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은 어떻게 과거를 알아내는가


현대의 역사학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현재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탐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Tucker, 2025). 역사학자는 자연과학자처럼 현재를 실험하거나 관찰할 수는 없지만, 과거 사건이 남긴 다양한 흔적—문헌, 유물, 기록 등—을 분석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과거를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고고학 유물, 옛날 편지, 공문서, 신문 기사 같은 사료는 모두 과거 사건이 미래에 남긴 정보의 조각들이다. 역사학자는 이러한 자료를 단순히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료가 담고 있는 정보의 맥락과 신뢰도를 따져가며 과거 정황을 복원한다. 이 과정은 마치 탐정이 범죄 현장의 단서를 분석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종종 ‘과거의 탐정’이라 불린다.


역사학자의 추론 과정은 확률적 사고에 가깝다. 베이지안(Bayesian) 추론처럼, 역사학자도 어떤 사건에 대해 가능한 가설들을 세우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때마다 각 가설의 가능성을 업데이트한다. 예컨대 어떤 고대 도시의 멸망 원인이 전쟁 때문인지, 자연재해 때문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 도시 유적에서 “외적 침입”을 기록한 비문이 발견되면 전쟁설의 개연성이 커진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단 하나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료가 편향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철학자 에비저 터커는 역사학에서의 정보 해석 과정을 ‘지식의 전달(transmission)’과 ‘지식의 생성(gener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Tucker, 2025). ‘지식의 전달’은 과거의 증인이 남긴 기록이 현재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전쟁 중에 쓰인 편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1차 정보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일한 증거는 오류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서로 다른 출처의 독립적인 자료들을 비교·검증하여 ‘지식의 생성’으로 나아간다. 신문 기사, 정부 문서, 개인의 일기가 서로 일치하는 경우, 우리는 이들 자료를 종합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보다 신뢰도 높은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 역사학의 또 다른 특징은 정보이론을 통해 자료의 분석을 정교화한다는 점이다. 정보이론은 원래 통신공학에서 출발했지만, 역사학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클로드 셰넌(Shannon)의 ‘정보량(information content)’ 개념은 어떤 증거가 우리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이는지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단순히 길거나 상세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증거일수록 정보량이 크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신호 대 잡음비(signal-to-noise ratio)’라는 개념도 활용한다. 여기서 '신호'는 의미 있는 역사 정보이고, '잡음'은 오류, 왜곡, 혹은 무관한 정보이다. 예컨대 선전 목적으로 쓰인 과거의 기록은 과도한 잡음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동일한 사실을 독립된 출처들이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면, 이는 신호가 강한 자료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이론적 분석은 방대한 자료 속에서 어떤 사료가 의미 있는 단서인지, 어떤 것이 단순한 혼란을 주는 정보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역사학의 추론에는 불가피하게 불확실성이 따른다. 특히 '언더디터미네이션(underdetermination)' 문제는 해석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하나의 증거가 여러 가지 상충하는 해석을 동시에 허용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에서 발생한 대화재가 우연한 사고인지, 정치적 의도를 지닌 방화였는지를 판단하려 할 때, 남아 있는 기록이 너무 적거나 애매하다면 두 가설 모두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해석이 더 타당한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또 다른 경우는 반대다. 자료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오히려 핵심을 놓치는 상황이다. 방대한 문헌과 기록이 얽히고설켜 있을 때, 어느 정보가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며, 분석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역사학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증거를 발굴하거나, 정보이론, 통계학, 언어학,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 의미 있는 해석을 끌어낸다.


역사학에서는 ‘반사실적 추론(counterfactual reasoning)’도 중요한 도구다. 이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1914년에 사라예보에서 암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실험은 어떤 사건이 역사에 미친 인과적 영향력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물론 이런 추론은 정교한 증거와 논리적 일관성 없이는 신뢰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해석 도구로 쓰여야 한다.


현대 역사학의 이러한 분석적 접근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었다. 특히 독일의 레오폴드 폰 랑케는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밝히는 것이 역사의 사명이라고 주장하며, 철저한 사료 비판과 1차 자료 중심의 연구를 강조했다 (Ranke, 1824). 그는 역사학을 상상이나 철학적 명상에서 탈피시켜, 경험적 증거에 기반한 학문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의 방법론은 이후 세계 역사학계의 기준이 되었고,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역사학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과거 사건이 남긴 증거를 통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추론을 수행하는 학문이다. 과학과 같은 엄밀한 사고 과정을 따르되, 오직 한 번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다. 역사학자는 증거의 단서를 따라가며 지식을 생성하고, 이로써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과거의 실체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과학’이자, 동시에 독립적인 지식의 생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Tucker, 2025).


Tucker, A. (2025). Historical knowledge and the logic of evidence. Oxford University Press.

Ranke, L. von. (1824). Geschichte der romanischen und germanischen Völker von 1494 bis 1514. Berlin: Rei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