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넛지(Nudge)
정부와 기업이 시민과 소비자의 행동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정책으로 '넛지(nudge)'가 활용된다.
넛지는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와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소개한 개념으로, 선택의 자유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결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적 개입이다. 이들은 넛지를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모든 개입"이라고 정의하였다(Thaler & Sunstein, 2009).
넛지의 대표적인 예로는 학교나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건강한 음식을 더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여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게 만드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선택의 폭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도로에서의 차선 유도 페이트칠도 넛지이다.
하지만 넛지 개념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과 비판이 존재한다. 우선 탈러와 선스타인의 정의는 몇 가지 모호성을 지닌다. 예컨대, 넛지가 반드시 '선택의 폭을 줄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폭을 넓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 옆에 비슷하지만 열등한 선택지를 배치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좋은 선택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선택을 확장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사례다(Kivetz et al., 2004; Ariely, 2009).
또한 넛지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아니라 심리적 비용이나 시간적 비용과 같은 비경제적 인센티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Hausman & Welch, 2010). 특히 넛지의 효과는 그 투명성과 회피 가능성 여부에도 크게 좌우된다. 어떤 넛지는 투명하지 않아 개입의 목적이나 방식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넛지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Bovens, 2009; Hansen & Jespersen, 2013).
넛지는 개인에게 이로운지, 사회에 이로운지, 아니면 이를 시행하는 주체(기업 등)에 이로운지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기 이익형(pro-self)' 넛지는 개인의 장기적인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건강 관리나 노후 저축 장려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 '사회 이익형(pro-social)' 넛지는 세금 납부 촉진이나 에너지 절약 같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셋째, 상업적 넛지는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여 기업의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활용된다(Congiu & Moscati, 2022).
넛지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이다. 이 이론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면서도 개인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선택을 돕는 개입을 정당화한다(Thaler & Sunstein, 2003). 하지만 이 접근법에도 비판이 많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진정한 '선호'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선호를 정책 결정자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넛지가 선택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특정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Sugden, 2018; Grüne-Yanoff, 2012).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 외의 정당화 논의도 제시되었다. 첫째는 '순수한 온정주의'로, 개인의 현재 선호가 무엇이든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정당화한다(Guala & Mittone, 2015). 둘째, '타인 피해 방지(no harm)' 원칙으로, 개인의 행동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넛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Oliver, 2013).
넛지가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실험과 연구 결과 넛지가 실제로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장기 저축이나 건강 관리 영역에서 넛지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Benartzi et al., 2017). 특히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전통적인 정책보다 탁월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넛지가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선호나 환경에 따라 때로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Bronchetti et al., 2013).
또한 넛지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연구도 중요하다. 넛지를 명확하게 밝힌다고 해서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투명할 때 신뢰가 높아져 효과가 증가하기도 했다(Bruns et al., 2018). 넛지의 장기 지속성에 대해서는 넛지가 습관 형성에 도움을 주어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Allcott & Rogers, 2014).
마지막으로 전통적 정책과 넛지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넛지는 때로 전통적 정책과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지만, 반대로 전통적 정책에 대한 지지를 감소시키는 현상('nudging-out effect')도 나타날 수 있다(Hagmann et al., 2019). 따라서 넛지와 전통적 정책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넛지는 자유로운 선택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비합리성을 활용해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도구로 자리 잡았다. 다만, 넛지의 개념적 명확성, 윤리적 정당성, 그리고 실제 효과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연구가 여전히 필요하다.
Congiu, L., & Moscati, I. (2022). A review of nudges: Definitions, justifications, effectiveness. Journal of Economic Surveys, 36, 188–213. https://doi.org/10.1111/joes.12453
Thaler, R. H., & Sunstein, C. R. (2009). 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Penguin.
Sugden, R. (2018). The community of advantage: A behavioural economist’s defence of the market. Oxford University Press.
(외 논문에 인용된 개별 연구들의 인용은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