나 사회 운동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논의는 기존의 ‘시스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과도 맞물린다. 시스템 정당화 이론은 사람들이 불확실성이나 불안을 줄이기 위해 현재 체제를 정당화하려는 심리를 설명하는데, 이 역시 사회적 창의성과 유사하게 작동한다 (Jost & Banaji, 1994). 예를 들어 “우리는 가난하지만 정직하다”라는 말은 자신과 집단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Kay & Jost, 2003). 결국, 사회적 창의성은 '긍정적 차별화'라는 심리적 욕구와 '현상 유지'라는 체제 정당화 욕구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Becker, J. C. (2012). The system-stabilizing role of identity management strategies: Social creativity can undermine collective action for social chang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3(4), 647–662.
Douglas, K. M., McGarty, C., Bliuc, A. M., & Lala, G. (2005). Understanding cyberhate: Social competition and social creativity in online white supremacist groups. Social Science Computer Review, 23(1), 68–76.
Jost, J. T., & Banaji, M. R. (1994). The role of stereotyping in system-justification and the production of false consciousness.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3, 1–27.
Kay, A. C., & Jost, J. T. (2003). Complementary justice: Effects of “poor but happy” and “poor but honest” stereotype exemplars on system justific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5), 823–837.
Odağ, Ö., Uluğ, Ö. M., & Solak, N. (2016). “Everyday I am çapuling”: Çapulcu identity and collective action through social network sites in the Gezi Park protests. Journal of Media Psychology, 28(3), 148–159.
Tajfel, H., & Turner, J. C. (1979). An integrative theory of intergroup conflict. In W. G. Austin & S. Worchel (Eds.), The social psychology of intergroup relations (pp. 33–47). Brooks/Cole.
Van Bezouw, M. J., & Van der Toorn, J. (2019). Is social creativity really creative? Open-ended responses to stable low group status. Unpublished manu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