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세: 기후위기의 진짜 이름을 묻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당연한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그것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해수면은 빠르게 올라가고, 식량 생산은 정체되고 있으며, 폭염 속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진다. 자연재해는 일상이 되었고, 생물종들은 점점 더 사라진다. 하지만 정작 이 거대한 위기를 두고 사람들이 묻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누가 지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대부분은 “인류”라고 대답한다.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말은 그렇게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지구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되묻는다. 정말 “모든 인간”이 그랬을까? 지구 온난화를 주도한 주체가 아이티 농부와 미국 석유재벌이 과연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제이슨 W. 무어(Jason W. Moore)다. 그는 환경위기의 원인을 “인류”가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무어는 ‘자본세(Capitalocene)’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위기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위기라고 주장한다 (Moore, 2017a; 2025). 기후위기는 자연과 인간이 충돌한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체계가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논리를 자신의 세계관, 즉 ‘세계생태학(world-ecology)’으로 풀어낸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며, 노동을 통해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와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간다. 무어는 이 과정을 ‘노동 이론적 생명관(labor theory of life)’이라 부른다. 즉, 노동은 단지 물건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 의식, 사회구조를 통합적으로 형성하는 역사적 힘이라는 것이다 (Moore, 2025; Marx and Engels, 1975).


그는 “노동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엥겔스의 말을 중심으로, 노동이 인간의 생물학, 언어, 의식까지 구성한다고 본다 (Engels, 1987). 이러한 노동 중심 관점은 기존 환경주의의 “자연 보호” 담론과는 거리를 둔다. 환경은 단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형성되어 온 복합적 관계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Save the Earth(지구를 지켜라)"라는 말조차, 자칫하면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부르주아적 사고를 반복하게 만든다 (Lewontin & Levins, 1997).


또한 무어는 자본주의가 단지 인간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하나의 노동력으로 다루어왔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한다. 바로 ‘바이오타리아트(Biotariat)’다. 이는 전통적인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당해온 비인간 생명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산, 물, 숲, 동물, 식물까지도 자본주의는 ‘값싸게’ 이용하면서 체계적 착취를 벌여왔다. 무어는 이러한 구조를 ‘값싼 자연(Cheap Nature)’이라 명명한다 (Patel & Moore, 2017; Moore, 2015).


그는 지금의 기후위기가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생태계, 경제, 젠더, 인종, 식민성 등 여러 문제로 표현되는 하나의 총체적 위기라고 본다. 각기 다른 위기들이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의 위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Moore, 2023a).


이처럼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 무어의 주장은 전 세계 생태사회주의 논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만큼 여러 비판과 논쟁을 불러왔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이론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첫 번째 비판은 무어의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학자 Jansen과 Jongerden(2021)은 무어의 ‘자본세’ 개념이 지나치게 전지구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지역적 다양성과 구체적인 역사적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예컨대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다양한 지역적 현실과 저항 운동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태계”로 환원되기 어렵다.


두 번째로, 무어가 강조하는 ‘노동 중심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크뢰거(Kröger, 2022)는 인간 노동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자연의 자율성과 저항성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숲의 생태 순환, 미생물 군집의 진화, 기후 시스템의 자율적 변화 등은 인간 노동과는 무관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무어의 이론은 이런 비인간의 주체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비판은 ‘자본세’와 ‘인류세’ 논쟁에서 비롯된다. 무어는 ‘인류세’가 자본주의의 책임을 흐리는 이념적 장치라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표적 생태 마르크스주의자 존 벨라미 포스터(Foster, 2016)는, 무어의 이론이 지나치게 언어 비판과 추상적 구조분석에 치우쳐 있으며, 실제 생태위기 대응에서 필요한 물질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무어와 포스터 간의 논쟁은 오늘날 생태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다.


네 번째로는, 무어의 이론이 지구 시민성(global citizenship) 담론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적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무어의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책임”이라는 분석이 단결보다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Walewicz,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의 이론은 단지 기후위기의 원인을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값싼 노동과 자연을 확보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으며, 이로 인해 체계 자체의 지속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Moore, 2021d). 그는 이러한 시대를 “자본세의 종언이자, 새로운 ‘행성적 프롤레타리아트(planetary proletariat)’의 도래”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무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자연’, ‘문명’, ‘발전’, ‘환경’ 같은 단어들이 사실상 지배계급이 만든 위험한 단어(dangerous words)이며, 우리가 이 단어들로 사유하고 말하는 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한다 (Moore, 2025). 그렇기에 진정한 생태적 전환은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인식틀, 새로운 실천을 요구한다.



Engels, F. (1987). The Part Played by Labour in the Transition from Ape to Man. In Collected Works, Vol. 25.


Foster, J. B. (2016). In Defense of Ecological Marxism. Climate & Capitalism.


Jansen, K., & Jongerden, J. (2021). The Capitalocene Response to the Anthropocene. https://www.keesjansen.eu


Kröger, M. (2022). Extractivisms, Existences and Extinctions. OAPEN Library.


Lewontin, R., & Levins, R. (1997). Organism and environment. Capitalism Nature Socialism, 8(2), 95–98.


Marx, K., & Engels, F. (1975). The German Ideology. In Collected Works, Vol. 5.


Moore, J. W. (2015).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Verso.


Moore, J. W. (2017a). The Capitalocene, Part I. The Journal of Peasant Studies, 44(3), 594–630.


Moore, J. W. (2021d). Waste in the Limits to Capital. Emancipations, 2(1), 1–45.


Moore, J. W. (2023a). Power, Profit, and Prometheanism II. Journal of World-Systems Research, 29(2), 558–582.


Moore, J. W. (2025). Nature and other dangerous words: Marx, method and the proletarian standpoint in the web of life. Dialectical Anthropology. https://doi.org/10.1007/s10624-025-09775-x


Patel, R., & Moore, J. W. (2017).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Walewicz, P. (2018). “Greening” the Critical The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with the Concept of World-Ecology. Toruńskie Studia Międzynarodowe, 1(11), 8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