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무 (Accountability)
민주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 중 하나로 흔히 꼽히는 것이 바로 ‘책무’입니다. 쉽게 말해, 권력을 맡은 사람들이 자기 결정과 행동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을 뜻하지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책임져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책무(accountability)라는 말은 현대 정치 담론에서 마치 만능 열쇠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책무 확보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정치 연설부터 신문 칼럼까지 등장하지만, 정작 그 의미는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학자 리처드 멀건은 책무를 “계속 범위가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했고(Pollitt & Hupe, 2011; Mulgan, 2000), 콜린 폴릿 등은 책무를 정확한 정의 없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쓰이는 “마법의 개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Pollitt & Hupe, 2011). 그만큼 책무라는 개념은 좋게 들리지만,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책무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설명을 하고 이에 대해 평가하고 제재하는 청중(포럼)이 있으며, 양측의 주고받는 상호 작용 속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Papadopoulos, 2023).
책무의 이상적인 그림은 이렇습니다. “위임한 권력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통제되어야 한다.” 국민이 대표를 뽑아 권력을 위임하지만, 나중에라도 잘못하면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민주주의는 크게 세 갈래의 책무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첫째는 선거를 통한 수직적 책무성입니다.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투표로 잘한 정치인은 다시 뽑아주고 못한 정치인은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죠. 둘째는 정부 조직 내부나 동등한 국가 기관끼리 견제하는 수평적 책무성입니다.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감사원이나 사법부 같은 기관이 권력 남용을 단속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O'Donnell, 1998). 셋째는 언론, 시민단체, 여론 등을 통한 사회적 책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감시자들이 상시적으로 권력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 것으로, 현대에는 이것이 점점 중요해져 **“모니터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Keane, 2009). 이 세 갈래는 각각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파파도풀로스는 민주적 책무성을 **“복잡한 거미줄”**에 비유했는데(Papadopoulos, 2023), 다양한 역할의 행위자들이 얽혀 책무의 그물망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거미줄의 각 실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구체적인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선거를 통한 책무는 민주주의의 기본축입니다. 선거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장치입니다. “표가 없으면 권력도 없다”는 말처럼,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라도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요.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정부가 실정을 하면 국민이 투표로 심판해서 교체하고, 또 잘한 정부는 계속 지지해주는 식으로 성과에 따른 책임이 실현될 거라고 기대됩니다. 이를 **“후방책임성”**이라고도 하는데, 정책 결과를 보고 나중에 평가해 책임을 묻는다는 뜻입니다. 가령 경제를 망친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표로 벌을 받고, 부패한 정치인은 낙선하게 되어 정치권에서 퇴출되는 식입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굴러갑니다. 많은 민주국가에서 경기침체가 오면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큰 부패스캔들이 터진 정권이 교체된 사례도 흔하지요. 선거가 가진 이 응징 메커니즘은 정치인들에게 상시적인 압박을 줍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은 공직자들이 함부로 못 하게 붙들어 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가 그렇게 완벽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선거는 몇 년에 한 번 있을 뿐이고, 유권자들은 그 사이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모두 기억하거나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선거 때 표를 주고받는 일은 일종의 뭉뚱그린 평가입니다. 국민이 투표로 한 정권을 몰아냈다고 해서 정확히 어떤 정책 실패 때문에 그랬는지, 혹은 단순히 정권에 싫증이 나서 그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실제 연구를 보면 유권자들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투표하기도 합니다. 정치권과 전혀 무관한 자연재해나 사고에도 정부를 탓해 표를 엉뚱하게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미국의 한 해변 지역에서 상어가 사람들을 공격한 해에 그 지역 대통령 득표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 사례를 제시합니다(Achen & Bartels, 2017). 국민 입장에서는 불안과 불만이 표출된 것이겠지만, 그 당시 대통령으로서는 “내 잘못도 아닌데 괜히 표를 잃은” 셈입니다. 이처럼 “후방책임성”의 오작동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농작물이 흉작이었거나 지역 스포츠팀이 진 경우까지 현직 후보가 표를 잃는 현상이 발견되는데(Gasper & Reeves, 2011), 이것은 선거가 언제나 합리적 응징만을 하지는 않는다는 증거지요. 심지어 유권자들은 정권의 성과보다도 자기 편에 대한 충성심으로 투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결국 선거는 둔탁한 도끼처럼 거칠게 책임을 묻는 수단이라서, 잘못한 정부가 표를 잃는 경향은 있지만 그 정도나 방식이 일관되거나 정교하지 않습니다(Achen & Bartels, 2017).
또 다른 한계는 책임 소재의 불분명입니다. 현대 정부는 구조가 복잡하여, 유권자가 누구 탓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연정(聯政)을 하는 나라에서는 한 정당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일이 드물어서, 나쁜 결과가 나와도 “저 당 때문인지, 다른 연정 파트너 때문인지” 애매합니다. 그러다 보니 투표로 특정 정당을 벌주는 효과가 흐려집니다(Anderson, 2000). 국제경제의 영향도 커져서, 경기 변동이 정부 책임인지 세계적 요인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경제 성적과 정부 지지율의 연관이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연구도 있습니다(Anderson, 2007). 이처럼 구조적 조건 때문에 선거의 책임 추궁 기능이 제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약하면,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여전히 핵심적인 책무 장치지만, 이상만큼 전능하지는 않습니다. 선거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유권자가 충분히 정보도 얻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정보 부족, 집단적 기억의 한계, 감정적 요인 등의 장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잘 설계된 선거 제도와 투명한 정보 공개는 여전히 유권자 심판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거를 통한 책무성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안전핀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깨달음에서 다른 책무 기제들이 발전해왔습니다.
둘째 축은 수평적 책무성, 즉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입니다. 이는 “왕후장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격언처럼, 권력을 서로 나누어 견제하게 함으로써 한 손에 권력이 집중되지 못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권한을 나눠 가져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예를 들어 의회는 국정감사나 청문회를 열어 정부가 잘하고 있는지 따집니다. 감사원이나 옴부즈만(민원조사관)은 행정기관의 부정을 들춰냅니다. 사법부는 위법 행위를 수사해 처벌하고, 때로는 위헌적 정책을 무효화하기도 하지요. 이런 제도들 덕분에 국민은 선거철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부당한 권력 행사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O'Donnell, 1998). 특히 독립적인 사정기관이나 인권위원회 등은 **‘수평적 책무성’**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군사독재를 겪었던 일부 남미 국가들에서 선거로 뽑은 정부조차 부패하고 전횡할 수 있다는 반성으로, 경찰·검찰 외부에 반부패위원회 같은 독립 기구를 두는 시도가 있었지요(O'Donnell, 1998). 이러한 수평적 책무 장치는 **“민주주의의 안전망”**으로 여겨집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일일이 행정부를 감시할 수 없으니, 그 역할을 전문기관들에게 맡기는 셈입니다.
하지만 수평적 책무성에도 고유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의회나 감사기구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가령 의회가 형식적으로는 행정부 견제자이지만, 실제로는 여야 정쟁이나 정당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유능한 감시자 역할에서 빗나가곤 합니다. 여당이 다수인 의회는 자기 정부의 과실을 눈감아주기 일쑤고, 야당이 다수인 의회는 사사건건 정쟁으로 마비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적으로는 권한이 있지만 실제로는 **“무늬만 감시자”**에 그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파파도풀로스는 오늘날 많은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기보다 당쟁에 휘말려 **“탈의회화(deparliamentarization)”**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Papadopoulos, 2023). 다시 말해 의회 자체가 스스로 책무 추궁 노력을 포기하거나 기능을 상실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복잡해진 현대 정책 환경에서, 전문성 부족 등의 이유로 의회가 행정부의 정책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일반 국민처럼 정보가 제한적이거나, 혹은 정부에 불리한 이슈를 문제삼아봐야 크게 표를 못 얻는다고 판단해 깊이 안 파고드는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감시자 쪽의 나태나 역량 부족으로 생기는 책무 공백을 파파도풀로스는 **“포럼의 이탈”**이라고 부릅니다(Papadopoulos, 2023). 원래는 대리인이 주인을 배신하는 게 문제라고 보지만(이를 **“기관의 이탈”**이라 하지요), 때론 주인 격인 감시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해서 생기는 책무 부재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국회가 게으르면 행정부는 편하게 굴러가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책무 체계는 양쪽 다 제대로 작동해야 완전체가 됩니다.
둘째 난제는 사법부나 독립기관 같은 비선출 권력의 딜레마입니다. 법원이 위헌 법률을 무효화하거나 부패한 정치인을 감옥에 보내는 일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 환영받습니다. 하지만 가끔 법원이 국민 다수가 뽑은 정부 정책을 뒤집어버릴 때, 이를 두고 “과연 민주적으로 정당한가?”라는 논란이 일어납니다. 미국 정치학자 알렉산더 비클이 말한 “다수결에 반하는 난점”(counter-majoritarian difficulty)이란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데, 판사는 선출되지도 않았으면서 다수의 결정을 깰 힘이 있으니 민주적 정당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입니다(Hirschl, 2008). 일각에서는 최근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결정들이 정치 쟁점에 깊숙이 개입하는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라고 부르며 비판합니다. “판사들이 통치한다”는 의미의 **“법치주의(juristocracy)”**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지요. 이들은 법원의 힘이 너무 커지면 국민 다수가 선택한 정책이 구현되지 못할 위험을 우려합니다(Vibert, 2007; Hirschl, 2008).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 국민투표나 국회 표결을 거친 사회개혁 법안을 법원이 위헌으로 막아버린다면, 개혁에 찬성한 다수 국민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법원의 개입은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다수파 정부가 폭주하면 소수의 권리가 짓밟힐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법치주의, 즉 법의 지배가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독일 정치학자 볼프강 메르켈은 제대로 발전한 민주주의(내재적 민주주의)라면 사법부와 같은 견제권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Merkel, 2004).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장치가 없는 민주정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입장에서는 헌법재판소나 감사원 같은 기구의 독립성과 권한 강화를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로 봅니다. 두 가지 시각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정치와 사법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계속됩니다. 정부와 의회도 법원이 자신들의 정책을 뒤집는 것을 완전히 손 놓고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입법자들은 사전에 위헌 소지가 없도록 법 조항을 고치거나, 법원 판례를 연구해 미리 대응하기도 합니다(Papadopoulos, 2023). 또 대중적 지지를 앞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결국 권력 간 견제는 일방적인 지배라기보다 전략적 상호작용에 가깝습니다(Papadopoulos, 2023). 이런 동적 균형 속에서 행정부와 관료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예컨대 국회나 판사 같은 엘리트에게 설명하고 승인을 얻어야 하는 책무는 강화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에게만 신경 쓰느라 국민 일반에 대한 직접 책무는 도리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Papadopoulos, 2023). 즉, 국회와 사법부가 열심히 정부를 통제하는 건 좋지만, 정작 국민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며 수평적 책무성의 역할을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관료제 책무와 행정개혁의 문제입니다. 법과 제도로 아무리 멋지게 책무 구조를 짜놔도, 실제 행정을 수행하는 관료 조직이 제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입니다. 흔히들 선출직 정치인만 생각하기 쉽지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는 수많은 공무원과 행정기관이 참여합니다. 이들 관료제도 민주주의 책무 연결고리의 한 부분입니다. 전통적으로 관료들은 자기 상사(장관이나 청장 등)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계층적 책임구조 안에 있었습니다(Finer, 1941).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장관이나 기관장이 국회에 나가 사과하고 경위를 설명하며, 필요하면 해임되거나 책임을 지는 장관책임제 같은 관행이 있었지요. 그 아래 실무자들은 윗선에 책임이 미치는 걸 보며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위로만 책임지는 모델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윗선만 문책하면 정작 문제 원인은 개선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조직 전체가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배경에서 1990년대 이후 행정 개혁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일었습니다. 이른바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라는 개혁은 공무원을 전통적인 계층질서에서 일부 해방하는 대신, 성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Lægreid, 2014). 쉽게 말해, 과정은 좀 자율적으로 하되, 결과는 엄격히 평가해 잘한 부서는 포상하고 못한 부서는 문책하자는 것입니다. 기업 경영 기법을 본뜬 이 발상은 한때 유행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도입되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과지표를 만들고, 성과 연봉제나 예산 인센티브를 주는 등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개혁은 초기에는 책무성을 높이는 묘책처럼 여겨졌습니다. 숫자로 평가받으니 관료들이 느슨하게 자기 식구 감싸기를 할 수 없고, 공개된 지표 앞에서 설명을 잘 못 하면 책임을 지게 되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몇 가지 부작용이 뚜렷해졌습니다. 먼저, **“측정 가능한 것만 중요해진다”**는 비판입니다. 성과 지표에 잡히는 업무는 열심히 하고 수치로 증명하려 하지만, 숫자로 보이진 않지만 중요한 일들은 뒷전이 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Schillemans & Bovens, 2015). 이를 **목표 전치(goal displacement)**라고 부르는데, 예컨대 경찰은 범죄 검거 건수 같은 지표에 매달리느라 주민들과 관계 맺기나 범죄 예방 같은 정량화 어려운 임무는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학교도 시험점수 향상에만 집착하고 정작 인성 교육이나 창의력 개발은 등한시한다는 지적과 비슷한 맥락이지요. 또한 성과를 공개하고 비교하는 것이 과도한 경쟁과 관료화를 낳았습니다. “보여주기용 보고”가 남발되고, 실적을 포장하기 위한 분식도 벌어집니다. 과도한 보고 업무는 본연의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어떤 연구는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보고 횟수가 늘수록 오히려 다른 핵심 업무에 쓸 시간과 자원이 줄어들어 행정 효율이 떨어진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Schillemans & Bovens, 2015). 한마디로 **“책무에도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투명성과 성과점검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보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시민에게 봉사하는 시간은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진행된 거버넌스의 변화도 관료제 책무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정부는 혼자 모든 걸 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무를 민간 위탁하거나 독립 기구로 분산합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민사회, 기업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권력의 분산과 협력” 시대에는, 책임 소재도 그만큼 분산됩니다. 과거 같으면 정부 부처 하나가 하던 일을 이제는 정부, 공기업, 민간단체가 함께 합니다. 그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책임을 떠넘기기 십상입니다. **“공동 책임은 무책임”**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가 그런 사례였습니다. 당시 재난 대응에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온갖 구호기관이 얽혀 있었는데, 대응이 실패하자 서로 상대방 정부 수준에서 잘못한 거라고 탓을 미뤘습니다. 연구자들이 들여다보니 책무 주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책임이 불분명해진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합니다(Moynihan, 2012). 이처럼 현대 행정은 한 조직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고 **“공동의 조리개”**처럼 여러 렌즈가 겹쳐 문제를 봅니다. 그 결과, 민주적 책무 체계도 더 복잡해졌습니다. 위임의 사슬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버린 것이죠. 시민→정부 대신, 시민→정부→독립기관 또는 시민→정부→민간위탁업체 등 다양한 경로가 생겼습니다. 각 경로마다 책임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여러 기관이 관여하면 한 곳에서 놓친 실수를 다른 곳에서 잡아내는 중복 효과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책무 장치가 하나 더 있으면 백업이 된다”고 옹호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복이 지나치면 서로 발이 엉켜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결국 여러 갈래의 책무성 사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오늘날 행정학자들은 이를 위해 어떤 책무 메커니즘이 언제 효과적인지, 또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해 대응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Aleksovska et al., 2022). 파파도풀로스 역시 관료제의 다중 책무 속에서 효과적인 통제가 이뤄지도록 제도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Papadopoulos, 2023). 행정의 성격이 달라진 만큼, 과거와 같은 단순 위계책임으로는 부족하며, 새로운 거버넌스 환경에 맞는 책무 혁신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미디어와 여론의 영향입니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국민에게 답하는 통로가 선거나 공식 보고서 정도였다면, 이제는 24시간 뉴스와 인터넷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해온 최근 수십 년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언론과 시민사회가 상시적인 감시자로 부상했다는 점입니다(Keane, 2009). 존 킨이 말한 **“모니터 민주주의”**란 개념은 바로 이러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국회 바깥에서 수많은 눈들이 권력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지요(Keane, 2009). 오늘날 언론 보도나 SNS 여론이 정치인 하나를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숨겨진 비리를 폭로해 공직자를 교체시키는 일도 흔합니다. 정부의 잘못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와 이를 보도하는 탐사보도 기자,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는 시민들까지 모두 책무의 새로운 포럼이 되고 있습니다. 파파도풀로스도 현대 정책 담당자들이 “끊임없이 대중에게 자기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는 압력”에 놓여 있다고 진단합니다(Papadopoulos, 2023). 정치인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그것도 생생한 라이브 영상과 댓글 세례 속에서 답변을 요구받는 시대가 된 셈입니다.
이러한 상시 책무 사회는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권력자들이 쉬이 방심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작은 부조리도 이제는 시민들이 온라인에 올리고 공론화하면 금세 시정 요구가 빗발칩니다. 언론은 이를 받아 권력층에 해명을 요구하지요. 이를 “감시의 그물” 혹은 “파이어 알람” 비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미국 학자 맥큅빈과 슈워츠는 의회의 감독 방식에 “경찰 순찰”과 “화재 경보기”가 있다고 했는데, 모니터 민주주의는 일종의 사회적 화재경보기처럼 작동합니다(Papadopoulos, 2023). 평소에 권력 감시 전문 인력이 일일이 순찰 돌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면 언론과 시민이 경보를 울려서 모두가 알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TV 뉴스나 인터넷은 사건 하나하나를 에피소드처럼 부각시켜 알리기 때문에(Episodic framing), “터지는 이슈” 위주로 정치의 무대가 꾸며집니다. 정치인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이미지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바로 영상 클립이 퍼져나가 망신당하니, 혹여 실수한 것이 없도록 보좌진과 함께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지요. 기자회견에서 까다로운 질문이 나오면 어설프게 답했다가 곤욕치르지 않도록 예행연습도 거듭합니다. 어떤 공직자는 아예 실수를 피하려고 언론 앞에 나서길 꺼리거나, 말하기에 앞서 법률자문부터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책무성이라는 압박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여론의 감시가 늘면 정치가 더 투명해지고 깨끗해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치 않습니다. 첫째, 감시자의 책임도 문제입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 같은 포럼들이 모두 공정하고 대표성이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상업적 이익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움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황색언론이 선정적 보도로 여론을 선동하거나, 일부 시민단체가 편향된 주장만 내세울 때, 이들이 주도하는 책무 추궁은 왜곡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파파도풀로스는 모니터 민주주의의 새로운 감시자들이 **“진정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녔는지 조심스럽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Papadopoulos, 2023). 감시자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도 아니고, 그 판단이 항상 공평무사한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둘째, 상시 감시 체제에서는 오히려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적 책임이 어려워지는 면도 있습니다. 언론은 시시각각 새로운 이슈로 관심을 이동시키기에, 인기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주목받지 못합니다. 방송 뉴스는 복잡한 정책 맥락을 차분히 설명하기보다, 단발성 사건에 드라마를 입혀 전달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러다 보면 정책 실패 원인을 구조적으로 토론하기보다는, 눈에 띄는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몰아 비난하고 마는 일이 생깁니다. 야당 정치인이나 경쟁자들도 미디어의 관심을 활용해 상대를 공격하려는 유인이 큽니다. 가령 어떤 사고가 터지면, 원인 규명보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나”**에만 집중하여 관련 장관이나 고위직의 사퇴를 요구하고 끝내버리는 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인적 처벌로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후엔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구조 개선은 흐지부지될 수 있습니다. 셋째, 부정적 분위기의 확산입니다. 언론과 야당은 건설적 성과보다는 문제점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항상 사회가 위기이고 정부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인식을 주기 쉽습니다. 물론 권력 비판은 중요하지만, 모든 일이 폭로전과 비난으로 점철되면 국민의 정치 혐오와 냉소주의가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Flinders, 2012). 플린더스는 정치인이 과도한 검증과 비난에 끊임없이 노출되면 **“책임 추궁의 과잉노출이 불신 문화를 부추겨 체제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Flinders, 2012). 실제로 매일같이 언론에 부정부패 뉴스가 나오면, 개혁 의지가 있는 사람들마저 정치권을 기피하게 되고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떠나려 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도 “정치는 썩었다”는 생각에 투표나 토론 참여를 포기한다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건강함은 해쳐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위기 상황에서의 책무 작동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평소에도 복잡한 책무의 그물망이 있지만, 큰 위기가 닥치면 이 책무 메커니즘이 더 특별하게 가동됩니다. 재난이나 금융위기처럼 “긴급하고 불확실한 파국적 사건”(Kuipers & ‘t Hart, 2020)이 일어나면, 우선은 사태 수습에 모두가 총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끈 후에는 반드시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나”**에 대한 책임 규명이 뒤따릅니다. 이를 사후책무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Boin et al., 2008). 크고 작은 위기 뒤에는 늘 진상조사, 청문회, 감사, 특별검사 등 여러 형태로 책임을 묻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정의 구현과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쟁투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Boin et al., 2008). 야당과 언론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정부를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참사나 스캔들 후에 의회가 적극적으로 정부 책임을 추궁하는데, 이때 야당 의원들이 카메라 앞에서 격렬하게 규탄 발언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관객을 향한 연기”**라고 한 연구도 있습니다(Stark, 2011). 그만큼 위기 이후의 책임 추궁은 공개적인 극장 정치의 성격을 띨 때가 많습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커져 있을수록, 보다 강력한 처벌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정치인들도 경쟁적으로 “이번에 제대로 책임을 묻자”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그러면서 때로는 사안이 과장되거나, 냉정한 분석보다 감정적 호소가 앞서는 면도 나타납니다.
위기 시 책무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책임 떠넘기기”**입니다. 앞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처럼, 여러 조직이 얽힌 재난일수록 서로 상대방의 대응이 문제였다고 비판합니다(Moynihan, 2012). 정부 부처들은 “우리는 지침대로 했는데 현장 대응이 잘못됐다”거나 “예산을 삭감한 국회 탓”이라는 식으로 변명할 수 있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지원이 늦었다고 탓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난 게임(blame game) 속에서 국민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정말 책임이 있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또 하나의 전략은 **“희생양 내세우기”**입니다. 조직의 최고 책임자 대신 중간 관리자 한둘을 해임하거나, 일선 실무자의 과실로 모든 책임을 좁혀서 발표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하면 조직 전체의 책임은 일단 모면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직접적 타격을 피하고자 꼬리 자르기를 활용합니다(Weaver, 1986). 물론 이런 시도들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이 집요하게 파고들면 부실 대응의 구조적 원인이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거짓 은폐가 더 큰 스캔들로 번져 궁지에 몰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요즘 리더들은 위기 시 책임을 관리하기 위해 여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위기 관리”**에 나섭니다. 신속히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을 공개하고 사과하면서,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약속 등으로 국민 감정을 달래려 애씁니다. 이를 가리켜 한 연구는 **“창의적 위기 리더십”**이라 부르며, 투명성과 설명 요구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도 과도한 비난 여론을 진정시키는 기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Boin et al., 2005). 위기가 터진 뒤 얼마간은 모든 행위자가 긴장 상태에 놓입니다. 살아남으려는 자와 책임을 묻겠다는 자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언론은 매일같이 폭로와 반박을 보도합니다. 책임을 추궁당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도 않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정치 경력이 길고 평판이 좋은 인물일수록 이런 사후 책무 국면에서도 비교적 잘 버텨낸다고 합니다(Stark, 2011). 반면 경험이 적거나 평소 신뢰가 낮은 인물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퇴진하거나 영향력을 잃곤 합니다.
위기의 장기적 효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큰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드러났으니 제도를 고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겠지요.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 후에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는 여러 법이 도입되었고, 한국에서도 대형 해양 참사 후 안전관리 부서를 개편하고 책임자를 처벌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위기가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시끄럽게 조사하고는 별다른 변화 없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연구에 따르면, 위기 이후 변화의 여부는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Birkland, 2006). 예컨대 그 사안이 국민 다수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언론의 관심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그 시점이 선거와 가까운지 먼지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Boin et al., 2008). 선거가 임박했을 때 터진 사고는 정치인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재빨리 입법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지만, 선거가 멀면 시간에 쫓기지 않아 흐지부지될 수도 있습니다. 또 사건 직후에 더 큰 이슈(전쟁이나 경제위기 등)가 터지면 이전 위기는 잊힐 수도 있습니다. 실제 많은 위기가 **“단기 불꽃”**처럼 한번 타오르고 곧 식어버립니다. 반면 드물게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위기”**도 있습니다(Boin et al., 2005). 이런 경우는 사건의 충격이 워낙 커서 두고두고 사회적 기억에 남고, 관련 논쟁이 이어지며, 중요한 제도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잊히지 않는 위기가 더 흔하다고도 하는데(Boin et al., 2005; Boin et al., 2008), 이런 경우는 정치 엘리트들이 기존 노선을 유지하기 어렵고 상당한 정책 학습이 일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변화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때론 보여주기식 개혁이나 서류상 계획만 남고 실제 정책은 제자리걸음인 경우도 있습니다(Maor, 2012). 왜냐하면 위기 이후의 변화도 정치적 산물이라, 이해관계 충돌과 관성에 부딪혀 부분적 개선에 그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Boin et al., 2009). 결국 위기 상황의 책무 과정도 복잡한 인간사의 일부입니다. 책임을 규명하고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과, 책임을 회피하고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뒤섞여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민주사회에서는 큰 실패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반드시 거친다는 점입니다. 권위주의 체제라면 책임자 처벌은커녕 원인 규명 시도조차 막히겠지만, 민주주의에서는 모두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기 속 빛나는 책무 정신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과도한 책무 추구가 가져오는 주관적 부담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처럼 책무는 민주주의에 필수 불가결한 가치입니다. 책임을 묻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거나 오만해지기 쉽고, 궁극적으로 국민을 배신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 이론가들은 주로 “어떻게 더 책무성을 강화할까”를 고민해왔고, 책무 결핍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반대로 **“책무 과잉”**의 부정적 효과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Power, 1997; Flinders, 2012).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앞서 언론과 정치권의 과열된 폭로 경쟁이 불신과 냉소를 낳을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의 현장에서도 과도한 책무 압력이 오히려 결과를 나쁘게 만드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적당한 책임 의식은 사람을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만들지만, 과한 압박은 위축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합니다(Hall, Frink & Buckley, 2017). 예를 들어 공무원이 “혹시 실수했다가는 언론에 찍혀서 매장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가 과연 창의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실험할 마음이 생길까요? 아마 안전한 길만 고수하려 할 겁니다(Weaver, 1986).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큰일 나니, 차라리 현 상태를 유지하며 무사안일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책무 압력의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책무성이 없으면 나태해지지만, 너무 심하면 오히려 순응적 관료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Weaver, 1986).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나 관료들이 최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회피 행태가 관찰되곤 합니다. 위원회를 만들고 결정을 미루거나, 상부 결재 라인을 잔뜩 늘려 책임을 분산시키는 등의 문화 말입니다. 이런 현상 뒤에는 “나중에 혼나지 않으려면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이렇듯 지나친 문책 분위기는 혁신의 위축과 의사결정 지연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Flinders, 2012).
또한 다중 책무의 문제도 개인들에게 상당한 정신적 부담입니다. 현대 공직자들은 한 명의 상사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러 상위 기관과 법규, 그리고 언론과 국민까지 수많은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앞에서 본 행정개혁과 거버넌스 변화로 인해 책임 경로가 여러 갈래로 늘어난 탓입니다. 예컨대 한 지방공무원은 동시에 시의회, 중앙정부 부처, 감사원, 지역 주민, 언론의 평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다양한 책무 요구들이 때로는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중앙정부는 예산 집행을 빨리하라고 독촉하지만, 지역 주민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는다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또 언론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압박하지만, 법규상 개인정보나 기밀 때문에 공개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방에서 다른 요구가 쏟아지면 공직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중압감은 상당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책무 주체가 여러 명일수록 피책임자의 스트레스 수준과 번아웃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Halachmi, 2014). 책임을 진다는 것은 원래 긴장을 수반하지만, 과도한 긴장은 일을 그르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책무도 적정 수준이 있다”며, 필요한 만큼의 책무를 확보하면서도 과부하를 막는 최적점을 찾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Rock, 2020). 물론 그 적정선을 수치로 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중요한 건 책무성 강화에도 비용과 부작용이 따를 수 있음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책무 압력이 높아지면서 등장한 흥미로운 논의 중 하나는 **“개인수준(느끼는) 책무(felt accountability)”**입니다. 겉으로 조직 체계가 엄격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압박을 느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관료는 “이건 내 책임이야”하고 크게 무게를 느끼지만, 또 어떤 이는 별로 개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Overman & Schillemans, 2022). 사람마다 성향과 경험이 달라서입니다. 예컨대 원칙주의적인 공직자는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며 책임감을 느끼지만, 태평한 성격의 동료는 윗선 지시만 따르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노련한 정치인은 언론에 비판이 나오더라도 “이 정도야 늘 있는 일”이라 가볍게 넘기는 반면, 신참자는 같은 상황에 크게 동요할 수 있습니다(Stark, 2011). 이런 차이 때문에, 책무 제도를 설계할 때도 무조건 세게 조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문화와 심리까지 고려한 미세 조정이 필요하지요. 이상적인 책무 체계라면, 권력자들이 국민 앞에 성실히 설명하고 잘못에 책임지도록 하되, 과도한 두려움이나 냉소에 빠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민주주의에서의 책무는 다층적이고도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책무란 결국 권력과 자유 사이의 줄타기인지도 모릅니다. 국민이 권력을 맡긴 대표자들을 제어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대표자들에게 어느 정도 자유 재량과 신뢰도 부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이 양면을 모두 필요로 합니다. 야니스 파파도풀로스의 논의는 우리에게 몇 가지 핵심 메시지를 줍니다. 첫째, 책무를 확보하는 메커니즘들은 여럿일수록 좋지만, 그만큼 갈등과 충돌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Papadopoulos, 2023). 선거, 의회, 사법, 언론 등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견제 수단입니다. 그러나 한쪽에만 의존해서도 안 되고, 여러 채널이 서로 견인과 보완을 해줘야 합니다. 둘째, 책무에는 항상 비용과 한계가 따른다는 현실 인식입니다. 완벽하게 모든 잘못을 처벌하고 모든 요구에 답하는 정부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계속 조정해나가며 학습하는 일입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걸 보완할 새로운 장치를 도입하고, 반대로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은 과감히 손보는 식의 지속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셋째, 책무는 궁극적으로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법과 제도만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기계장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국민이 관심을 갖고 감시하려는 문화, 지도자들이 도덕성과 책임 의식을 스스로 갖추는 풍토, 언론과 시민사회가 사실에 입각해 공정하게 비판하는 환경 등 민주적 책무를 지탱하는 생태계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라야 제도적 책무 장치들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시끄러운 체제입니다. 하지만 그 소란함 속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바로잡을 기회가 생깁니다. 책무 메커니즘은 그 소란함의 한복판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안전판입니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책무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자들에게는 경계심을, 국민에게는 안심을 줍니다.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힘일 것입니다. 동시에, 그 누군가가 우리 모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책무는 특별한 기관이나 영웅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민주사회 구성원 각자가 조금씩 맡아야 할 역할입니다. 투표로, 여론으로, 또는 전문 지식으로 목소리를 내며 우리는 collectively 권력을 견인합니다. 파파도풀로스의 말대로 책무는 상호작용입니다. 한쪽의 일방적 통제가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피드백의 결과이지요(Papadopoulos, 2023).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책무 여정은 끝이 없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균형점을 찾아 조정하고 학습해나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책무 추구의 궁극적 목표일 것입니다. 그것은 처벌 그 자체가 아니라, 더 나은 정부와 더 신뢰받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잘못에 책임을 묻되, 그 과정에서 모두가 교훈을 얻고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음 세대에는 조금 더 나은 민주주의를 물려주는 것 – 이것이야말로 책무 정신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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