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하는 이론, 만드는 미래: 미래지향적 이론화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히 이전의 연장이 아니다.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사회적 불평등 등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기존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중대한 과제를 안겨준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Gümüsay & Reinecke(2024)는 미래를 향해 열린 이론화, 즉 ‘미래지향적 이론화(prospective theorizing)’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들은 기존 이론들이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상상력과 가치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조직이론이나 사회과학 이론은 대부분 과거의 관찰 가능한 사실에 근거한 실증적 분석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꽤 유용했지만, 미래는 더 이상 단순한 과거의 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은 미래 변화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모델이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여 놀라운 예측 능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 역시 여전히 ‘과거 지향적’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 경제 모델, 생태적 질서 등을 상상하고 이를 조직이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구뮈샤이와 라인케는 미래지향적 이론화가 두 가지 큰 전환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과거로부터의 ‘투영(projection)’이 아닌 ‘상상(imagination)’을 중심으로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치 중립적(value-neutral)’ 접근이 아닌 ‘가치 주도적(values-led)’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전환을 결합하면, 단순히 어떤 미래가 가능한지를 넘어 어떤 미래가 ‘바람직한지’를 상상하고 이론화하는 데 이르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접근을 위해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s)’과 ‘가치 추출(value extrapolation)’이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 가능한 ‘에코토피아(ecotopia)’를 전제로, 만약 모든 기업이 생태적 한계를 넘지 않으며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는 ‘도넛 경제(Doughnut Economics, Raworth, 2017)’ 속에서 운영된다면 어떤 조직 모델이 필요할지를 사고실험을 통해 이론화할 수 있다. 이 같은 이론은 그 자체로 실현 가능성을 떠나 새로운 사고방식을 자극하고, 사회적 상상력을 넓히며, 결국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천을 유도한다.
한편, 이러한 미래지향적 이론화가 단지 공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투기적 엄밀성(speculative rigor)’이 필요하다. 이론화 과정은 투명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상상된 미래가 현실적으로 ‘그럴듯한(plausible)’ 동시에 ‘바람직한(desirable)’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즉, 이론이 단지 흥미롭거나 창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권, 지속 가능성, 세대 간 정의와 같은 기준에 비추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를 따져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학문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연구자가 단지 과거를 관찰하고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현실을 함께 ‘창조’하는 공동 창작자로서의 역할을 자각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참여형 학문(engaged scholarship)’의 확장이다. 과거의 틀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가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이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용주의 철학의 전통(Dewey, 1998; Farjoun et al., 2015)은 진리가 고정된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실용적 결과와 맥락 속 유용성에 따라 구성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이론화와 맞닿아 있다.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대안적 조직 모델이나 ‘실질적 유토피아(real utopias)’의 사례를 관찰함으로써, 이를 일반화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Wright, 2010).
결국 미래지향적 이론화는 과거 중심의 실증주의적 과학관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가치가 핵심이 되는 새로운 이론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깊은 윤리적 질문을 동반한다. 정부의 기능도 단지 기존 질서 유지가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을 제도화할 수 있는 역량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론은 미래를 바꾸는 정치적 상상력의 연장이자, 실천의 출발점이 된다.
Banerjee, S. B., & Arjaliès, D.-L. (2021). Celebrating the end of enlightenment: Organization theory in the age of the Anthropocene and Gaia. Organization Theory, 2(4). https://doi.org/10.1177/26317877211036714
Cooperrider, D. L. (2021). Prospective theory: Appreciative inquiry. NRD Publishing.
Dewey, J. (1998). The essential Dewey (Vol. 2). Indiana University Press.
Farjoun, M., Ansell, C., & Boin, A. (2015). Pragmatism in organization studies. Organization Science, 26(6), 1787–1804. https://doi.org/10.1287/orsc.2015.1016
Gergen, K. J. (2015). From mirroring to world-making. Journal for the Theory of Social Behaviour, 45(3), 287–310. https://doi.org/10.1111/jtsb.12075
Gümüsay, A. A., & Reinecke, J. (2024). Imagining desirable futures: A call for prospective theorizing with speculative rigour. Organization Theory, 5(1), 1–23. https://doi.org/10.1177/26317877241235939
Laszlo, C. (2021). Prospective theorizing: Researching for social impact. Journal of Management, Spirituality & Religion, 18(6), 19–34. https://doi.org/10.51327/OBNX5448
Raworth, K. (2017). Doughnut economics: Seven ways to think like a 21st-century economist. Chelsea Green Publishing.
Wright, E. O. (2010). Envisioning real utopias. Ver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