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서비스의 협력적 생산, 왜 분야마다 다르게 나타날까?
공공 서비스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 즉 '공생산(co-production)'이라는 개념은 1970년대 후반 엘리노어 오스트롬(Ostrom) 등에 의해 학문적으로 소개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시민 참여와 공동설계를 강조하는 복지정책 논의에서 공생산이 핵심 전략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Trætteberg & Enjolras (2024)는 그간의 일반적인 주장과는 다르게, 공생산이 모든 공공 서비스 분야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전략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에 공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야가 따로 있고, 이는 해당 분야를 둘러싼 제도적 환경—법과 규정, 관계의 공식화 정도, 자원 의존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는 노르웨이의 1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뤄진 89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문화·여가, 이민자 통합, 건강·돌봄, 아동·청소년 서비스라는 네 가지 분야를 비교 분석했다. 각 분야마다 지방정부와 자원봉사 조직 간의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봤다.
결과는 분명했다. 공생산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분야는 ‘문화와 여가’였고, 가장 적게 이루어지는 분야는 ‘아동과 청소년 서비스’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문화와 여가 분야는 중앙정부의 간섭이 적고 지방정부의 재량권이 큰 반면, 교육이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복지 분야는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수록, 시민사회와의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진다.
또한 자원봉사 조직이 ‘필수적인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때 공생산이 더 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이민자 통합 분야에서는 자원봉사자가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이들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반면, 의료·돌봄 분야에서는 지방정부가 전문성을 요구하는 서비스를 직접 수행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보조적인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분석은 기존 연구들에서 간과되기 쉬운 부분을 조명해준다. 그동안 공생산에 대한 연구들은 종종 건강, 교육, 돌봄 등 이미 공공성이 강하게 자리잡힌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공생산이 가장 잘 작동하는 분야는 오히려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시민사회가 활발한 곳’이라는 흥미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이처럼 공생산은 단순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제도적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공생산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각 정책 분야가 가진 제도적 특성과 시민사회 자원의 분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책결정자들이 ‘모든 분야에서 공생산을 확대하자’는 식의 일률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특성과 맥락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관련 논의 소개 :
이 연구는 Stone과 Sandfort(2009)의 ‘정책 필드’ 이론을 응용하여 분석 틀을 구성하였으며, 자원 의존성 이론(Pfeifer & Salancik, 1978), 정책 피드백 이론(Pierson, 1993; Skocpol, 1992) 등을 바탕으로 각 분야의 구조적 조건이 어떻게 공생산을 유도하거나 저해하는지를 설명한다.
한편, 공생산 연구에서 자주 논의되는 이슈는 바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이다. 많은 선행연구는 비영리 조직, 특히 전문성을 갖춘 서비스 제공자들을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연구는 전문 인력이 아닌 ‘자원봉사 조직’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Benjamin & Brudney(2018)의 연구는 이 점에서 자원봉사 조직과 전문 비영리 조직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Bovaird & Loeffler(2012)는 공생산에서 공공기관이 주도권을 가지고 시민은 후반부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 연구는 그러한 구조적 불균형의 원인을 제도적 제약과 자원 분포에서 찾고 있다. 특히 2015년 난민 유입 이후 일시적으로 공생산이 증가했다가 다시 감소한 사례는, 외부 충격이 제도 구조를 흔들고 협력 가능성을 일시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Benjamin, L. M., & Brudney, J. L. (2018). What do voluntary sector studies offer research on co-production? In T. Brandsen, B. Verschuere, & T. Steen (Eds.), Co-production and co-creation: Engaging citizens in public services (pp. 49–60). Routledge.
Bovaird, T., & Loeffler, E. (2012). From engagement to co-production: The contribution of users and communities to outcomes and public value. Voluntas: International Journal of Voluntary and Nonprofit Organizations, 23(4), 1119–1138. https://doi.org/10.1007/s11266-012-9309-6
Pfeifer, J., & Salancik, G. R. (1978). The external control of organizations: A resource dependence perspective. Harper & Row.
Pierson, P. (1993). When effect becomes cause: Policy feedback and political change. World Politics, 45, 595–628. https://doi.org/10.2307/2950710
Skocpol, T. (1992). Protecting soldiers and mothers: The political origins of social policy in the United States. Harvard University Press.
Stone, M. M., & Sandfort, J. R. (2009). Building a policy fields framework to inform research on nonprofit organizations. Nonprofit and Voluntary Sector Quarterly, 38(6), 1054–1075. https://doi.org/10.1177/0899764008327198
Trætteberg, H. S., & Enjolras, B. (2024). Institutional Determinants of Co-Production: Norway as an Illustrative Case. Nonprofit and Voluntary Sector Quarterly, 53(2), 536–559. https://doi.org/10.1177/08997640231176801