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신앙)와 민주주의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연구들이 이 문제를 다뤄왔지만, 종교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과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공존한다. 이런 상반된 결과는 종교와 정치의 상호작용이 고정된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신앙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냉전 이후 일부 정치학자들은 서구의 기독교 문화권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온 반면, 이슬람 문화권은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른바 문명권 이론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견해는 학계와 정치 담론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들은 그렇게 단순한 구도를 지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동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민주주의 제도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결과도 있고, 반대로 종교적 헌신이 클수록 민주주의 가치에 부정적이라는 결과도 있다. 이런 엇갈린 결과들은 종교가 민주주의를 촉진하는가 억제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지나치게 단선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종교’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으로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Driskell 등(2008)의 연구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 특히 ‘신이 세상사에 직접 개입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정치 참여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런 ‘활동적 신(神)’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데, 이 경우 사람들은 세상 일은 결국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행동을 덜 중요하게 느끼게 된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런 믿음을 가진 응답자들은 전국 수준의 정치 참여 점수가 통계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신이 세상 일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보는 신자들, 예를 들어 유대교나 주류 개신교 전통을 따르는 이들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 참여에도 더 적극적이었다. 즉,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 차이가 시민적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민주주의 가치, 특히 정치적 관용이나 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서도 단면적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비, 사랑, 연민 같은 친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며, 실제로 신앙을 깊이 실천하는 이들 중에는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는 전통과 질서, 안정이라는 가치를 함께 중시한다. 신앙심이 깊을수록 기존의 도덕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질 수 있고, 세속적 변화에 대한 저항도 커진다. 어떤 경우에는 종교적 근본주의나 문자주의적 해석이 민주적 절차보다 신의 법을 우선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 연구에서는 독실한 신자일수록 동성애나 낙태 등 자신들의 신념과 충돌하는 가치에 관용을 보이기 어렵다는 경향, 나아가 민주주의보다는 신정정치를 더 이상적으로 보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종교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 일관되지 않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에 Pazit Ben-Nun Bloom과 동료 연구자들(2021)은 ‘종교적 동기와 표현 모델(REME, Religious Motivations and Expressions model)’이라는 통합 이론을 제안한다. 이 모델은 종교를 단지 얼마나 믿는가라는 양적 척도만으로 보지 않고, ‘왜’ 믿는가와 ‘어떻게’ 믿는가라는 질적 차원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와 욕구로 종교에 참여하며, 바로 그 동기가 정치적 태도와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Ben-Nun Bloom et al(2021)은 종교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주요 동기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동기, 둘째는 성스러움이나 초월적 존재와의 연결을 추구하는 욕구, 셋째는 공동체 소속과 유대에 대한 욕망, 넷째는 전통과 도덕 질서를 유지하려는 동기, 다섯째는 소속 집단의 우월성을 유지하거나 외부 집단과의 구별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욕구이다

이 다섯 가지 동기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종교생활에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주로 의미 추구를 위해 교리를 공부하고 깊은 신앙적 믿음(belief)을 갖게 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공동체 소속 욕구가 커서 예배 참석과 봉사활동(social religious behavior)에 열성을 보일 수 있다. 누군가는 내면의 성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개인 기도나 묵상(private religious behavior)에 몰두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실천하지만, 개인마다 어떤 측면에 방점을 두는지, 그리고 그 배경에 어떤 동기가 주도적인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Ben-Nun Bloom et al., 2021). 

예를 들어, “기도한다”는 같은 행위도 사람에 따라 동기가 다르다. 어떤 신자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기도의 동기는 이타심과 영적 성장에 있고, 이러한 사람은 사회적 관용과 약자 보호 같은 민주적 가치에도 적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신자는 “전통적으로 하루 세 번 기도하라고 했으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관습 준수와 질서 유지라는 동기가 깔려 있으며, 이 경우 새로운 사회 변화나 자신과 다른 가치관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승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도 있다. 이는 집단적 우월성을 추구하는 동기로, 이러한 맥락에서는 기도가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적 태도나 정치적 극단주의와 연결될 위험이 있다. 같은 종교 행위라도 담긴 의미와 목적에 따라 민주주의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모델은 보여준다 (Ben-Nun Bloom et al., 2021).

이러한 접근은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가 왜 긍정적일 때도 있고 부정적일 때도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하나의 종교 행위도 그 이면에 담긴 동기나 의미에 따라 상반된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은 어떤 이에게는 시민적 덕목을 배우는 공간이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폐쇄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깊은 신앙심은 어떤 이에게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지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자신이 믿는 진리를 지키기 위한 배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얼마나 믿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믿는가’를 살펴야 한다.

두 가지가 핵심이다. 하나는 개인이 종교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신앙을 실천하는지, 즉 종교적 동기와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개인이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에 속해 있는지이다. 같은 교회 출석이라도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교단과 권위를 중시하는 교단에서의 신앙 경험은 다를 수 있고, 기독교 다수 사회와 종교 소수 집단이라는 조건에 따라서도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종교인이니까 민주주의에 우호적일 것이다” 또는 “반대할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제 ‘종교는 민주주의의 친구인가, 적인가?’라는 식의 이분법적 질문보다, ‘어떤 조건에서 종교는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어떤 조건에서는 방해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종교와 민주주의는 정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살아 있는 관계다. 그렇기에 종교의 민주적 함의는 언제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된다.


Ben-Nun Bloom, P., Arikan, G., & Vishkin, A. (2021). Religion and democratic commitment: A unifying motivational framework. Political Psychology, 42(S1), 75–108. https://doi.org/10.1111/pops.12730 

Driskell, R., Embry, E., & Lyon, L. (2008). Faith and politics: The influence of religious beliefs on political participation. Social Science Quarterly, 89(2), 294–314. https://doi.org/10.1111/j.1540-6237.2008.00533.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