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의 경제 형태 : ‘상품’, ‘자산’, ‘선물’,  ‘특이성’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처럼 단순히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 이윤을 얻는 구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의 작동 방식이 매우 복잡해졌고, 우리가 돈을 벌고 가치를 생성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과거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상품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가치 있는 것들’이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제를 구성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상품 하나만으로는 현대 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피케티(Piketty, 2014)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임금과 생산 중심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가 결정되는 '자산 기반 경제'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200년간 소득과 부의 분포를 분석하면서, 오늘날 부의 대부분이 상속과 투자로부터 나온다고 밝혔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으며, 집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점 가난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학자들은 경제를 네 가지 주요 형태로 구분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상품’, ‘자산’, ‘선물’, 그리고 ‘특이성’이다(Dobeson, Brill & Braun, 2025). 이 네 가지는 단순히 ‘물건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어떤 방식으로 교환되고 가치를 가지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틀이다.

가장 익숙한 형태는 ‘상품’이다. 상품은 어떤 사람이 노동을 들여 만들고, 시장에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다. 예를 들어, 농부가 생산한 쌀, 공장에서 만든 전자제품, 미용실의 서비스 같은 것들이 상품이다. 상품의 특징은 대체 가능성이 높고, 누구든지 돈만 있으면 동일한 조건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상품은 보통 돈이라는 공통 기준으로 교환되며, 교환은 즉각적이고 단절적이다(Marx, 1867/1991).

하지만 이와 달리 ‘자산’은 단순히 사고파는 것을 넘어서,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생성하는 형태다. 대표적인 자산은 부동산, 주식, 특허권, 심지어 삼림이나 광물 자원까지 포함된다. 이런 자산은 당장 팔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돈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세를 줘서 월세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자산은 이렇게 ‘지금의 가치’가 아니라 ‘미래의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Veblen, 1908; Birch & Muniesa, 2020).

자산 중심의 경제는 불평등을 빠르게 심화시킨다. Adkins, Cooper, and Konings (2020)은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자산 계급 구조’가 형성된다고 지적한다. 즉, 누군가는 집을 가지고 있어서 부를 늘려가지만, 다른 누군가는 계속 월세를 내고 빚을 갚느라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처럼 자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계급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세 번째 경제 형태는 ‘선물’이다. 선물은 단순히 무언가를 무료로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학자 모스(Mauss, 1954/2002)는 선물이란 ‘받는 사람이 언젠가는 다시 돌려줘야 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생일에 선물을 받았다면 언젠가 그 사람의 생일에도 선물을 해줘야 하고, 친척이 용돈을 주면 나중에 찾아가거나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생긴다. 선물은 이런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도구다. 이처럼 선물은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교환이 이어지는 순환적인 구조를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자산가들이 자신의 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선물 형태’를 활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 부호들이 설립하는 재단이나 자선사업은 선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세금을 줄이며 자산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인 경우도 많다(McGoey, 2012; Dobeson, 2021). 즉, 선물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매우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특이성(singularity)’이라는 경제 형태도 있다. 특이성은 흔히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물건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 희귀 와인, 유명 디자이너의 한정판 가방처럼 그 자체가 유일무이하며 가격을 매기기 어렵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기 어려운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Karpik, 2010). 이런 것들은 소비자가 물건을 고를 때 단순한 가격 비교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평판, 브랜드의 역사, 감성적인 가치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

특이성은 일반 상품과 달리 ‘독특함’에서 가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유명 화가의 그림은 그 작품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가격이 수십억 원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부유층은 이를 자산으로 보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예술 작품이 금융자산처럼 다뤄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특이성과 자산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Boltanski & Esquerre, 2020).

이 네 가지 경제 형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골동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서 거래되면 상품이 되고, 그 상품이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아 특이성이 되기도 한다. 또는 어떤 예술 작품은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올라 자산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형태화(formatting)’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제 형태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 제도, 기술, 문화적 관습 등이 합쳐져서 어떤 물건이나 행위를 특정 경제 형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Callon, 1998a; Butler, 2010).

이러한 형태화는 정책이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때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던 산림이 탄소배출권 제도 때문에 ‘자산’이 되었다. 숲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에게 수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법과 제도, 기술, 사회적 인식이 모여 하나의 경제 형태를 형성하게 되며, 이를 ‘형성(formation)’이라 부른다.

형성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경제의 '기본 구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이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강화했고, 그 결과 부동산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자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 자산가들의 자산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정부의 금융완화 정책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부양했기 때문이다(Adkins, Bryant, & Konings, 2023).

결론적으로, 오늘날 자본주의는 상품 중심도 아니고, 자산 중심만도 아니다. 상품, 자산, 선물, 특이성이라는 다양한 경제 형태가 공존하며,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한 경제를 만들어간다. 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무엇이 돈이 되는가'를 넘어서, 그 돈이 어떤 관계와 제도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